네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예쁜 다리를 건너본다. 말없이 우두커니 앉아 그저 바라만 본다. 그 강을 따라 걸어본다. 마지막이 배를 타고흐르기다.
오늘은 배를 탔다.
해가 진 후 헝가리 전통춤 공연이나 차르다시 연주를 들으며 만찬을 즐기는 대형 유람선은 내가 전에 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사실은 야간 유람선은 지난 6월에 크루즈 선박과의 충돌로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있었던 데다가 날벌레가 많아 추천하지 않는다는 가이드 말을 신뢰하여) 우리는 환한 대낮의 작은 유람선을 선택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었지만 작은 유람선들은 거의 안전하다고 했다.
일몰 후 사위가 황금빛으로 물이 드는 야경도 멋지지만 환한 하늘 아래에서 보는 부다페스트는 또 어떨지 살짝 설레었어.^^
멋진 부다페스트 기술경제대학 건물. 노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젊은이들 틈에 끼고 싶을 정도로 강변에 근접해 있다.
하얀 에르제베트 다리 근처 선착장에서 우리는 출발했다.
공사 중이라 시그니처 사자상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던 세체니 다리를 지나고, 그보다는 못하지만 멋진 노란 기둥의 머르기트 다리를 지나 오부더 섬 선착장에 몇몇 트레킹 족을 내려주고 또 몇을 태운 다음 배는 돌아왔다.
오부더 섬은 여의도와 같은 하중도(河中島)였다. 보름만 더 있을 수 있다면 시게트 페스티벌을 볼 텐데 아쉬웠다. 최근 몇 년은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지만 올 8월에 다시 열린다고 했다.
부더와 페슈트를 잇는 다리는 모두 네 개, 서버드샤그(자유), 에르제베트, 세체니, 머르기트란 이름을 지녔다. 그러고 보니 세체니를 제외하고는 특유의 컬러가 있다. 자유-그린, 에르제베트-화이트, 머르기트-옐로우의 조합이다.
부더성터널을 빠져나오면 세체니다리로 이어진다. 다뉴브강을 사이에 둔 두 지역, 페슈트와 부더를 잇는 '부다페스트'가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겔레르트 언덕을 지키는 자유여신상이 배에서도 잘 보였다. 강을 따라 높지 않고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녹지를 사이에 두고 잘 배치돼있었다. 한강변을 독차지한 고층아파트에 질린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눈을 찌르지 않는 선한 스카이라인.
사실 뷰란 이런 것이겠지. 천박한 자본가들이 하는 "뷰가 좋다"는 말은 재산가치 만랩이라는 소리겠다.
조각이 퍽 아름답다. 특유의 노란 기둥도. 머르기트 다리의 시그니처 컬러는 엘로우다.
백주에 보는 국회의사당 뒷면.
매일 아침 산책하는 곳이라 세인트 언너 성당의 쌍둥이 첨탑을 딱 알아보았다. 그 앞이 안젤라 로타 부두.
오부더 섬에서 유턴한 배가 머르기트 다리를 지나고, 버차니 광장 부근을 지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뒤척이다 밖으로 나가보면 노란색 트램이 첫 승객을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을 훔치는 노란 트램에 훌쩍 올라 타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으나 어느새 나는 휴대폰 하나만 들고 호텔을 나온 처지를 금세 깨닫는 그런 나이가 되어 있었다. 끝내 트램을 타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침이면 만나는 세 개의 길, 다뉴브 강을 따라 난 기찻길과 자전거 도로와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객차의 그 노란색도. 마치 첫사랑처럼.
그 후로 버차니 광장 앞 안젤로 로타 부두는 내 아침 산책 코스가 되었다.
선글라스를 끼어도 눈이 따가운 강한 햇살이었으나 바람은 시원했고 무엇보다 대기가 정말 맑았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흐르고, 강물에 비친 구름도 흐르고, 그 강을 따라 길게 들어선 건축물들도 함께 흘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배의 속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얼마 만인가 이런 시간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다뉴브 강 위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이 맑아서 바람이 상쾌해서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배.... 였으나 하선할때까지 큰소리로 떠들고 웃느라 침을 튀기는 아줌마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었다. 아, 한국 아줌마들 아니고, 러시아계.
한국인은 이제 어딜 가도 예의 바르고 염치를 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젊은이들은 모두가 예의바르고 깍듯하고 남녀 불문 다들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선(善)이기도 하다. 자신감이고 자존심이고, 그리고 여유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유사 이래 최고의 문화와 경제 수준을 누리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그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긍지를 가져도 될 만큼 높다는 것도. 우리 때는(이라 쓰고, 라떼는이라 읽는다) 나라밖으로 나오면 더 주눅 들고 눈치 보고, 그러면서 열등감에서 나오는 주책없는 짓도 하고 그랬지만 이제 코리아는 선진국이 분명해 보였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쓴 이미륵 박사
가 떠올랐다. 그가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을 때가 1세기도 더 전인 1920년이었다. 나라를 잃고 3.1 만세운동에 가담했던 조선의 젊은이.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그도 유럽에 와서 수없이 다뉴브강을 보았을 것이다. 압록강은 흐른다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책을 썼던 그는조선이 해방되고 혹독한 시련을 거쳐 드디어 이런 나라가 될 것임을 믿었을까. 믿었을 것이다. 그랬다고 믿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다뉴브 강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