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이 군대를 갔다. 친구는 아들의 입대날이 가까워올수록 "아들보다 아빠가 더 초조해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아들에게 자신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하며 응원과 격려를 해준다던데 아들을 입영지까지 데려다주고 와서는 '끝내 눈물까지 보이더라.'라고 친구는 전했다. 그 남편은 3대 독자여서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삼 년 전이던가... 아는 언니가 아들을 군대에 들여보내 놓고 헛헛한 마음에 우리 집에 왔었다. 남편에게 아들을 입영자까지 데려다 주 자고 했지만 무심하기만 한 남편이 “옛날에는 나 혼자 열차 타고 입대를 했다.”라고 꽤나 귀찮은 반응을 보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 언니는 남편을 설득해서 부대 앞까지 아들을 데려다주고 왔다고 하며 남편에겐 서운한 감정에, 또 아들이 눈에 밟혀 눈물바람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는 한 모임에 나갔다가 군에 간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도 군에 있는 아들이 있는 터라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게 되었다. 여자는 나와 또 1명이 있고 남자분이 6명이었다. “부자지간이 친한 것을 보면 참 좋아 보여요. 아들 데리고 목욕탕도 잘 다니시나요?” 웃으며 물었더니 남자들이 이외로 “각자 따로 다니는 게 편하지, 뭘 같이 다니느냐”한다. 그중에 한 분(친구의 남편)만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게 좋다고 하셔서 놀라웠다. “아, 정말요? 여자들은 아빠 등 밀어주는 것 좋아 보여서 아들 낳고 싶어 하는데...” 이거 또 괜한 오지랖이다 싶어서 말을 끝냈다. - 나는 아동보육 전공이기도 했고 다년간 아동보육현장에 있었던 터라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 이 남자들, 아마도 선친에게 사랑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만다.
이웃인 젊은 아빠 이야기... 3남매를 키우는데 애들 아빠가 자식들에게 어찌나 다정한지 옆에서 보기가 참 좋다. 나는 그의 부친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10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업어주셨던 기억이 나요.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을 비비셨는데 따가웠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목마도 태워 주셨지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평생 그리워요. 그래서 저는 우리 애들에게 잘 해주고 싶어요.” 그이의 환한 웃음이 어찌나 이쁘던지... 그 어린 꼬마가 10살 때쯤이면 기억이 날까 싶은데 이 젊은 아빠는 유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자식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르게 자란 그가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그립다
나는 늘 그립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실랑이하며 깨우는 소리 웃음소리 함께 먹고 잠들고 부엌에서 딸그락거리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 TV 소리,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장난을 치다가 심해져서 싸움으로 번지면 뜯어말리는 그런 소리들이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세월은 빠르게도 흘렀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정겨운 소리들은 점점 사라져 갔다. 적막감이 싫어서 켜놓은 TV는 혼자서 떠든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함께할 날들이 얼마나 될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게 자식이고 퍼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부모는 ‘자식바보’다. 내 부모님이 나에게 그랬듯이 모든 부모들 역시 자식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쉬운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커진 반면 정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기만 해서 부모 자식 간에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가족에게 사랑을 전해야만 한다.
우리 부모의 세대는 일제강점기(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를 겪었고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을 치러냈던 최악의 조건에서 살아내신 분들이다. 그러하니 우리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한다’ 말은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 여원 -
내 생명은 고스란히 내 부모님이 주신 것이다. 부모 중에 한 분이라도 없었다면 이 세상에 나의 존재가 가당키나 할까? 부모님이 사실 날이 몇 달일지, 몇 년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부모님을 만져볼 수 있는 날이 고작 10년 안팎일 것이고 그것도 일 년에 명절 두 번과 그리고 몇 번이나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가 말이다. 며칠 있으면 한국 고유의 명절 설이다. 친가(친정)에 가거든 부모님의 작고 여윈 몸을 안아보고 만져보고 업고 앞마당도 돌아보자. 혹은 손발을 씻겨드리며 '이 손을 몇 번이나 만져볼 수 있을까?'생각해 본다면 스스로가 숙연해지더라. 부모님이 배웅하시러 나오실 때 가족들이 차 안에 다 타고 시동을 걸기 전, 나 혼자 다시 나와서 부모님께 다가가 안아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큰 교육이다. 부모님을 안고 다정하게 말하자. “어머니(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그 말이 내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자녀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이리와, 우리 안아보자~!!” 잊지 말 것. ^^v
가족력이 병에 국한된 것이지만 ‘사랑’ 또한 유전되는 것임을 나는 믿는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지 못했던 사랑의 표현을 이제 나로부터 시작하자.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여.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