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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ug 02. 2018

7. 감기

  은우가 아직 얼굴을 본 적 없는 이모부를 면회 가는 혁이 엄마는 평소와 달리 많이 들떠 있었다. 남편의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온몸에 생기가 돌게 만들었다.  

  - 집 잘 보고 있어라, 은우야. 공부 다 하고 나가 놀고~

  - 네, 안녕히 다녀오세요~

  은우는 머지않아 곧 보게 될 이모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이모를 보면 이모부도 좋은 사람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감옥에 있는 사람이란 선입견 때문인지 은우가 상상하는 이모부의 얼굴은 어쩐지 흉악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 도둑질이나 강도 같은 죄를 지어 감옥에 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만나 보지 못한 누군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주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혁이 엄마가 나가고 나서 은우는 숙제부터 했다. 내년이면 학교에 가는 은우에게 엄마는 매일 숙제를 내 주었는데, 기역, 니은 등의 한글 자모와 1, 2, 3, 4 등의 숫자를 반복해서 쓰는 것이었다. 그저 따라 쓰기만 하면 되는 것들이라 처음에는 쉽고 재밌게만 느꼈는데, 그것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 되고 있었다. 은우가 공부에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은우 엄마는 ‘너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유치원 나온 애들한테 밀리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돼!’라는 말로 은우를 독려했지만, 엄마의 그런 말은 은우에게 자극보단 부담이 될 뿐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은우의 공부하는 모습을 부러운 듯이 옆에서 지켜보던 은수는 벌써 나가 놀고 없었고, 은우는 부담이 공포감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숙제에 열중했다.     

  밖에서 놀다 점심때가 되어 들어온 은우는 동생의 신발이 있는 걸 보고 안방 문을 열었다가, 웬일로 잠들어 있는 은수를 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은우는 마루에 누워 눈을 깜빡거리면서 ‘은수를 깨워 같이 점심을 먹을지, 먼저 먹고 다시 나가 놀지’를 고민하다가 은수가 깨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난 은우는 은수부터 깨웠다.

  - 은수야! 일어나, 밥 먹자.

  은우가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 은수는 잠긴 목소리로 겨우

  - 헝아 먼저 먹어.

  한마디 내뱉고는 또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은우는 평소와 다른 은수가 살짝 걱정되면서도, 졸려서 그런 거겠거니 생각하고는 혼자 밥을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놀다 들어온 은우가 동생의 신발이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인 걸 보고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은수는 모로 누워 웅크린 채 옅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 은수야! 

    왜 그래? 어디 아퍼?

  - 헝아..

  신음처럼 간신히 내뱉는 은수의 힘없는 대답에 은우는 동생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마를 만져 보았다. 역시나 불덩이였다. 이마뿐 아니라 온몸이 뜨거웠고, 그럼에도 추운지 웅크린 몸을 떨고 있었다. 은우는 얼른 이불을 끌어다 은수에게 덮어 주었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신음을 흘리며 떨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노라니, 은우는 어쩐지 서글퍼지며 그동안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 은수야, 추워? 헝아가 안아 줄까?

  은수는 눈을 뜨지 못하면서도 떨리는 몸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둔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떨고 있는 은수의 몸을 꼭 안아 주었다.     


  면회 갔다가 돌아온 혁이 엄마는 인기척에도 나와 보지 않는 은우 형제가 궁금해 안방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은우, 은수 모두 반 실신 상태로 온몸이 불덩이인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혁이 엄마는 얼른 이불을 걷어내 은우 형제를 떼어 놓고 옷을 벗기고는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이들의 몸을 식혀 주었다. 

  수건을 적셨다 짜기를 정신없이 반복하고 있을 때 다행히 은우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왔고, 그제서야 혁이 엄마는 포대기를 풀어 등에 업고 있던 혁이를 내려놓고는 서둘러 약국으로 향했다.     


  그 후로 은우 형제는 꼬박 이틀을 앓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이불을 식은땀으로 흠뻑 적시고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건 은수였다. 은수는 시계를 볼 수 없었지만, 방문에 비치는 햇살로 자신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윗목에 놓인 상보 덮인 밥상을 보자 뱃속의 신호음보다 먼저 찾아온 극도의 허기짐.. 은수는 아직 잠들어 있는 형을 깨울까 말까 망설이다

  - 헝아, 밥 먹자.

  몸살기를 완전히 떨치고 개운해진 몸으로 일어난 은수에 비해 은우는 아직 몸이 무거웠다. 은우는 비몽사몽간에 은수에게 ‘너 먼저 먹어’ 말하고는 다시 무거운 잠으로 빠져들었다. 은수는 일어나지 못하는 형을 잠시 바라보다 윗목으로 기어가 밥상 앞에 앉았다. 상보를 들어내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분홍색 소시지였다. 은수는 넘치는 식욕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는 아직 열리지 않은 형의 밥뚜껑과 반 남은 소시지를 보며 침을 삼키다 상보를 덮었다. 숭늉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비로소 허기짐을 달랜 은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아픈 형을 혼자 두고 나가 놀기엔 미안해서였다.      

  불 꺼진 방에서 창호지에 비치는 햇살에 기대어, 잠든 형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말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밀려온 포만감이 갈 곳 없던 은수의 눈꺼풀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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