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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ug 15. 2018

4. 월급날

  은우는 아침부터 들떠 있던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오시기만 하면 한 달에 한 번 먹는 짜장면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간을 재촉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었지만, 은우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 헝아, 근데 우리는 왜 과자 맨날 못 먹어?

  - !.. 

    엄마 아빠가 월급을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받으니까.

  - 그럼 준영이네 아빠는 맨날 월급 받어? 준영이는 맨날 과자 먹는데..

  - 그건 아니고..

  은우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가 없어 말끝을 흐렸지만, 오늘따라 은수는 집요했다.

  - 그럼 우리는 왜 맨날 못 먹어, 과자?..

  - 우리집이 가난해서 그래.

  - 가난한 게 뭔데?

  은우는 최고조에 올랐던 기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끼며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 짜증을 은수에게 돌리기엔 동생의 순수가 너무 가슴 아팠다.

  - 은수야, 형아가 업어 줄까?

  은수는 좋으면서도 웬일이냐는 듯

  - 나 아직 안 힘든데?..

  - 아냐, 형아가 업어 주고 싶어서 그래.     

  은수를 업은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은우는 더 힘을 내서 계단을 올랐다.     


  대문 시멘트 문턱에 앉아 엄마 아빠를 기다리던 은우는 빠알갛게 지는 저녁 해가 왠지 처연(凄然)하게 느껴졌다. 

  - 은수야 배고파?

  - 응.

  - 쪼금만 기다려. 엄마 아빠 금방 올 거야.


  석양이 비껴간 지 한참이 지났건만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초조함에 집 앞을 서성이던 은우는 은수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듣고 발길을 멈췄다. 이어 은우의 뱃속에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은우는 기다림에 지친 은수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가 시계를 확인했다. 작은 바늘은 이미 7을 넘어 8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은우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월급날 엄마 아빠가 작은 시계 바늘 7을 넘겨서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엄마 아빠는 월급날만큼은 함께 퇴근했고, 간혹 함께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엔 엄마만이라도 먼저 왔었다. 은우는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엄마가 알려준, 엄마 아빠의 회사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나오다 잠시 망설였다. 지금 상황이 엄마가 말한 ‘급한 때’에 해당되는 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우가 일단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은수는 대문 벽에 기댄 채 어둠에 싸여 잠들어 있었다.     

  - 은수야!

  은우는 잠들어 있는 은수를 선뜻 깨우지 못하고 있다가 서늘해진 기운을 느끼고 은수의 어깨를 흔들었다. 

  - 아빠 회사에 전화 걸러 가자.    

 

  전화기가 있는 옆집 대문 앞에 선 은우는 잠시 망설였다. 굳게 닫힌 대문을 두드리는 데는 약간의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은우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고는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 아줌마? 아줌마, 안에 계세요?

  은우의 목소리보다는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슬렸던지, 옆집 아줌마는 대문으로 걸어 나오며 구시렁거렸다.    

  - 누가 이렇게 밤에 시끄럽게 문을 두드려!

  문을 활짝 열어젖힌 아줌마의 얼굴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우는 그 모습에 주눅이 들었지만, 아줌마의 입에서 잔소리가 튀어나오기 전에 용건부터 들이밀었다.

  - 저기요, 아줌마. 전화 한 통만 쓸게요.

  아줌마는 기가 막혀 어이가 없다는 듯  

  - 아니, 이놈의 동네는 어른이구 애구 왜 이렇게 뻔뻔해? 

    남의 집 전화 빌려 쓰는 주제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여기가 니네 집 안방이냐?

  - 엄마 아빠가 아직 안 와서요.

  - 아니, 니네 엄마 아빠 안 오는 걸 왜 우리집에서 찾어? 

    아직 오밤중도 아니구만, 더 기다려 봐. 

    문을 닫으려던 아줌마는 은우가 몸을 들이밀며 물러설 모습을 보이지 않자,

  - 너 전화비는 가지고 왔어?

  - 아니요, 이따가 엄마 오면은 드릴게요.

  아줌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은우 형제를 바라보다, 엄마가 오면 전화비에 대해 꼭 얘기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형제를 집 안으로 들였다. 

  아줌마는 안방에 있는 전화기를 마루로 가지고 나와서는 뻔히 아는 사실을 물었다.

  - 너 전화 걸 줄 알아?

  - 아니요.

  - 전화 거는 법도 모르면서 무슨 전화를 걸겠다고.

  아줌마는 야속하게도 직접 걸어 줘도 될 것을 굳이 전화 거는 법을 은우에게 알려 주고는 한쪽 다리를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걸치고 앉아 은우가 전화 거는 모습을 지켜봤다. 은우는 익숙지 않은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보다 지켜보고 있는 아줌마의 시선이 더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타이밍을 놓쳤고, 그때마다 아줌마는 호통을 치며 전화비 타령을 했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잔뜩 긴장한 상태로 다이얼을 돌린 끝에 겨우 전화가 연결되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두 분 모두 이미 퇴근했다는 얘기였다. 은우가 풀죽은 모습으로 은수의 손을 잡고 나올 때, 형제의 허기진 뱃속을 울리는 건 뒤에서 매몰차게 닫히는 대문 소리뿐이었다.

  - 은수야, 배 많이 고프지?

  - 응.

  - 할머니네 가서 밥 먹을까?

  은수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더 늦게까지 기다리더라도 꼭 짜장면을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하늘엔 별이 총총했고 싸늘해진 기운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은수의 어깨를 감싸 안고 엄마 아빠가 올라올 골목길 계단을 지켜보고 있던 은우의 눈에서 전봇대에 매달린 백열등이 반짝였다. 그 백열등이 감싸는 자리가 몹시도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계속 보고 있노라니, 노란 빛을 뿜어내는 백열전구의 빛의 파장이 한층 한층 자신과 동생의 몸을 덥혀 주는 것 같았다. 은우는 그렇게 빛의 입자 속으로 빨려 들었다.

      

  - 은우야. 야! 은우야!

  엄마였다. 그토록 반가운 엄마의 목소리는 어쩐지 신경질적이었다. 아빠가 은우 곁에 잠들어 있던 은수를 안고 들어가는 동안에도, 엄마는 아직 잠이 덜 깬 은우에게

  -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 엄마 아빠 기다 / 왜!

  - 오늘 엄마 아빠 월급날이니까, 짜장면 / 그럼 아직 저녁도 안 먹고 여태 기다리고 있었어? 이 미련한 새꺄!

  엄마의 과격한 표현에 은우는 설움이 북받쳤지만 엄마는 은우가 설움을 토해 낼 틈조차 주지 않았다.

  - 은수는? 은수도 밥 안 먹었어?

  - 응.

  - 밥을 왜 안 먹어! 너는 안 먹어도 동생이라도 먹여야지.

  - 짜장 / 할머니네 가서 먹었으면 됐잖아! 왜 밥을 굶어!

  - 아이, 됐어! 그만해!

  은수를 눕히고 온 아빠가 은우의 손을 잡아끌며 엄마를 말렸다. 하지만 그동안 참아온 설움이 폭발한 은우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절규했다.

  - 약속 안 지켰잖아!

  - 무슨 약속?

  속상함이 화로 바뀐 엄마의 낯빛이 무섭게 변했다. 은우는 더 이상 엄마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속의 울분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 월급날 짜장면

  가슴에서 터져 나온 말을 내뱉는 순간, 은우는 목이 메어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 짜장면?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은우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 짜장면이 그렇게 중요해?  

  은우의 머릿속에서 암전이 일어났다. 엄마는 은우 형제에게 짜장면 한 그릇의 약속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짜장면이 단지 맛있는 한 끼 식사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달의 기다림이라는 걸.. 그리고 그 기다림이 이 어린 영혼들의 주위를 감싸고 도는 소외와 가난의 그림자를 거두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걸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 멱살을 잡히고 휘둘리던 은우는 이후 자신이 또 무슨 말들을 내뱉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아빠가 말릴 때까지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것과, 엄마가 분이 덜 풀린 얼굴로 ‘독한 새끼’, ‘미련한 새끼’라는 말을 미처 삼키지 못하는 걸로 봐선 엄마를 꽤나 자극했으리란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밤늦은 시간, 은우는 아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아빠는 중국집이 문을 닫기 전에 빨리 가려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은우는 아빠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빠는 은우를 업고 뛰기 시작했고, 다행히 이제 막 문을 닫으려는 중국집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지만, 중국집 주인은 영업이 끝났다며 주문을 거부했다. 아빠는 애가 저녁을 못 먹었다며 사정했지만, 중국집 주인은 짜장면 한 그릇을 위해 면을 반죽할 수는 없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아빠가 짜장면 곱빼기와 보통 두 그릇을 시키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고, 그제서야 주인은 식탁에 뒤집어 놓았던 의자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의자에 앉은 은우는 몹시 피곤했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며 졸음이 쏟아졌다. 은우는 눈꺼풀을 힘주어 올리며 졸음을 쫓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주방장의 손에서 돌아가는 밀가루 반죽을 보다 잠들고 말았다.

  - 은우야, 짜장면 나왔다.

  아빠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지만 은우의 눈꺼풀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빠가 골고루 비벼서 앞에 놓아준 짜장면을 보고도 은우는 젓가락 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 뭐 해? 얼른 먹어. 배고프잖아.

  은우가 젓가락을 들자, 아빠는 아빠 그릇의 짜장면도 비벼서 은우에게 덜어 주었지만 은우는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했다. 허기도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하루 종일, 아니 한 달을 그토록 기다렸던 그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젓가락을 드는 게 힘겨울 뿐이었다. 은우는 세상 무엇보다 맛있어야 할 짜장면이, 그리고 가장 행복해야 할 이 시간이.. 왜 이렇게 우울하고 힘겨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우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짜장면 그릇에 떨어졌다. 은우는 아빠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고개를 숙인 채, 메이는 목에 꾸역꾸역 짜장면을 밀어 넣었다.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번지는 우울한 식탁의 그림자가 어린 은우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날 밤, 

은우는 억지로 밀어 넣었던 짜장면 탓에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새벽 내내 배를 구르며 먹은 걸 다 토해 냈고, 샛노란 위액이 보일 때까지 빈 속을 쥐어짰다. 엄마는 은우가 짜장면 곱빼기에 아빠가 덜어준 짜장면까지 다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은우의 등을 두드리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 으이그, 이 미련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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