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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ug 11. 2018

5. 단발머리

  - 꼬마야, 네가 은우니?

  은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를 경계하며 대문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지 까치발을 하고 겨우 대문 위로 가무잡잡한 피부의 앳된 얼굴을 내민 단발머리 누나는 뭘 먹고 있는지 입을 오물거렸다.

  - 네, 그런데요.. 

  - 문 좀 열어 줄래? 여기 하숙집 있다고 해서 방 보러 왔는데..

  은우는 엄마한테 미리 들은 게 있던 터라 방을 보러 사람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낮에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고 집을 지키고 있었던 건데, 당연히 아저씨나 아줌마가 올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어린 누나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은우의 사고(思考) 폭에서는 집을 보러 다니는 건 어른들의 역할이지, 학생으로 보이는 누나의 몫이 아니었다. 게다가 엄마는 방 보러 오는 손님이 복덕방 아줌마랑 같이 올 거라고 했었다. 얼굴을 알고 있는 복덕방 아줌마가 함께 왔다면 당연히 문을 열어 줬을 테지만, 혼자서 온, 그리고 생각보다 어린 낯선 누나에 대한 은우의 반응은 자연스레 경계로 이어졌다. 

  - 엄마가 아무한테나 문 열어 주지 말랬어요.

  순미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런 은우가 귀여웠다.

  - 너 몇 살이야? 학교 다니니?

  - 아니요, 일곱 살인데요.

  - 누나는 이제 고등학생인데, 누나가 사는 집이 학교랑 너무 멀어서 방 구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문 좀 열어 줄래?

  - 안 돼요! 

  은우의 단호한 대답에 막혀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던 순미는 이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새우깡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과자 줄까?

  은우는 순미가 대문 위로 들어 올린 새우깡 봉지를 보고 침을 삼키면서도, 엄마에게 ‘남 먹는 거 쳐다보는 건 거지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터라 애써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완강한 꼬마의 저항에 순미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것처럼 난감했지만, 이내 전의를 가다듬고 다시금 은우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 괜찮아, 먹어도 돼. 누나 나쁜 사람 아니야. 자~

  순미는 새우깡 봉지에 손을 넣어 과자를 한 움큼 집어서는 대문 위로 내밀었고, 은우는 순미의 손에 들려 있는 새우깡을 보며 손을 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새우깡을 받는다는 것은 문을 열어 준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의미했고, 그러기엔 은우는 낯선 누나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우깡만 날름 받아먹고 모르는 척 하는 건 너무 치사할 것 같았다.

  - 괜찮아, 자~

  은우는 순미의 손에서 재촉하듯 자신을 유혹하는 한 움큼의 새우깡에 꽂혔던 시선을 순미에게로 돌리고는 슬픈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은우를 달래 어떻게든 문을 열고 방을 보고자 했던 순미는 풀 죽은 꼬마의 모습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알았어, 문 안 열어 줘도 되니까 과자 받아.

  하지만 순미의 바람과 달리 은우는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순간 고지식하고 순진한 은우가 어쩐지 측은하게 느껴진 순미는 더 이상 이 꼬마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누나가 졌다. 이제 정말 문 열어 달란 얘기 안 할 테니까 과자는 먹어도 돼. 자, 얼른~

  은우는 웃으며 말하는 순미의 모습에 다소 경계를 풀면서도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순미는 그런 은우의 반응에 허탈하게 웃으며

  - 할 수 없구나. 엄마 회사에 전화해 보고 올 테니까 이따 보자.

  순미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방을 보진 못했지만, 학교와의 거리도 가까웠고 깨끗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귀여운 꼬마도 있어서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순미를 본 은우는 순미의 양손부터 살폈지만 애석하게도 새우깡 봉지는 보이지 않았다.

  - 엄마가 집 보러 오는 사람 있으면 문 열어 주랬잖아, 으이 이 미련한 놈아.

  아프게 머리를 쥐어박는 엄마에게 은우는 억울하다는 듯

  - 엄마가 복덕방 아줌마랑 같이 올 거라고 했잖아!

  엄마는 은우의 머리를 한 번 더 아프게 쥐어박고는

  - 우리 애가 이렇게 미련해요.

  순미는 은우에게 살짝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 순진해서 그런 거죠, 뭐.

  - 우리도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도배도 다시 하고 장판도 새로 깔아서 깨끗할 거예요. 

    무엇보다 수돗물이 콸콸 잘 나와요. 

  - 네~

  - 아, 참 이름이?..

  - 순미요. 정. 순. 미.

  - 응~ 순미 학생~

  순미는 은우 엄마의 안내에 따라 방을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깨끗하고 좋네요. 생각보다 넓구요. 여기로 할게요, 아줌마.

  은우 엄마는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 그래요? 어디 더 둘러보지 않아도 되겠어요? 

  - 네. 몇 군데 둘러봤는데, 여기만큼 깨끗하고 넓은 데가 없더라구요. 학교랑 거리도 가깝구요. 

    아랫동네에는 반지하밖에 없구, 골목이 너무 으슥해서 밤에는 무서울 것 같아요. 

  서로가 원했던 결과를 얻은 은우 엄마와 순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절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 네, 그럼 아줌마 이번 주 일요일에 이사 올게요.

  - 네, 그래요. 그럼 그때 봐요. 조심해서 가고요.

  이야기를 마치고 대문을 나서려던 순미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춰 서더니, 가방에서 반으로 접은 새우깡 봉지를 꺼내 은우에게 내밀었다. 

  -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순미가 이사 온 후로 은우네 집엔 활기가 넘쳤다. 회사와 집안일에 지쳐 있던 은우 엄마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동생을 만난 것처럼 들떠 있었고, 평소 말이 없는 은우 아빠도 순미에게 먼저 말을 건네곤 했다. 어둡고 무거웠던 분위기는 밝고 활기차게 변했고, 평소 익숙했던 고요함이 어느새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 한 명 들어왔다고 어떻게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그렇게 바뀔 수 있는지 은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은우가 알 수 없는 싱그러운 청춘의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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