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의 지문]
지문(指紋). 사람의 손가락 끝에 새겨진 작은 무늬가 왜 그토록 중요할까? 지구상 80억 인구 중 단 하나도 같은 지문이 없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손가락 끝 작은 골짜기에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손끝에 새겨진 우리의 '다름'이란, 결국 '유일함'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미시우주인으로, 유일무이한 지문 속에 무한한 다양성의 원리를 담고 있다.
손가락 끝의 고유한 무늬처럼, 우리 얼굴 또한 놀라운 다양성을 품고 있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 모두 다르다. 코, 입, 눈의 위치는 같은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천의 얼굴, 만의 표정.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사람'으로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다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건, 우리 내면에 '같음'의 틀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다름을 보는 눈 속에 같음이 깃들어 있는 역설.
'다름'이란 무엇인가? '같음'이란 또 무엇인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라는 명제 자체가 이미 타인과의 차별성을 전제로 한다. 생각 없이 존재하는 것들과의 차이를 통해 '나'를 정의하니, 역설적으로 '다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다름'의 인식조차 보편적 사고능력이라는 '같음'을 전제로 한다.
반면 동양에서 공자는 "己所不欲 勿施於人(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가르쳤다. 타인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그 가르침 자체가 '나'와 '타인'이라는 구분을 내포한다. 같음을 말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동양적 모순. 이것이 바로 지문정체론의 핵심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식하는 방식은 같다.
역사의 풍경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서양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바로 그 시대에 식민지의 타자들을 '다른' 존재로 규정하며 차별했고, 동양이 집단의 조화와 통일성을 강조하던 그 순간에도 가문과 계급 간의 엄격한 경계선을 그었다. 같음을 추구하며 다름을 만들고, 다름을 인정하는 척하며 같음을 강요하는 인류의 아이러니. 역사의 물줄기는 참으로 역설의 협곡을 흐른다.
DNA의 이중나선은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춤추는 모습과도 같다.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지만, 결코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는 그 미묘한 거리감. 그 거리가 바로 생명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신비의 공간이 아닐까? 인간 유전자의 99.9%는 같지만, 0.1%의 차이, 그 미세한 틈새에서 80억 인류의 얼굴이 피어난다. 분자의 춤사위가 창조한 다양성의 교향곡.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같은 주제에서 피어난 서른 개의 다른 음악 세계처럼, 우리는 미세한 변주를 통해 각자의 생명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같음'이 효율의 상징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아파트, 같은 교복, 같은 생활방식.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다름'이 가치가 되었다. 알고리즘은 취향의 차이를 분석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다름'의 시대에 우리는 더 비슷해지고 있다. SNS의 유행을 따라 '다르게' 행동하다 보니 모두가 같아지는 역설. 개성을 추구하는 방식마저 획일화되는 시대. 달라지기 위해 같아지는 현대인의 숙명. 이것이 바로 다름동일성의 시대적 역설이다.
인간은 왜 이렇게 속속들이 다른가? 또한 왜 이렇게 속속들이 같은가?
바닷가에 서면 모래알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 모양도, 크기도, 색도 제각각이다. 마치 인간처럼. 그러나 발아래 모래사장은 하나의 해변을 이룬다. 그리고 그 바다는 결국 하나의 지구를 감싼다. 다름과 같음은 결국 바라보는 눈의 거리에 달린 게 아닐까? 가까이서 보면 모두 다르고, 멀리서 보면 하나로 같다. 현미경과 망원경 사이, 어디에 진실이 있는가? 아마도 그 중간 어딘가, 우리의 맨눈이 자리한 그곳에.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다름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같음을 통해 타인을 인정하는 이 모순의 거울춤사위 속에서, 인간이란 결국 '다른 같음'과 '같은 다름'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유일함을 갈망하면서도 보편성을 찾아 헤매는 그 불가능한 여정 자체가 바로 우리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