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중 나간다는 것...

by 조혜영


• 마중[명사] :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함


‘마중’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 있다. 기다림이 있다. 찾아오는 대상이 있고, 마중을 나가는 주체가 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또한 마중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집안을 청소하고, 대접할 음식을 만들고, 자신의 얼굴과 옷매무새를 살피는 것과 같은 과정 말이다. 찾아오는 대상을 향한 사랑의 크기만큼 정성의 깊이도 더해질 테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문을 열고 그 사람이 오고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길을 떠난 마중의 주체는 마침내 그 길 위 어딘가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대상을 맞이한다.

‘나를 마중 나간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다가올, 아니 이미 다가오고 있는 지모를 미래의 나를 맞으러 나가다는 의미다. 그것은 현재의 ‘낡은 나’가 아닌 ‘새로운 나’ 혹은 ‘진짜 나’를 기다리는 적극적 행위이며, 성장을 위한 다짐이자 내딛는 한걸음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림’과 ‘가만히 있음’을 혼동하는가.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자는 문을 두드리고, 열매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는 나뭇가지를 흔든다... 오직 끊임없는 물음과 시도 속에서만 우리는 기다렸다 말할 수 있다.”

- <다이너마이트 니체> 고병권, p.18~19


기다림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 동사적 행위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신체의 노화와 함께 언젠가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를 만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신체가 아닌 정신이 늙어버린, 현재로부터의 성장이 아닌 퇴행의 나일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 적어도 그런 나를 만나고 싶진 않다.

불행히도 우리에겐 마법 지팡이가 없다. 원하는 모습으로 눈 깜짝할 새 변신을 꾀할 수 있는 어떤 재간도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리며 스스로를 연마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그 과정에서 작은 지혜를 깨달을 수도 있으니. 적어도 한순간에 뚝딱 이루어짐으로써 경박함도 덩달아 따라오는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지팡이1.jpg


새로운 나를 맞이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용기 있게 문을 열고 길을 나서는 것. 그 길은 생각보다 험난할 수도 있다. 그 길이 맞다고 믿었는데 잘못 들어선 길일 수도 있다. 어둠의 터널을 걷고 또 걸어도 다가오는 대상은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걸어보겠다는 의지가 있고, 잘못됐다 느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마음의 힘이 있는 한 우리의 마중이 허무하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결국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을지도 모른다. 멀리서 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실은 내 안에 늘 함께 있었다는 것을.


필요한 건,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얼마 동안이든지 기다릴 수 있다. 사랑의 힘이 그를 기다리게 한다. 무언가를 하게 한다. 이제 나를 마중 나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청소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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