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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11. 2017

정혜윤PD"우정과 사랑, 함께 하는 세계 없다면..."

저자 정혜윤 인터뷰


‘가슴에서 터지는 폭탄’이라고 했다. 정혜윤의 새 책 <인생의 일요일들>에 담긴 글이, 숲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의 삶 이야기를 답장으로 받은 이가.

삶의 온갖 기쁨과 슬픔, 절망과 위로의 순간을 재료로 빚은 이야기가 누군가의 가슴에서 폭탄처럼 터졌다는 말을 들으니, 그녀가 행복을 연구하고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제련하는 연금술사처럼 느껴졌다. 삶의 어느 한 순간, 너무 아름답고 고귀해서 조금 더 머물렀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이야기를 빚는 아주 사랑스러운 마법사. 까만 색 긴 머리에 뾰족한 빨간 모자, 진지하게 반짝이는 눈동자까지 더욱 그래 보였다.

슬픔에 빠져 삶이 시시하고 자신이 하찮을 때, 슬픔 속에도 마법 같은 삶의 순간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주문을 걸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인생의 일요일들>(로고폴리스/ 2017년)에 담긴 글을 더 가까이 두고 싶어졌다.
 



‘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는 사람 없어...정체성 갖는 게 중요
 
Q 지인이 보낸 ‘숲 이야기’ 편지를 읽고 답장에 담은 글들이 책으로 나왔어요.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사람들과 같이 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책인가요?
 
‘새가 날아갔다, 봄이다.’ 이런 짧은 글을 편지에 담아 주셨는데, 순수한 글이었어요. 내가 가진 이야기 중 가장 좋은 걸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여행하고 읽고 보고 생각한 것들을 답장으로 보내기 시작했죠. 제가 살면서 겪은 일들이 재료로 있는데, 이걸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물음을 안고 글을 썼어요. 제 답장이 ‘가슴에서 터지는 폭탄 같다’고 얘기하셨어요. 덕분에 계속 글 쓸 수 있는 힘이 생겼죠.
 
제가 2015년에 그리스에 갔을 때 느낌이 강렬했어요. 한 순간 스쳐가는 풍경 때문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오랫동안 자신과 진실하게 얘기를 나눈 장소였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꽃도 보고 바람도 맞으면서 슬픈 나를 위로하는 말을 찾았어요. 제겐 평화의 장소이고, 삶의 의지를 다짐하는 장소인 거예요. 그리스는 어찌 보면 상징인 거죠.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온 세상에 힘을 얻어서 살아가는데, 그 힘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Q 책 제목이 <인생의 일요일들>이에요. 그리스에서 평화를 경험한 시간들이 ‘인생의 일요일들’이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는 파편처럼 흩어지는 시간들을 정신없이 보내요. 그런데 여기 조금 더 있으면 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일상에 기적 같은 순간, 천상의 빛이 머리 위에 쏟아지는 순간들, 무언가를 사랑한 나머지 내가 변하는 순간이기도 해요. 그런 순간들을 늘리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잖아요.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시간을 파편처럼 보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럼 뭘 해야 하는지 각자의 질문이 있잖아요. 늘어져서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순간만 있지 않으려면 시간을 나누고 시선을 바꿀 기회가 필요해요. 우정도 사랑도, 서로의 시간을 모으는 거예요. 함께 하는 그 세계가 없으면 우리 역시 파편에 불과해요.
 
Q 일요일과 같은 순간들, 편하게 머무르는 순간들을 모으는 건 ‘정체성’과 관련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뜻인가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있어요. 몇 개씩 정체성이 있는데 그 중에 어떤 정체성일 때는 유달리 기분이 좋아요. 그 정체성은 자신이 지상에 편하게 머무르게 하는 정체성이에요. 잘 사는 방법인 거죠. 힘든 일만 하고 살 순 없어요. 마음이 가는 일도 해야 해요. 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이걸 잊으면 내가 아니지’ 하는 정체성을 갖는 게 중요해요.
 
그 정체성은 나와 세계를 확장시키기도 해요. 이를테면 저는 사랑스러운 갈색 강아지를 키우는데요,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제 눈에는 바뀌어야 할 부분이 보인단 말이에요. 내가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에 없던 행동을 하고 전에 몰랐던 것을 원하게 돼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확장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Q 개를 사랑하는 사람, 식물 애호가라고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자기 정체성을 자기가 선택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데, 우리한테는 그럴만한 여유랄까,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아요.
 
혼자 생각한다고 절대 알 수 없어요. 내면을 보지 말고 밖을 봐야 해요. 타자에게 보이는 내 반응으로 자기를 알게 되잖아요. 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고요.
 
우리가 잔인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다른 존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슬픔을 느낄 때가 많아요.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은 ‘너 없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말을 숱하게 듣다가 죽은 열아홉 살이란 말이에요. 그런 슬픔은 잊혀지지 않죠.
 



“인간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면 안돼…하지만 기대할 만한 인간은 옆에 있어야”
 
Q 타인을 통해서, 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한다면 타인이나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덧없음이에요. 우리가 어떤 한 사람에게 갖고 있는 추억과 사랑이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 또 그 사람 때문에 죽을 지경이 돼버리는 것도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게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너무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너무 좋게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책에 ‘내가 어떤 고유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좋은 일의 시작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내가 나인 게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설레죠.
 
Q 책에 ‘몇 년 동안 인간성에 대한 의심이 컸다’고 하신 부분이 생각나요. 잔인한 시대에 산다는 말도 하셨고요. 작가님은 어떤 지점에서 신뢰를 잃었는지 묻고 싶고요. 어떻게 회복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유족들이 혐오 발언을 들어야하는 걸 볼 때 그랬어요. 누구나 마음속으로 못된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걸 입 밖에 내지 않잖아요. 그런데 지금 사회는 그걸 얘기하면 솔직하다고 얘기해요. 이상한 거죠. 못된 말을 밖으로 내뱉지 않는 건 솔직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염치를 아니까 그런 거거든요. 염치와 솔직함이 혼동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언제든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인간들끼리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너무 많이 기대하면 안 돼요. 인간 모두에게 기대하면 반드시 상처가 커요. 하지만 기대할 만한 인간은 옆에 있어야 해요. 그 사람과 힘을 내서 사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런 확장을 통해서 그런 사람이 생겨요. 그 때 웃을 수 있고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서로 시간을 나눠 쓰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이에요. 그게 결국 인간성을 또 한 차원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Q 일요일의 시간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마지막으로 여유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나누고픈 이야기가 있다면요.
 
여유보다 자족감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스스로 족하고, 스스로 기쁘고 마음이 기쁜 시간이 필요하죠. 사람에겐 늘 힘들고 꼬이고 그런 시간만 있지는 않아요. 기적 같은 시간이 있거든요. 그런 일요일 같은 시간들, 또 좋은 친구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요. 삶의 균형 감각이 되어주는 거죠. 삶의 생기를 주는 시간과 관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슬픈 밤에 했던 생각들 중에서 좋은 생각, 최선의 생각에 이끌릴 때 힘을 냈어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하게 해주는 건 책이었거든요. 언제든 누구든 책 어느 페이지를 펼쳤을 때 힘을 낼 수 있는 책을 저도 쓰고 싶었어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말들을 구구절절하게 쓴 거예요. 이 책이 슬픈 사람의 균형 감각이 되었으면 해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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