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 이야기

by 인터파크 북DB

선영은 차에 오르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찝차. 뒷좌석에 마주앉은 성혜가 태민을 향해 씩 웃는다. 하지만 태민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피를 흘리며 묵묵히 맞고 있던 아이, 고함을 질러대던 남자, 어둠 속에서 싹싹 빌고 있던 아이들과 누나의 낯선 얼굴, 숟가락을 입에 물고 줄을 서있던 퀭한 눈동자들, 희멀건 죽과 보물창고. 그리고 한 아이의 이상야릇한 미소까지. 백미러로 둘을 살피던 운전수가 씩 웃었다.

“찝차, 첨 타본가 베?”
“............”
“서울 가먼, 이런 차 억쑤로 많다 아이가.”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턱이 없었다. 무라리에 둘을 내려준 찝차가 출발하자마자 김씨에게 물었다. 그리고 매형이 될지도 모른다는 대답에 너무나 속이 상했다. 세상에! 깡마른 사각형의 얼굴, 아래턱이 밑으로 쭉 빠져 나와 있는 사나이, 원장 형님의 찝차 기사가 감히 선영 누나와 결혼을 한다고?


이 대목에서 이씨가 들려준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가 생각났다.
“좌우간 느그 은종이 성이 나보고 (고아원)선생을 해 보락 해서, 맻 달간 허고 있는 판인 디... 마침 은종이가 장개를 가게 되얐그든. 그래서 나는 신랑 쪽 우인대표로 참석허고, 느그 어메는 신부 쪽 들러리로 오고 그랬지야.”
“그때 나는 웂었지라우?”
“야가 시방 구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허고 있네. 너는 생개나도 안 했지야. 좌우간! 친구들허고 걸상에 앉거 있넌 디, 느닷웂이 앞에서 나를 찾드라. 인사말을 허기로 했든 친구가 안 나갈란다고 뺀다는 것이여. 그러니 어찔 것이냐? 허어이, 원불교 식으로 허는 혼례식 절차라든가, 강당 안에 꽉 들어찬 하객들을 보고 겁이 났든 생이제에. 남자 새끼가 고로코 간뎅이가 적어서 어디다 쓸 것이냐?”
“...헤헤헤. 진짜 웃긴다.”
“그런게 사회자가 내 옆에 와서, 마고 보챈다. 한 소리만 해 주라고...”
그러나 억지춘향으로 세워진 대타(代打)가 홈런을 치고 말았으니. 이씨의 바리톤 음성과 유식한 어투, 타고난 입담은 즉석연설을 성공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단다. 더욱이 호리호리한 키와 말쑥한 양복, 하얀 얼굴, 젊음의 기개가 넘쳐나는 눈동자 등은 하객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았다나.
“그때 느그 어메가 정신을 잃어 버렀든 생이제에. 킥킥킥! 솔직히 촌에서 나만헌 남자가 어디 있겄냐?”
아니나 다를까. 이쯤해서 이씨 특유의 자기자랑이 침을 튀겼다. 그러나 김씨가 이씨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외모나 학벌, 말솜씨가 아니었다.
“첫째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둘째 도박을 허지 말 것, 셋째 여자치기 허고 강짜를 허지 않을 것인 디... 왜 그랬는고 허니, 큰오빠는 술로 망쪼가 들어버렀고, 둘째 오빠는 화토로 패가망신을 했고, 시째 오빠만 읍에서 치과 험시로 돈도 많이 벌고 출입도 허고 그러기는 허지야. 그런디 또 시째 언니는 의처증 환자 만나 갖고, 한 많은 세상을 뜨지 안했냐?”
“그러먼..”
“본래 우리 친정집도 부자였씨야. 신하리가 읍에서 가찹지 않냐? 좌우간 전답도 많고, 소도 대여섯 마리씩이나 되고, 상일꾼만 해도 두어 명씩 두고 그랬지야. 그러고 칠 남매 가운데 내가 막두인 게 오빠를 싯, 언니를 싯이나 둔 복둥이 아니냐? 그런게 실은 너도 외갓집으로 보먼, 귀헌 아들이지야. 왜냐허먼 오빠들한테는 아들들이 있었제마는, 언니들한테는 하나도 웂었그든. 내 우게로 언니 싯이서 시집을 갔제마는 딸만 낳고 그랬넌디, 나는 떡뚜꺼비 같은 너를 딱 낳아버린 게, 느그 외한아씨가 너만 보먼 입이 벌어지시고 그랬제. 이씨 집안에 인물 났다고. 그런디 하로는 시째 언니가 시집을 갔넌디...”
목수였던 남편은 술만 마셨다 하면 아내를 두들겨 팼다. 얌전하게 집에 있노라면 ‘어떤 놈이 집에 댕개 갔냐?’며 거품을 물었고, 밖에 나가 일을 보고 올라치면 ‘어뜬 놈 허고 붙어먹었냐?’고 강짜를 했다. 주먹과 발길질은 예사였고, 장도리까지 치켜들어 사정없이 후려쳤다. 심지어 정강이 사이에 각목을 받친 다음, 망치로 무릎을 꽝꽝 쳐대기까지 했다. 마치 나무에 못을 박듯이.
“개우 개우 목숨만 이어가는 디, 날마닥 생지옥이 따로 웂지야 이. 집에 다른 남자가 오먼 강짜를 허고, 여자가 오먼 남자가 심바람 보낸 것으로 의심을 헌 게. 그 속에서도 내일이먼 쪼까 나아 질란다냐, 애기들이 크먼 쪼까 좋아질란다냐 험시로 살다가...”
결국 양잿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단다.
“차말로 그런 인생도 있드라. 하이고! 그런게 말이 있는 법이다. 의처증 있는 남자허고는 절대 못 산다고.”
“우리 아부지는 안 그러는디 이?”
“두고 봐야제마는, 느그 아부지한테도 그런 끼가 쪼까 있기는 허지야. 그것은 그러고, 큰오빠는 사람은 나무랄 디가 웂이 좋고 헌 디, 고놈오 술 땜에 그랬고. 시상에, 난창에는 밥을 술에다 말아먹어야. 그것이 문 맛이끄나? 술에 곯아서 폐인 되다시피 해서 환갑도 못 새고 돌아가겠지야. 또 누구냐? 응. 두째 오빠는 그 웬수놈오 화토 땜에 쫄딱 망허고. 오른손 모가지 짤르면 왼손으로 헌닥 안 허디야? 돈 잃고 속 좋은 놈 웂다고, 밤나 술에, 담배에. 하니나! 너는 장난으로라도 화토짝 만지지 말어. 느그 아부지도 생전 화토 같은 것은 몰르고 사셨은 게.”


by 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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