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주미 Dec 14. 2021

01 자기만의 (요가)방

[인터뷰] 아주 천천히, 좋아하는 걸 찾아가고 있어 - 김지홍

이유 없이 지홍이를 응원하고 싶어진 순간이 떠오른다. 시작은 2019년 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언니 가족으로부터 요가복 세트를 선물 받고 환호하며 기뻐하던 모습. 맥락을 모르고 보고 있던 내 입꼬리마저 저절로 올라가게 만드는 영상이었다. (비공개 계정이라 언박싱 영상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머지않아 그의 인스타그램은 요가 수련 사진으로 채워졌다. 이 친구가 요가에 진심이라는 걸 못 알아차린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니 지홍이가 인터뷰를 신청했을 때, 우리 대화의 주제가 ‘요가’가 되리라는 건 당연했다. 지홍이는 이 대화를 위해 반차를 냈고,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꼼꼼히 준비해 온 것을 넘어 우리의 대화를 스스로 이끌어 갔다. 평생 무언가에 관심을 갖거나 좋아해 본 적이 없다던 사람, 그러나 그는 이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01 자기만의 (요가)방
02 지금의 행복을 의심하지 마
03 재인아, 엄마한테도 꿈이 생겼어

01

자기만의 (요가)방

(이 대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4분의 시간을 내어주세요.)



요즘엔 지홍이 생각하면 바로 연관 키워드처럼 요가가 떠올라.

지홍: 니가 내 인스타 사진 보고 나랑 요가에 대한 얘길 나누고 싶다고 했을 때 이게 진짜인가 싶었어. 사실 요가 얘기를 너무 나누고 싶었거든!


요가 한 지 이제 2년 정도 되는 건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  

지홍: 응, 2019년 여름쯤 시작했으니까 딱 2년 정도. 처음엔 나도 그냥 다이어트로 생각하고 시작했지. 둘째 낳고 살이 많이 쪘는데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한번 해볼까 해서 첫째 학원 픽업해 주는 길에 근처 요가원을 다녔어. 난 원래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다리 뻗고 ‘니은(ㄴ) 자’로 앉아 있지도 못했거든. 근데 요가를 3개월쯤 하니 그 자세가 되더라고! 고등학생 때부터 디스크로 1년에 한 번씩 시술 받고 2주 정도는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허리가 안 좋았고 아이 낳고도 몸져누워서 한 달을 못 일어났는데, 그렇게 반듯하게 앉을 수 있게 되니까 ‘이건 뭐지?’ 싶었던 거지.  


운동하면서 갑자기 그렇게 몸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에 오는 희열이 있더라.

지홍: 난 운동 신경도 없고 운동을 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거의 쇼크 수준의 변화인 거지. 그리고 혈액순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알게 됐어. 출산 후 피부에 탄력을 잃고 색소 침착도 남아서 몸을 가리는 일에만 신경 썼는데, 요가를 하고 나니 늘 불편했던 어깨와 겨드랑이 림프절 부분이 개운해지고 색소 침착도 사라지더라. 건선도 심해서 피가 날 정도로 피부가 거칠게 갈라졌는데 뽀송뽀송 해지고, 마스크를 아무리 써도 트러블이 전혀 없고 오히려 피부 톤이 정리가 되고… 스스로 너무 만족스러운 거야. 피부과를 가지 않아도 되고, 비싼 화장품을 찾지 않아도 되고, 성분을 따져서 좋은 걸 안 바르고 아무거나 발라도 되다니.


건강은 물론이고 외모 자체에도 큰 변화가 있었구나.

지홍: 지금은 얼굴도 몸도 20대 때보다 더 마음에 들어. 1억을 준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바꾸고 싶어! 예전엔 비싼 물건을 많이 샀는데,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땐 비싼 브랜드 옷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 입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돈을 썼던 거지, 내가 진짜로 그 비싼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거의 만병통치약이네?

지홍: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웃지만, 나는 요가 덕분이라는 믿음이 있어. 더 맹신하게 되고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 지홍이가 요가를 정말 좋아하는 걸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인스타에서 봤던 영상 때문이었어.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가, 형부가 준 요가복 선물을 열어 보고 니가 너무너무 기뻐하는 거야. 선물을 받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이 나한테도 너무 인상적이었어.  

지홍: 요가를 배운 지 몇 달이 지나고 언니네 가족들이 있는 싱가포르에서 지낼 때인데, 내가 형부한테 요가 강사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거든. 그 때 형부도 ‘회사 잘 다닌다더니 갑자기 요가 강사?’라는 반응이었지만, 서프라이즈로 룰루레몬 요가복을 선물하면서 응원을 해준 거야.

 

룰루레몬이라니 괜히 더 부러웠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선물을 받아들이는 니 모습을 보니 정말 요가에 진심이구나 싶었어.  

지홍: 한 번 내뱉었으니까 진짜 ‘제대로 해볼게요’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그러다 얼마 안 되고 코로나 때문에 올스톱이 되면서 요가원이 문을 닫고 집에서 혼자 연습하게 됐지.


그때부터 책장이 보이는 그 공간에서 수련하는 사진들이 올라온 거구나.

지홍: 응, 그땐 집에 짐을 가득 채우고 살아서 요가매트 겨우 필 정도의 작은 공간밖에 없었는데, 거기서도 혼자서 미친 듯이 연습했어.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 놓고 한 타임하고, 하루 종일 가정 교육하고 밤에 애들 재워 놓고 또 한 타임 하고. 그렇게 하루에 두세 시간을 한 것 같아.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했구나. 나도 요가를 띄엄띄엄 오래 했지만 생활 체육 정도의 수준이었지 그렇게 푹 빠져서 열심히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지홍: 나도 그게 신기했어. 내가 왜 요가를 좋아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는 상태라 책도 사서 읽어보고 그랬거든. 요가가 ‘유즈’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인데, 유즈가 ‘결합하다’라는 뜻이래. 몸과 마음을 결합하는 거야. 내 몸을 움직임으로써 내 마음을 조절하는 거지. 몸과 마음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둘을 하나로 응집해서 나한테 오롯이 집중하는 거야. 그렇게 몰입하고 나니까 너무 좋았던 거지.   


몸과 마음이 결합되는 경험을 처음으로 언어로 구체화해서 말할 수 있게 된 거네.

지홍: 응, 그전엔 그냥 ‘아 좋다’하고 말았지, 그 느낌이 정확하게 ‘마음이 조절됨’이라고 설명 못했던 거지. 코로나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서 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삼시 세끼 다 먹이고 신랑은 퇴근이 늦고, 그 와중에도 스트레스 없이 남편이랑 좋은 관계 유지하고 육아할 수 있는 게 다 요가 덕분인 거 같은 거야. 마음이 조절되니까 쓸 데 없이 짜증 내거나 화를 낼 일이 사라져. 너무 신기해.


뭔가에 이만큼 몰입해 본 적이 또 있어?

지홍: 아니, 나는 학생 때도 거의 밖에 나가 놀지 않았고, 심지어 2002 월드컵 때도 혼자 집에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만사에 궁금한 게 없고 무언가에 열광한 적도 없어. 그랬던 내가 지금은 요가가 너무너무 궁금해. 이 만족감이 어디서 오는지, 이 자세의 이름이 뭔지, 그 뜻이 뭔지 이런 게 전부 다 궁금해. 그러니까 더 시간을 만들어 내고 싶고, 오늘은 이 자세를 좀 더 해보고 싶고, 12시든 새벽 1시든 이걸 꼭 해내고 자고 싶고 그렇게 되는 거야.

 

그래서 그런지 니가 제대로 요가를 시작한 건 2년 정도인데도 엄청 빠르게 숙련되었다는 느낌이야. 그냥 운동 차원에서 주 2-3회씩 학원 다녔던 나 같은 사람이랑 너무 다른 속도랄까? 물론 속도를 비교하면 안 되는 게 요가 정신이라고 하지만 말이야.  

지홍: 지난주 수업에서 원장님이 말하길, 요가에서 초보자랑 숙련자랑 나누는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 뭐라고 생각해?


글쎄, 잘 모르겠네.

지홍: 개인 수련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있대. 요가원에 출석해서 수업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 이 수련을 얼만큼 응용해서 내 것으로 만드느냐의 차이. 선생님의 구령 없이도 내 카운트대로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 원장님이 그 말 하면서 내가 이렇게 개인 수련하며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되게 인정해 주고 싶대. 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원장님이 말해주시니까 좋더라고.  

 

특별히 ‘오늘 수련 정말 좋았다’라고 느낄 때도 있어? 그렇다면 그건 어떤 포인트 때문일까.

지홍: 정말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어. 나는 빈야사(*동작 사이의 전환이 흐르듯이 연결되는 요가)를 하면서 시퀀스를 부드럽게 계속 연결하는 동작들이 너무 매력 있거든. 그렇게 쉬지 않고 호흡하면서 움직이다 보면 어떨 땐 춤을 추는 것 같고, 어떨 때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은 무중력 상태가 돼. 그 순간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또 다른 내가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번에 특강을 다니면서 이런 경험에 대해 얘기했더니, 선생님이 그게 ‘분리주시력'이래. 나한테 집중하면 나를 제 3자처럼 바라보는 그 상태가 온대. 이럴 때가 정말 있더라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지구나.

지홍: 물론 매일 오진 않아. 이것도 포인트는 내 마음인 것 같아.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집중되면 어느 날 이런 순간이 오지. 물론 그날의 컨디션에도 좌우되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최근엔 후굴 자세(*몸을 뒤로 젖히며 하늘 쪽을 바라보게 하는 자세)에서 고통스럽게 끙끙 버티다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도 있었어. 지금도 계속 기억이 나.


사진으로만 봤을 땐 니가 후굴 자세를 아주 평온하게 해내는 줄 알았어.  

지홍: 아냐,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자세가 가슴이랑 어깨를 반대로 여는 거거든. 코어의 힘은 어느 정도 있지만 팔의 힘으로 밸런스를 잡는 것도 아직 어렵고. 하타요가(*음과 양의 조화를 몸을 통해 수행하는 요가)계에서 아주 유명한 마이뜨리 선생님 특강을 들었을 때인데, 선생님이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후굴 자세와 같은 말)에서 7분을 있어보자고 하셨어. 카운트가 시작되고, 버티다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결국 7분을 해냈지. 선생님이 어땠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그날 뭐라고 대답했냐면 ‘너무 힘들었는데, 3분이 넘어가니까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고 했어. 어느 순간을 지나고 나니까 손과 발이 지탱하고 있는 걸 전혀 못 느끼고 누가 나를 떠안아 주는 것처럼 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러다 다시 현실로 폭삭 가라앉았는데, 너무 신기했어. 안 될 것 같은 자세를 해낼 때 어떤 기분인지 알잖아? 집에서 혼자 수련했을 때는 조금 하다 못 버티고 내려왔으니까. 선생님이 그게 러너스 하이 같은 거라고 설명하시더라고. 내 몸이 공중에서 유영하는 듯한 그날의 기분이 계속 생각이 났어. 이걸 계속 느끼고 싶다며 집에서 연습하는데 집에선 잘 안 되네.

후굴할 때 디스크 때문에 몸을 사리거나 그런 건 없어?     

지홍: 그런 건 많이 없어졌는데 몸이 뻣뻣하니까 아직도 동작 자체는 고통스러워. 자연스럽게는 안되고 ‘힘들지만 계속 한번 해보자, 으쌰 으쌰!’ 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리고 내가 이 자세를 해내고 이 시퀀스를 만들었다는 걸 놓치기 싫으니까 인스타에 기록하게 되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정말 더 잘하고 싶고, 요가랑 더 가까워지고 싶고, 계속 욕심이 가.


그렇게 요가 때문에 새로 이어진 사람들도 많이 보이더라.

지홍: 특강을 찾아서 요가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 가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스무 명씩 있더라? 요가 얘기만 해도 대화가 되니까, 수업 한 두 번 듣고도 정말 친해졌어. 그런 경험 처음 해봤거든. 내가 회사에선 어린 친구들이랑 잘 못 지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얘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너무 어렵더라고. 근데 자격증 코스에 들어가면서 만난 사람 중에 나보다 열 살 어린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랑은 요가 얘기만 해도 너무 편한 거야. 공감대 형성이란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일면식 없던 사람과도 내가 하고 싶은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내 기존 지인들 안에서만 공유한다는 게 얼마나 한계인지를 1-2년 전부터 느끼고 있어. 아무리 친한 친구도, 심지어 네 남편도 마찬가지로, 취향을 다 공유 못 하잖아. 그런 건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야 하는구나 싶어. 내가 내 좁은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에게서 모든 걸 다 이해받길 바라니까 결핍을 느꼈는데, 밖으로 찾아 나서니까 비슷한 사람이 있는 거잖아. 그래서 니가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쌓는다는 것도 너무 좋아 보여.

지홍: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진 것 같아. 예를 들면 선생님들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잖아. 처음에는 이 선생님 시시하다는 판단을 금방 내리게 되더라고. 난 이 동작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쉬운 거 시키는 거냐는 자만심이 있었어. 그러다 집에 와서 그 동작을 다시 연습해 보니까, 문득 그날 그 선생님이 말한 포인트 하나가 떠오르면서 같은 동작을 새롭게 되새기게 되는 거야. 그날 수업에서 하나를 얻어 온 거지. 그때부터 50분 수업이 시시해도 ‘한 가지만 나한테 맞으면 그거 하나 배운 거니까 절대 시시하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게 됐어. 근데 그런 마음이 확대되니깐 있잖아? 누굴 만나도 그 사람한테 배울 게 하나는 있을 거라는 마음이 생겨. 그러면서 대화도 경청하게 되고, 인간관계도 좀 더 요가스럽게 다져지더라고. 그런 게 되더라.


요가 안에서 정말 많은 걸 얻었네.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 마음의 평화, 새로운 관계와 긍정적 태도까지…!    

지홍: 전부 다 요가 덕분이지. 그래서 어떤 느낌이냐면, 이건 나한테 종교 같은 거야.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전체보기>

01 자기만의 (요가)방 - 현재글

02 지금의 행복을 의심하지 마 - 다음글

03 재인아, 엄마한테도 꿈이 생겼어


인터뷰이: 김지홍 (인스타그램 ID: @jazz486j)

인터뷰: 오주미 (인스타그램 ID: @fayetree)

대화 시기: 2021년 9월

사진 제공: 김지홍



매거진의 이전글 03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뭐 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