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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Aug 21. 2022

"저는 어설픈 엄마예요."

인생의 장면들 (8) 


“음... 어설픈 엄마? 그게 지금의 저인 것 같아요.”     


수영이 앞에 놓인 유리컵을 만지작 거리며 말한다. 아냐냐냔! 철운의 무릎에 앉은 지아가 작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식탁 위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수영의 시선이 빠르게 지아의 동그란 얼굴과 지아가 가리키는 방향 사이를 오간다. “지아 이거? 이거는 스콘인데, 빵이야. 냠냠냠 하고 먹는 거야. 지아 냠냠하고 이거 먹을까?”     


어설픈 엄마라는 본인에 대한 묘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함과 세심함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영이 스콘을 조금 떼어내 지아의 손에 쥐어준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에서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엄마’거든요. 애랑 시간 보내고, 돌보고, 밥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그런 걸 1년 반쯤 하다 보니까 좀 익숙해지기는 했어요. 근데 그래도.... 제가 엄마로서 아직 어설프고, 뭘 잘 모른다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요.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 보니까, 내가 잘 못해서 지아가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많이 들고..."               


"어떤 점에서 어설프다고 느끼시는데요?" 내가 물었다.     

"음.... 육아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그걸 현실에 적용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지아가 요새 자꾸 저한테만 붙어 있으려고 하거든요? 아빠한테는 관심이 없고 엄마만 바래요. 근데 아기들이 그러는 시기가 있다는 걸 책에서 읽었거든요. 이게  '원더윅스'라고... 생후 24개월 안에 약 10주 동안 급성장하는 시기래요. 아기가 자기 세계가 바뀐 걸 깨닫고, 그러니까 자기가 있는 곳이 더 이상 엄마 자궁 속이 아닌 걸 깨닫고 힘들어하면서 엄마한테 더 달라붙는대요. 지아가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수영이 지안을 보더니 휴지로 볼을 살살 닦아준다. 지안의 푹신한 볼에 여기저기 묻어있던 노란 빵 부스러기가 깔끔히 닦였다.      

     

"근데 제가 지아 낳기 전에 육아 공부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책이랑 블로그도 읽고, 강연 영상도 찾아서 보고... 그래서 이론상으로는 빠삭한데.. 그래서 애가 ‘원더윅스’ 시기를 겪을 때가 되면 난 이렇게 해야지,라고 계획하고 생각해 둔 게 다 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이론으로 아는 거랑...."     


"엄마, 엄마!" 지아가 통통한 양팔을 위로 들고 수영에게 외친다. "지아 뭐? 아래로 내려갈 거야? 내려가고 싶어요?" 수영의 말에 철운이 자기 무릎에 앉은 지아를 양팔로 번쩍 든다. “으아앙!” 지아가 하얀 만두 같은 동그란 얼굴을 쿡 찡그린다. "왜 지아야? 엄마가 내려줘? 아빠 말고 엄마가 내려줘?" 수영이 지아를 들어 바닥에 내려준다. 지아가 거실로 달려간다.      


"그... 이론이랑 실제가 너무 다르다는 걸 정말 많이 느끼고 있어요.”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거실로 달려가는 지아를 바라본다. 거실 바닥에는 지아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푹신푹신한 매트가 깔려있다. 지아가 거실에 놓인 아기 미끄럼틀과 장난감 꾸러미를 지나, 거실과 식탁 사이에 놓여있는 냉장고를 지나, 내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온다. “따따따?” 지아가 알 수 없는 아기 소리를 낸다. “안녕?” 답을 하니 지아가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지아가 낯선 사람 무서워하는데 신기하다... 빵 사 오셔서 호감이 막 가나 봐요. 하하.”          

수영이 말한다.  


"아무튼.. 아기들이 '원더윅스'를 지날 때 전에 안 하던 행동을 한다고 하거든요? 근데 지아도 그런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저를 막 때려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아... 어떨 때 때리는데요?”     

"음... 지아가 요새 맨날 저한테만 붙어 있으려고 한다고 했잖아요. 밤에 잘 때도 그런데. 잠이 들 때 꼭 제가 있어야 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제 귀.... “     

“귀?”     

“네 귀요. 지아가 제 귀를 만지면서 잠들거든요. 근데 그게 아빠 귀여서는 안 되고 꼭 제 귀여야만 해요. 그래서 매일 제가 재울 수밖에 없어요. 근데 지아가 제 귀를 만질 때, 제가 자는 척을 할 때가 있거든요. 엄마도 자니까 지아도 빨리 자라고. 그러면 저를 막 때려요. 근데 맞는 게... 아무리 아기라지만 아기가 때려도 아프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지아 재우러 들어가는 게 무서웠어요... 가끔 지아가 자다가 새벽에 깰 때는 남편을 지아 방으로 보내는데. 새벽이라 방이 어두우니까, 지아도 방에 들어온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잘 모르잖아요. 모른 채로 그냥 넘어가면 좋겠는데. 그냥 대충 아빠 귀 만지면서 다시 자면 좋겠는데, 지아는 꼭 얼굴을 만져서 확인해요. 근데 만져보면 엄마가 아닌 걸 알잖아요. 그럼 지아가...”     

“아아악! 하면서 양손으로 제 얼굴을 막 밀어버려요. 하하하.”     

철운이 씁쓸하게 웃는다.     

“때리는 것도. 남편은 안 때리고 저만 때려요. 아마 남편은 무섭게 혼을 내서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저도 혼을 내긴 내거든요?”     

“자기가 혼내는 건 하나도 안 무섭잖아.”      

철운의 말에 수영이 분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해야 무서운 거야?”     

“아무튼. 이런 것도 다 공부했던 거거든요. 아기가 이런 행동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 그런 거.”     

“어떻게 하면 된대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법으로 애한테 화를 내래요. 근데 또 애한테 ‘안 돼’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하지는 말래요. 그래서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적절한 타이밍’이 언제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사실 저는 지아한테 화를 내는 것도, ‘안 돼’라는 말을 하는 것도 좀 싫어요... 그런 걸 너무 자주 해서 애 자존감이 낮아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근데 또 맞는 건 싫고... 이런 게 저한테는 참 어렵더라고요.”          



“치즈, 치이즈!” 거실 바닥에서 놀던 지아가 냉장고 문 앞으로 아장아장 달려와 외친다. 지아가 가리킨 회색 냉장고 문에는 열댓 장의 사진이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다. 수영과 철운의 결혼 전 시절로 보이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달빛이 비치는 밤거리. 자그마한 태국 국기가 달린 오토바이 헬멧을 쓴 수영과 철운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그 사진 아래로 냉장고에 든 재료와 각 재료의 구입일, 유통기한 등이 적혀있는 A4용지가 붙어있다. 철운이 지아를 번쩍 들어 아기용 식탁에 앉히는 사이, 수영이 냉장고에서 치즈 한 장을 꺼내 지아 앞에 놓아준다.          


“두 분 결혼 전에 태국에 잠깐 계셨다고 했죠? 저게 그때 사진인가 봐요.”     

“아 네 맞아요. 6개월 정도 있었어요. 저 때 정말 좋았는데.... 태국에 잠깐이라도 살다가 오길 잘한 거 같아요. 그때 이후로 제가 좀 달라진 게 있거든요. 태국 사람들은, 음... 남한테 보이는 거에 신경을 별로 안 쓰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거기 살면서 좀... 남의 시선으로부터 아주 조금은 편안해진 게 있어요.”      

수영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잇는다.      

“저는 저 스스로 되게 못났다고 생각하는 게 있거든요. 남의 시선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남이랑 저를 자꾸 비교해서 그런지.... 열등감이 좀 있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도 그런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공부하는 것도, 논문 쓰는 것도... 다 못하겠다고 맨날 울고... 다른 친구들도 저랑 똑같이 힘들다, 힘들다 말은 하는데, 실제로는 다들 너무 잘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제가 제일 못하는 것 같고... 대학원 때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그랬어요... 지금도 다른 엄마들은 쉽게 척척 해내는 것들을 저만 어려워하는 것 같고.... 아무튼 전... 공부든 직장 일이든 육아든 뭐든... 어떤 성과가 나왔을 때... 그 결과물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실망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거 이거!” 지아가 식탁 한편에 놓인 아이패드를 가리킨다. “지아야 왜? 뭐. 뭐 보고 싶어? 뽀로로 볼래?” 수연이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더니 영상을 튼다.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먹여주세요!” 아이패드에서 또렷하고 친절한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지아가 얌전하게 영상을 본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여유가 생겼어요. 태국 다녀오고 나서도 그렇고, 남편 만나고 나서도 좀 나아진 것 같아요. 남편한테서는 열등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거든요. 오빠는 제가 막 놀리고 공격해도... ‘오빠 왜 이렇게 키가 작아? 얼굴이 왜 이렇게 커? 머리카락 너무 많이 빠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어 맞아. 나 얼굴 진짜 커. 나 곧 대머리 될 것 같아.’ 막 그래 버리니까 제가 놀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점이 저는 되게... 뭔가 부럽고... 여유가 있구나 싶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남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해서 그런지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게 싫거든요. 그래서인지 제가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고, 지아한테도 ‘싫어, 안 돼’ 그런 소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이런 제 단점을 지아가 닮을까 봐, 그게 좀 두려운 건가?... 근데 정말 헷갈리고 어려워요. 제가 지아한테 단호하게 굴면 그것 때문에 지아가 소심해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제가 단호하지 못한 모습을 지아가 닮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보보! 보보!” 영상에 뽀로로가 등장하자 지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분한다.     


“지아는 누구 성격을 더 닮은 것 같아요?”     

내가 물었다.     


“지아는... 얼굴은 아빠인 저랑 진짜 똑같이 생겼죠. 하하... 성격도... 고집부릴 때는 저를 닮은 것 같아요. 근데 지아가 뭔가를 조심성 있게 하거나 계획을 세워서 하는 성격이 있거든요? 그런 건 엄마 쪽인 것 같아요. 저기 냉장고 문에 식재료 구매한 날짜랑 유통기한 적은 종이 붙여 놓은 거 보이세요? 저런 게 다 수영이 작품이거든요. 지아 이유식 준비할 때도 식단을 엑셀표로 쫙 짜서 하더라고요. 여행 갈 때도 계획 다 짜고 숙소 미리 다 예약하고 가는 스타일이고. 근데 보면 지아가 좀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지아를 바라보며, 수영이 말한다.     


“지아가 요새 늘 제 곁에만 있으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 성향을 좀 더 닮아가는 것 같은데.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저의 단점... 저의 안 좋은 점... 그런 걸 지아가 닮을까 봐 좀 걱정되긴 해요. 늘 ‘나는 못 해’라는 생각이 앞선다든지, 결정 내리는 걸 어려워한다든지 하는 저의 단점을... 지아가 배우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이름은 가명입니다. 





인생의 장면들(Scenes from Life)은 사람들의 삶의 장면들을 담은 영상•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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