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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Dec 26. 2016

할아버지는 아기같았다.

“간호사. 간호사.”

다급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초조하고, 어느 정도 불안한 그런 목소리였다. 겁. 그래 그게 가장 많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할아버지는 간호사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간호사는 왜 자꾸 불러요. 그만 자요, 응?”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나무랐다. 집중치료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두 노부부를 두고 간병인 여사님들은 말이 많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나이에 비에 훨씬 젊잖아. 그게, 두 번째 부인이래. 어쩐지 별 신경을 안 쓴다 하더니. 건강하고 돈 많을 땐 좋다고 했겠지. 쯧쯧. 

“간호사. 간호사.”

할아버지의 겁먹은 목소리에 나도 점점 겁이 났다. 정말 어디 안 좋으신 거 아닌가. 아까 간호사가 다녀가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뭐가 필요하시니까 저렇게 애타게 부르는 거 아닌가. 환자와 환자를 분리해 놓은 커튼 사이로,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간병인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엄마 침대에서 두 칸 떨어진 할아버지 침대로 갔다. 

“할아버지, 간호사 불러드려요?”

“응. 응. 불러줘요.” 

집중치료실이라 문 밖으로만 나가면 간호사실이었다. 오늘 야간 당번을 맡은 간호사는 세 명이었다. 엄마와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서로 익숙해진 얼굴들이다. 동그란 안경을 쓴 간호사, 우리 이모를 닮은 짧은 단발머리의 막내 간호사, 화려하게 생겨 연예인을 해도 되겠다고 여사님들이 말하는 간호사가 오늘의 당번이다.

“그제 들어온 할아버지요. 자꾸 간호사를 찾으시는데.” 

화려하게 생긴 간호사에게 말했다. 상냥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단호한, 똑 부러지는 성격의 간호사였다. 왜 자꾸 부르실까요. 간호사는 간단한 키트를 챙기고는 나를 따라 들어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명료하고 큰 목소리로, 간호사가 할아버지를 불렀다.

“응.”

“할아버지! 간호사 왔어요. 간호사 왜 불렀어요?”

“불안해. 막 불안해. ….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아.” 

간호사가 맥박을 체크했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괜히 불안해서 그러시는 거야. 신경안정제 드릴 테니까 오늘은 좀 자요. 알았죠?” 

“응.”

할아버지는 아기 같았다. 괜찮다는 간호사의 말에 마음을 놓았고, 좀 자라는 간호사의 말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알았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간호사의 말을 엿듣던 나는 침대에 모로 누웠다. 이제 자자. 

“간호사. 간호사.” 

또 할아버지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럴까? 이제 그만 하고 좀 자요. 사람들 다 깨잖아.” 

할머니의 나무람에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병동은 조용해졌고,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아침 8시쯤 눈을 떴다. 병동이 소란해서 커튼을 열어보니, 할아버지 침대로 대여섯 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이른 새벽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옆자리 여사님이 말해주셨다. 여사님은 자리가 정리될 때까지 엄마를 데리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동을 나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자는 동안 밤새 간호사를 찾았을까. 자신이 죽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을까. 그래서 무서웠고 불안했을까. 깜깜한 병동에 누워, 더 깜깜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지 잠시 생각해봤지만,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쯤 더 간호사를 불러드릴걸. 처음 만난 할아버진데, 얼굴도 한 번 제대로 못 본 할아버진데, 많이,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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