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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Jun 12. 2022

할아버지는 매일 밤 아내에게 말을 건다.

인생의 장면들 (7)

“아내 분은 어떻게 만나셨는데요?

“소개로 만났지. 그때는 다 소개로 만나서 결혼했어. 60년대였으니까.”     


할아버지가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으로 허공을 이리저리 좇는다. 다음 말을 기다리며 할아버지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주름과 검버섯이 언뜻언뜻 보이는 얼굴. 깔끔하게 정리한 티가 나는 옷차림. 한 때는 꽤 짙었을 것 같은 눈썹. 할아버지의 시선이 다시 나와 마주친다. 부담을 드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할아버지에게로 집중됐던 신경이 느슨해지자, 주말 낮 커피숍의 소음이 귓가로 쏟아져 들어온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잇는다.      



“약국 하는 선배한테 전화가 왔어. 약국에 놀러 오래. 그날이 정월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떡국이라도 얻어먹으려나, 하고 갔지. 근데 약국에 갔더니 젊은 처녀 여섯 명이 앉아있더라고. 그래서 아, 선배가 이 중에서 누구를 소개해주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선배가  ‘아무개 들어와 봐.’ 그래. 안으로 들어온 처녀한테 인사를 했더니 선배가, ‘니들 둘이 나가 가지고 밥을 먹든지 떡을 먹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뭐 나가 가지고.... 그 당시에는 이런 커피숍이 아니고 다 다방이야. 다방에 들어가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마음에 들더라고. 마음에 딱 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사귀어가지고. 바로 그냥...”      


할아버지가 바지춤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작은 사진 한 장을 빼서 나에게 건넨다. 한쪽 모서리가 살짝 어그러진 흑백 사진이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신랑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서 있다.      


“미인이시다. 옆에 계신 게 할아버지예요?”

“응.”     


할아버지가 사진을 지갑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사진 속 그것을 닮은 미소가 슬쩍 묻어있다.     


“.. 지금 같으면... 진짜... 같이 해외여행도 좀 가고 그랬을 텐데. 우리 마누라 하고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갔어. 제주도 같은 데는 몇 번 갔지만. 그것이 진짜 좀... 안 됐어.”     

"네..."

“지금은 뭐.. 해외여행 가고 싶으면 그냥 아무 때고 갈 수가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애들도 가르쳐야 되고 하니까...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여유 있다고 볼 수도 없었거든. 그래도... 젊었을 때 지금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진짜 잘해줬을 텐데. 어디 여행도 많이 데리고 다녔을 테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을 텐데... 내가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다른 여자들하고는 여행도 가고 멋진 레스토랑도 가고 했어. 근데 집사람 하고는 가봐야 뭐... 동네 불고깃집이나 가끔씩 가고 그랬지. 그런 게 이제 와서는 진짜 잘못... 잘못한... 내가 잘 못 산 거지. 쉽게 얘기해서. 젊었을 때 그 사람한테 잘못한 거.... 그것이 지금 와서는 진짜, 마음에 박히지...”     


어린 남자아이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 달려간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슬쩍 보고는 말을 잇는다.      


“다 소용없어 이런 생각... 저 세상 사람 된 지 4년이야....”

“아...”

“친구들하고 나가서 뭐 맛있는 거 먹을 때. 어디 관광지 같은 데 갈 때. 그럴 때는 진짜 생각나요. 이 음식을 우리 아내랑 먹었으면 아내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이렇게 좋은 풍광을 봤다면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이런데 한 번 데려왔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좋아했을 텐데. 뭐 그런 생각하지... 근데. 제일 가슴 아픈 건... 아내가 죽기 며칠 전에...”      


할아버지가 앞에 놓인 빈 머그잔을 만지작거린다.        


“병원에 집사람을 보러 갔더니 집사람이 나한테, ‘집에 가서 하루 저녁 자고 오면 안 될까요?’ 그래. 그래서 내가, 아니 집에 가서 뭐 한다고 집에 가자고 하냐고 그랬지. 그랬더니. ‘집에 가서 하룻밤만 자고 오면 안 될까. 나 오늘 이상하게 집에 가서 당신하고 자고 싶어.’ 그러더라고. 근데 그 당시에만 해도,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하는 형편이었거든. 그래서 내가, 그런 처지에 집에 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했지. 그래서 집에는 못 데려가고, 내 차에 태워가지고 근처에 좋은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줬어. 근데 그런데도 자꾸만 집에를 갔으면 하더라고. 나는 계속 그랬지. 생각해봐라, 당신 사정이 이런데 집에를 어떻게 가냐.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면 자기를 한 번 안아 달래. 평생 안 하던 말인데 하더라고. 같이 살면서 그런 얘기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 그래서 내가 안아줬어. 뽀뽀까지 해줬어. 이제 괜찮아? 그랬더니 마누라가. ‘그래도 집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더라고... 그러고 나서 병원에서 사흘 만에 연락이 왔어. 급하니까 빨리 오라고. 그래서 차로 운전해서 가는 사이에 또 전화가 왔어. 방금 운명했다고...”

“...”

“그때를 생각하면 진짜.. 우리 마누라가 참 안쓰럽고 안 됐지...”


할아버지가 숨을 깊게 들이쉰다.      

 

“나는 지금도 집에 들어갈 때.... 저녁에 들어가면 집에 불이 안 켜져 있잖아. 우리 집 불을 켜면서 아내한테 말을 해.”    


순식간에 뺨 아래까지 흘러내려버린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겨우 물었다.


“뭐라고 하시는데요..?”


“... 여보, 나 왔어.”                     





Scenes from Life는 사람들의 실제 삶의 장면들을 담은 영상•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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