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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Dec 12. 2016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  


학교 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물으셨다. “지하철역에 도착했어요. 이 근처에서 내리고 싶은 학생 손 드세요.”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나? 손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실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손을 들면 안되는 것이었다. 헌데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친구가 그러라고 해서. 집에 같이 걸어가자며.  


친구와 함께 버스에서 내려 친구집인 근처 아파트로 걸어갔다. 우리집에서 고작 한 정거장 거리의 동네였지만 난 집에 가는 길을 몰랐다. 난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친구의 엄마는 집에 없었다. 나는 우리 엄마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일이주에 한 번 가게에 들르는 보석 도매상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엄마 아빠가 지금 가게에 없으니 내가 전화했었노라고 전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가야했다. 친구가 학교로 가는 길을 손으로 그려줬다. 딱 초등학교 2학년 솜씨의 손지도였다. 어쨌든 학교에서는 집까지 찾아갈 수 있으니 학교만 찾으면 될 것이었다. 친구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반달 모양의 거울을 그리더니 아파트 앞으로 난 큰 도로를 그렸다. 도로 위로 찍 그어지던 선이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갔다. 명희상회.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돼. 친구의 설명은 계속됐지만, 난 알아듣지 못했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친구가 물었다. “이해했어?” 나는 그렇다고 했다.  


친구가 아파트 입구의 반달모양 거울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나오는 거울이라 길을 찾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친구가 잘가라고 인사를 하더니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분했다. 친구는 그냥 집까지 같이 걸어갈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다. 내가 집까지 가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다. 집까지는 적어도 30분이 걸릴 것이다. 길을 제대로 찾는다는 가정하에.  


친구가 준 손지도를 들여다봤다. 지도 위에 그려진 반달 모양 거울을 들여다 본 후, 실제 거울을 확인했다. 친구의 화살표를 따라 거울 앞에서 도로로 나갔다. 큰 도로였다. 오른쪽 방향으로 가라길래 그렇게 했다. 하지만 친구가 그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라고 하던 가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냥 걸었다. 5분 정도 걸은 후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걸었다.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친구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잃어버렸다. 동전이 없어 엄마에게 전화도 못한다. 그냥 걸었다. 괜히 우회전을 해보기도, 좌회전을 해보기도 하면서. 울지는 않았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계속 걸으면 집이 나올 것 같았다. 두 시간을 더 걸었다. 지쳤다. 이제는 조금 걱정이 됐다. 다시 집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엔 난 수줍음이 너무 많은 아이였다. 나는 지독히도 낯을 가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홀로 정처없이 걷고 있는 9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친구가 미웠다. 엄마가 가게에 돌아올때까지 만이라도 머물 수 있게, 조금 더 기다려줄것이지. 계속 걸었다. 더 이상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몰랐다. 순간, 뭔가 보였다. 익숙한 것. 길 건너편, 좁은 골목 사이, 언뜻 보이는 학교.  


“아!”  


나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나를 돌아볼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다. 너무 기뻤다. 마음이 놓였다. 지금쯤이면 한참 걱정을 하고 있을 엄마를 위해서도 마음이 놓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신호등 불이 녹색으로 바뀌자마자 발걸음을 빨리했다. 학교는 정말 거기에 있었다. 이제 20분만 더 걸으면 집이다.  


“수지야!”  


나를 본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대체 어디에 있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울었던것 같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 가족이 나를 찾느라 온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고, 엄마가 말했다. 아빠와 오빠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으러 나갔다고 했다. 질투가 났다. 나도 아빠랑 자전거 타고 싶은데. 오빠만 재밌고.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울먹임으로 자꾸 삐져나오는 입술로 겨우 말했다. “딸기쨈 바른 식빵. 꼭 세모나게 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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