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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Dec 17. 2023

크리스마스 케이크

아무렇게나 쓰는 소설 

“케이크 맛이 좀 이상하지 않아?”


윤지의 말에 조성이 케이크를 유심히 살폈다. 하얀 크림 위에 빨간 딸기가 콕콕 박힌, 꽤나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작고 예쁜 케이크였다. 조성이 일 하는 사무실이 위치한 명동의 유명한 빵집에서 일주일이나 전에 예약해서 산 거였다. 이 주먹 두 개 만한 게 5만 5천 원이었다. 조성이 포크를 들어 케이크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입에 넣었다.


"글쎄.... 모르겠는데. 원래 이런 맛 아니야?”
“이거 딸기 케이크지? 다른 거 섞여 있어?”
“몰라.... 그냥 딸기 케이크일걸. 맛이 어떤데?”
"콕 집어서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뭔가가 이상해." 

"상한 거 같아?"


"상한 건가? 잘 모르겠어. 자기는 못 느끼겠어? 약간 플라스틱 맛 같기도 하고."
"플라스틱? 케이크에서 왜 플라스틱 맛이 나? 그럴 리가 있나.”


조성은 케이크를 다시 한 입 먹었다. 윤지가 그렇게 말하니 플라스틱 맛이 조금 나는 것도 같았다. 함께 산 지 10년이 된 윤지와 조성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뭘 한다고 해봤자 집에서 옛날 영화를 보거나, 밖에 나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정도였다. 10년째 크리스마스이니 케이크라도 하나 사서 기념하자고 한 건 조성이었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니. 곤란했다.


“상한 거면 버릴까?”
“미쳤냐? 이게 얼마짜린데.”
“맛이 이상하다며.”
“예상했던 맛이 아니라는 거지.... 상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조금.... 플라스틱 맛이 날 뿐이야.”


윤지가 테이블 한쪽에 놓인 화이트 와인을 집어 뚜껑을 열었다. 마트에서 세 병에 1만 2천 원 할인 행사를 할 때 산 와인 중 마지막으로 남은 병이었다. 병에는 두 잔 정도 분량의 와인이 남아있었다. 행사가 어제까지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사 올걸, 하고 윤지는 후회했다. 윤지는 병에 남은 와인을 커다란 맥주잔에 모두 따랐다.


“와인이랑 마시니까 조금 낫다.”
윤지가 말했다. 윤지와 조성은 말없이 케이크를 먹었다.


“맛 이상하면 억지로 먹지 마.” 

윤지의 표정을 살피던 조성이 말했다.


“어...”
“환불받을까?”
“환불을 어떻게 받아? 이미 먹었는데.”
“맛이 이상하다고 하면 되지. 상했다거나.”
“확실히 이상한 것도 아니잖아. 상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상한 거라고 우긴다고 해도 그쪽에서 우리가 보관을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어쩔 건데.”


윤지와 조성은 다시 말없이 케이크를 바라봤다.


"가만있어봐." 


조성이 일어나더니 찬장을 열어 초콜릿을 꺼냈다. 포장지를 까자 하얗게 변한 초콜릿의 표면이 제 속살을 드러냈다. 1년 전이었나. 편의점에서 하나 사 면 하나를 더 주는 행사를 하길래 산 거였다. 부러뜨려보니 속은 아직 짙은 갈색이었다. 조성이 케이크를 한 입 떠서 그 위에 초콜릿을 올렸다.


“어떤데?”


윤지가 물었다. 씹을 것이 많은 조성은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조성의 얼굴에 심각함, 애매함, 역겨움, 의문 등을 드러내는 듯한 표정이 차근차근 지나갔다.


“음....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다. 초콜릿 맛이 너무 강해. 그래도.... 초콜릿 맛 때문에 인공적인 맛이 조금 덜 나기는 해....”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 먹든가 하자.”


윤지의 말에 조성이 남은 케이크를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는 먹다가 남은 온갖 음식과 음식 재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감 세일 때 산 커다란 대파는 소금에 잔뜩 넣고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 있었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과는 여기저기 멍이 든 채 쭈글쭈글 해져 있었다. 요즘 같아서는 모든 게 이런 식이라고, 조성은 생각했다. 먹을 것도 아닌데 버리지 않았고, 쓸 것도 아닌데 처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성은 대파와 사과 등등을 옆으로 치우고 만든 자리에 케이크 상자를 밀어 넣었다. 케이크 크기에 비해 상자는 무척 컸다. 상자를 여기저기 찌그러뜨리고 나서야 냉장고 문이 겨우 닫혔다.


먼저 방으로 들어간 윤지는 TV를 튼 채 침대에 모로 누워있었다. 조성이 들어와 윤지 뒤에 누웠다. 조금만 더 뒤로 가면 안 돼? 윤지가 조성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조성이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 윤지와 조금 멀어졌다. 네 발 좀 저쪽으로 해줄래? 내 종아리에 닿아. 조성이 윤지에게 말했다. 윤지가 말없이 두 다리를 조성의 반대 방향으로 뻗었다. 요즘 같아서는 모든 게 이런 식이라고, 윤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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