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물 중 가장 자존감이 높은 건 주키니 호박일 것이다. 한참 모종을 심기 시작한 지난 4월. 농약사 삼촌에게 이것저것 심을 만한 것을 달라고 했더니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등을 주곤 마지막에 서비스로 작은 모종 하나를 떼어줬다. 바쁘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 하고만 가져와 그 정체모를 생명을 텃밭의 앞자리에 떡하니 심어두었다.
첫 파종을 한 며칠 뒤 텃밭에 가보았더니 개구리 발 같은 녀석이 태어나 있었다. 그때까지 녀석은 귀여울 뿐이었으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공룡발처럼 크게 존재감을 내뿜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노란 꽃이 피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녀석이 호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애호박인 줄 알았는데 땅주가 알려주길 중국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주키니 호박이라는 것이다.
주키니는 비록 혼자였지만 앞에 심어놓은 가지 무리와 뒤에 뿌려놓은 열무 대가족에게 밀리지 않고 잎을 사방으로 뻗으며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멋졌는지 박수를 치며 '주키니 왕 멋지다!'를 외쳐댔다.
내겐 혼자 아팠던 몇몇의 기억들이 있다. 학창 시절에 두 번의 왕따를 경험했고 사회에 나와 한 번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그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어울릴 사람이 없고 누군가 매일 나를 욕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왕따들은 다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가 있다.'라는 목소리를 스스로 견뎌내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땐 한 번도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첫째 날은 힘(권력)이 센 한 명에게 밉보였고 둘째 날은 그 옆에 앉은 친구가 나를 싫어하다 며칠 뒤엔 반 학생들 모두가 '걔가 그러는데 네가 틀렸대.'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는지 모른 채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말 그대로 그냥 한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혼자인 사람은 판단력을 잃고 일명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스스로가 틀렸다고 판단해 버리기 쉬운 것이다. 왕따나 직장 내 괴롭힘은 무리를 상대로 한 사람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인데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유가 정당하기보다는 비겁한 데에 있다.
학교 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종종 본다. 그럼 아직도 이 세상에 정의보다 비겁을 선택하며 무리에 속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다.
텃밭에 나 홀로 자라나고 있는 주키니 호박은 그 어떤 가스라이팅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성장하는 멋진 왕따이다. 자신을 싫어하는 힘센 녀석과 쿨하게 대화를 시도해본 뒤 그래도 녀석이 자기 힘자랑에만 빠져있다면 '야. 이 비겁한 것들아. 너희가 다 틀리고 내가 맞다!'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팔뚝만 하게 크게 자란 주키니를 여러 개 수확해 왔다. 뚝뚝 잘라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세상만사 달콤한 '옳은' 맛이다.
지금 혹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꼭 주키니 호박을 먹어보라 권하고 싶다.
당신 안의 주키니가 자라나
당당하고 옳은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도록.
글. 강작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