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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12. 2022

감자와 고구마 중 더 가치 있는 것은?

퀴즈. 감자와 고구마 중 더 가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나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아이, 언니는 외향적이고 털털한 아이라고 했다. 그 말에 중량이 있다면 내 성격은 가벼워 부모님의 마음 밖으로 쉽게 튕겨나갔다.   


'가족들이 나를 내성적이고 예민하다고 한다.'

'나는 내성적이고 예민하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뜬눈으로 밤을 보낸 어린아이는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자존감이란 뿌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성장하는 동안 나는 내내 스스로의 성격을 부정해왔다. 일부러 유쾌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신나게 케이크를 얼굴에 묻히고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결국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500개 이상의 문항에 답을 해야 하는 어려운 심리검사를 마쳤다. 상담사는 결과지를 보여주며 '기질'과 '성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사람에게 기질과 성격,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고 한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향이며 쉽게 변하지 않는 반면 성격은 태어난 후 성장하며 환경에 의해 갖춰지는 것이며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지에서 나의 기질은 너무도 또렷하게 내성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한 쪽으로 향해있었다. 힘이 쭉 빠졌다. 역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열성 기질 유전자'를 타고났구나-하고 생각했다. 


- 저는 제가 내성적이고 예민한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활발한 사람들과 있으면 위축됐고 늘 스스로가 그들보다 부족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죠.


30년 넘은 한이 눈물로 쏟아졌는데 마스크 때문에 망측한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사는 돌부처 같은 표정으로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가 뭐라 했는지 언급하기 전에, 울퉁불퉁하게 겨우 골라놓은 텃밭으로 가보자.



3월 중순. 텃밭에 처음으로 심는 건 감자다. 감자는 봄에 심어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캔다. 땅주에게 주문한 씨감자를 받았다. 울룩불룩한 모양에 씨까지 나와서 작은 괴물 같았다. 나는 녀석을 사정없이 두세 조각으로 잘라(씨가 난 부분을 위로 향하게) 땅에 푹푹 심었다. 


첫 작물이라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감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편이라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멋지게 성장하더니 녀석은 분홍과 노랑이 조합된 예쁘고 고운 감자꽃까지 피워냈다. 



나는 가족들에게 늘 고구마가 아닌 감자였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울퉁불퉁 감자. 활발하고 유쾌한 매끈매끈 고구마가 되고 싶어 애써 온 감자. 


상담사는 눈물을 흘리는 내게 말했다. 


- 지혜 씨, 우라늄과 다이아몬드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 있을까요? 

- 글쎄요. 다이아몬드 아닐까요?

- 과연 다이아몬드일까요? 다이아몬드는 물론 우라늄보다 비싸지만 그렇다고 더 가치 있다고 말한 순 없어요. 우라늄은 잘못 쓰이면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잘 쓰이면 생활 곳곳에 꼭 필요한 유용한 재료가 되거든요. 지혜 씨 기질이 어떻든 절대 부족하거나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 자체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상담사의 말에 나는 망측한 얼굴을 넘어 역대 죄인이 된 것 같은 표정으로(맙소사!) 울기 시작했다. 나 자체로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부분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큰 위안. 타인이 뭐라고 하든 감자와 우라늄은 세상에 귀한 존재인 것였던 것이다.



내년에도 꼭 감자를 심어야지 싶다.

그땐 씨감자에게 말해줘야지.

'괴물이 아니라

너, 보물이었구나.'하고.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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