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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05. 2022

텃밭에 나를 심었다

회의가 끝난 오전 10시. 출근 후 화장실을 벌써 다섯 번이나 들락거렸다.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일어난 거냐고? 그렇지 않다. 그냥! 정말 그냥 화장실 작은 창문 사이로 나를 밀어 넣어 탈출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에디터 10년 차. 소위 짬밥이 생긴 나는 이제 8센티 굽의 구두도 당당히 신고 다니는 정도가 되었다. 헌데 이상하지 연차가 늘어날수록 눈은 퀭해지고 굽은 낮아지고 치마는 펑펑해지는 것이다. 양손을 쫙 펴서 엉덩이에 촥- 올려보았다. 흐느적거리는 면치마 사이로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만져졌다. 10년 전 그곳엔 분명 탱탱한 히프가 존재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도대체 여기서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고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글이 좋아 에디터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운이 좋아 그에 맞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원하는 글은 아니었지만 글이란 글은 오지게 썼다.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롭고 때론 괴롭고.. 때론 괴로운 회사 생활. 그렇다. 나는 지쳐있었다. 성장이 더딘 회사와 그와 같이 늙고 있는 나에게.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머리에 물음표가 뜰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 마치 제2의 사춘기라도 온 것처럼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가 자꾸 당길 때. 그럼 때가 된 것이다. 변화를 선택할 때가.

디자인팀 권 대리는 남몰래 공모전에 지원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인가- 점심시간에 수상에 대한 자랑을 은근히 흘리더니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대리님. 대리님은 혹시.. 본인이 정체됐다고 생각 안 해요? 저는 이 분야 오래 일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후 또 다음날인가 그녀는 사직서를 냈고 (아마도 큰 디자이너의 세상으로) 휘리릭 사라졌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 마음도 변화를 향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것은 남의 글을 써주는 시간을 줄이고 내 글을 쓰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었다. 남의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직접 만들어 살아가고 싶었다. '당신이 뭐라고 프리랜서로 전향을? 당신이 뭐라고 사업을?'이라고 세상이 깔볼 수 있겠지만, 좌우지간 나는 나로 우뚝 서고 싶었다. 지금이어야 했다. 내 엉덩이가 더 이상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사를 일주일 앞두고 나는 실제로 가방도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로써 자연 퇴사가 됐는데 불행히도 어머니가 타지에서 큰 사고를 당해서였다. 어머니는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고 나는 반 정신을 잃은 채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날아갔다.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는 퉁퉁 부운 어머니를 보는 것도, 하반신 마비라는 의사의 통보를 듣는 것도- 나는 준비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일 년 후, 나는 텃밭을 시작했다.

불안과 슬픔에 흔들리는 나를

어딘가에 심어야 했다.   


음악. 최유리 바람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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