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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25. 2022

떡잎부터 다르지 않아도 될성부른 나무 되던데요

어릴 때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어린아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는 데 그때 아버지가 한 말씀이 기억이 난다.


-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달라.


어려서 무슨 뜻인지 몰라 언니에게 물어보니 언니도 모른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속담을 국어책에서 발견하고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을 무렵, 또 아버지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수학천재에 대한 뉴스가 나왔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니까.


나는 왜인지 기분이 나빠졌다. 분명 아버지가 내게 '넌 떡잎부터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이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텔레비전 속 사람들과 내 사이에 선을 긋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추측이 가능했냐 하면 아버지는 내가 '일명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는 애들이 주로 도전하는 것들'을 해보려고 하면 '어휴 그거 힘들어. 어떻게 해. 그냥 하지 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힘든 일이라 딸이 걱정되시는 건 이해하지만 덧붙여 '그런 건 확실히 재능이 있는 애들이 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니 힘이 쭉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될성부른 나무가 되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말아야 할 약한 떡잎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어린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에 이 과거가 떠올랐다. 친구네 부부는 자신의 아기가 큰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자신들이 지원을 못해줘서 방해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너무 심각한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감동스러웠다.

나는 지원이라는 것이 환경이나 금전적인 부분도 크지만 무엇보다 심리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재능이 없어 보이는 터무니없는 꿈을 꾼다고 해도 과하게 지속되어 힘듦을 겪지만 않는다면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가고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 '될 수 있지. 할 수 있지. 해보고 싶다면 도전해봐!'하고 떡잎에 가능성의 바람을 불어주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친구에게 열변을 토했다.


실제로 나는 떡잎부터 다르지 않아도(아니 훨씬 약했지만) 될성부른 나무가 된 경우를 두 눈을 보았다. 바로 우리 텃밭에서 일어난 일이다.


녀석은 바야흐로 작년 가을. 당시 예비남편이 어머님께서 주신 흙 토마토가 물러지고 있자 내가 준 화분에 심어 두었다. 며칠 뒤 싹을 틔우더니 크게 자라나기 시작해서 T계열의 남편 또한 애정으로 키우고 있었더란다. 그런데 날이 좀 추워져 문을 닫아놨더니 흰 벌레가 생기더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모두 죽이고 말았다. 흙은 아까워 버리지 않고 밀봉해 두었는데 결혼 후 내가 그 흙을 물려받게 되었다.


구석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기 흙 토마토


나는 그 흙을 스티로폼에 담아 싱싱한 바질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한쪽에 도깨비풀 같은 새싹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잡초 같았지만 귀여워 바질 틈에 자라게 물을 주었더니 녀석은 점점 자라나 내 손바닥 크기 만해 졌다. 바질을 모두 페스토로 만든 뒤 스티로폼 화분을 없애려고 하는데 녀석을 죽이려니 마음에 걸렸다. 정체가 뭘까 고민하다 손가락으로 비벼 냄새를 맡아보았다. 놀랍게도 옅은 토마토 향이 났다. 작년 남편이 밀봉해놓은 흙 안에서 생명이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가 된 흙 토마토


녀석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텃밭에 가져가 심기로 했다. 하루 이틀 뒤에도 변화가 없이 작아서 죽을 건가 싶었는데 일주일 뒤, 이주일 뒤 녀석은 아주 크고 굵직한 나무로 자랐고 어느새 실한 흙 토마토도 여러 개나 맺었다. 그 귀한 토마토를 씻어 베어 물으니 달콤하고 새콤한 토마토즙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텃밭의 귀여움 한줌


내가 녀석을 관찰하며 느낀 건, 하나다. 떡잎이 될성부른 나무로 클 수 있는 건- 태생부터 달라서라기보다는 떡잎의 가능성을 응원하는 곁의 마음과 텃밭과 같은 좋은 환경 덕분이라는 것!



그래도 이 달콤한 토마토를 먹으니 아버지와 가족들 생각이 난다.

사랑할 수 있는 나무로 키워주신 덕분인가 보다.




글. 강작(@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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