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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17. 2022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는 잡초의 삶

오월 중순 경. 오랜만에 찾은 텃밭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어디에 작물을 심어놓았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사이 잡초가 무성해졌기 때문이었다. 혼자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단연 불가능한 일. 불가능할 땐 생각을 고쳐먹으면 된다. '그래! 잡초도 공생하는 아름다운 텃밭을 만들자!'


그 후 나는 한껏 여유로운 마음으로 텃밭을 거닐며 잡초를 구경하였다. 쓸모없는 잡초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니 잡초의 모양이 다양한 게 보였다. 길쭉하게 늘어진 잡초, 감자잎같이 생긴 잡초, 바다의 해초 같은 잡초. 반듯이 심어놓은 작물들 사이에서 각자의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사랑이나 인정은 바라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인정받고 사랑받길 원했다. 어릴 땐 부모님께 커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회사에선 상사에게. 원했다는 말보다는 애썼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 가족들이 지혜 씨를 예민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지혜 씨는 예민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타인은 지혜 씨의 행동을 보고 지혜 씨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스스로 잘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정말 예민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어린아이가 새벽녘에 멍하니 앉아 공허하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바쁜 부모의 관심 부재 때문일 수 있어요. 그런 와중에 지혜 씨가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최선의 방법을 했던 것뿐이에요. 즉 가족들이 지혜 씨가 예민하다고 느낀 그 행동들(악착같이 공부한 것)을 말이죠. 지혜 씨는 실제로 예민한 게 아니라 인정과 사랑을 받길 원해서 그저 애써왔을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절대로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왜 그런가 하니 공부를 지독하게 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공부는 힘들지만 나는 그 이상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많은 학생들이 함께 있는 수학 시간에 이해가 안 된다고 혼자 질질 짜서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었고, 학생들은 '지혜 또 운다'하고 놀리는 게 흔한 일이었다. 수업시간에 단 한 번도 졸은 적이 없었고 시험기간에 오일 내내 밤을 새우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부모님이 언니나 내게 공부하라고 한 번도 재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미치광이처럼 공부했던 걸까?


2학년 5반 8살,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밥상 위 우리의 수학선생님이었다. 그 시절엔 초등학생이 학원에 가는 일이 드물었고 부모가 자식을 가리키는 일이 흔했다. 그날은 수학경시대회였다.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환한 얼굴로 문을 열어주더니 나를 불끈 들어 올렸다.


- 우리 지혜! 세상에!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리 지혜가 수학경시대회 100점을 맞았대!


엄마의 품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 소리에 맞춰 나의 기분은 하늘까지 솟아올랐다. 태어나서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그날은 엄마가 내 숟가락 위에 장조림도 올려주었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손을 잡고 모닝글로리에 가서 갖고 싶었던 인형도 사주셨다. 한 손엔 머리에 작은 리본이 달린 하얀 강아지 인형을 안고 다른 손으론 따뜻한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골목길은 어두웠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상담사의 물음에 답하며 회상해보니 밖에서 일하셨던 아빠만큼 집에 계셨던 엄마도 바빴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집에서 아빠일에 대한 주문 접수를 받으셨는데 전화가 자주 와서 절대 집을 비워선 안됐고(그땐 휴대폰이란 게 많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십 번은 주문이 들어와 항상 정신없으셨다. 그러니 집에 같이 있어도 엄마는 우리와 함께할 여유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나는 새벽녘에 멍하니 깨어 있는 날이 많았다. 7살, 8살 어린아이가 느낀 마음은 분명, 우울감이었다.

수학경시대회 100점을 맞았던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기 위해서는, 엄마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사람이라면 모두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의 인정과 사랑을 받길 원할 것이다. 원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려질까 봐 두렵기도 하겠지만, 우리 삶엔 인정과 사랑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자유.

자기 생의 자유로움.


음악. 다린 Stood


애쓰며 웃자란 상추 옆에
잡초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는 그 옆에 한참 앉아 있었다.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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