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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Sep 23. 2022

눈치 보지 말고 마음속 줄기대로 굳건히

어느 날 땅주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아스파라거스 모종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사라는 내용이었다. 초봄에 땅주에게 산 씨감자가 좋은 수확을 내었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며칠 뒤 땅주를 따라 간 뒤뜰에는 기린같이 목이 길고 야들야들한 아스파라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화초같이 예쁜 모양에 반하여 계획과는 달리 그만 다섯 개나 차에 싣고 말았다.


일주일 뒤 모종을 가지고 신나게 텃밭으로 향했다. 이웃들이 모두 땅주에게 같은 문자를 받았을 테니 저번 씨감자 때처럼 많이들 사서 이미 심어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아스파라거스를 심어놓은 텃밭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의아함은.. 이웃 아저씨의 말씀으로 금방 풀리게 되었다.


-아스파라거스 샀어요? 몇 년은~ 키우는 건데..(이 부분을 노래처럼 하였다) 아이고야! 한해 여기서 하다가 또 옮겨 심어야 되는데 우짜노!


황당했지만 아저씨의 표정이 살짝 놀리는 것 같아서 나는 '저희도 알고 있었거든요?!'라는 뻔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적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땅주에 대한 분노와 잘 알아보지 않고 산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화를 남편에게 풀기 위해 우리가 초보 농사꾼이라고 얕본 것이 아니냐며 씩씩거렸더니 남편은 그저 가자미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좌) 텃밭에 심은 아스파라거스 형제들 (우)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 심은 아스파라거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가 뭐라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우리 텃밭에서는 우리 마음대로 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이 텃밭은 나의 텃밭이고, 죽든 살든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비료를 주고 정성껏 키워도 줄기가 보이지 않아 '역시 사람들 말을 신경 썼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슬슬 올라올 쯤이었다.



레스토랑 흰 접시 위에 적당히 구워져 씹으면 달큼한 맛을 냈던 그 아스파라거스가! 땅 속에서 쏟아 올라와 있는 것이다! 나는 동네 이웃을 모두 불러놓고 우리 아스파라거스를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잘라먹으면 또 자라고, 또 자란다니! 기특하기도 하여라.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모종을 산 값보다 고기 지출로 더 큰돈을 썼지만, 싱싱하고 도톰한 아스파라거스를 보고 있자니 뿌듯하고 행복해서 이미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아스파라거스가 값졌던 것은 타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진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타인들의 말이나 시선에 쉽게 흔들렸다. 마치 아스파라거스의 얇고 긴 잔 가지들처럼 이곳저곳에서 바람이 불면 마음이 밤새 요동을 쳤다. 신경을 끄고 살기에는 그들의 엄포가 무섭고 두려웠다.


이를테면 결혼에 관한 것도 그랬다. 서른 중반에 다다르니 가족과 친구들, 직장동료들도 내 결혼의 시기를 염려했다. '더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려고 하면 너도 아이도 힘들단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장 거리에서 헌팅이라도 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를 원하는 건지, 아닌 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이 아니면'이라는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내 생각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회적인 통념은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직접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통념이기 때문이다. 아스파라거스처럼 오래 사는 작물들은 한 해용 텃밭에 심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통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나는 우선 내가 아스파라거스를 심고 싶으냐, 그것을 심으면 책임을 질 수 있느냐-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이것은 나의 텃밭이고, 나의 삶이니까. 누가 뭐래도 스스로의 삶을 일구고 그것에 만족하며 행복할 용기가 있다면- 나는 사회적인 통념보다 자신의 통념을 우선에 두고 살고 싶다.


때론 흔들릴 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

굵은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가진 사람,

언제나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글. 강작(@anyway.kkjj)



다, 잘 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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