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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19. 2022

걱정 가지치기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 그럼 만약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걱정을 하지 않게 될까? 혹 영화의 결말을 미리 본 것 같이 허무해지진 않을까? 그게 Sadending이든 Happyending이든.


어떻게 하면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허무해지지도 않을 수 있을까?



텃밭에 심어놓은 야들야들한 고추 모종이 어느새 굵직하게 자라났다. 자주 와보지 못했는데 자연이 다 알아서 돌봐주는구나 싶어 편안해진 마음으로 이리저리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나타난 순간이.



- 이 텃밭 사람들은 처음 보네~! 아이고.. 사진 찍어요? 이거 이거 사진 찍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해서 올리면 욕먹어요~!


까만 피부에 작은 눈. 심상치 않은 밀리터리 무늬의 바지와 모자. 손에 쥔 작은 가위까지. 처음 보았지만 땅주의 남편이 틀림없었다. 그는 '텃밭 엉망으로 해 놓은 녀석들 이제야 잡았다!' 하는 식으로 내 텃밭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그 후 속성 꾸짖음과 강의가 이어졌다. 먼저 고추 모종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래의 잎과 가지들을 뜯기 시작했다. 아기 고추들이 달려있던 터라 놀라서 어찌할 바 몰라하자 그가 말했다.


- 아까워요? 여기 두 가지로 갈라지는 큰 가지 있죠. 그게 방아다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 아래에 있는 곁순, 곁가지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해요. 그래야 위에 더 크고 싱싱하게 잘 자라죠. 아효.. 아까우면 이거 잎 가져다가 무침해 먹어~.



누가 말릴쏘냐. 전설의 가위손이 환생한 것처럼 그는 답답한 텃밭을 재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말리고 싶었으나 호응해주는 편이 유익할 것 같다고 머리를 굴렸다. 그는 그렇게 나의 얄팍한 속셈에 넘어가 어느새 가지치기를 완료해주었다.


말끔해진 텃밭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연애가 끝난 다음날 미용실에서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잘려나간 고춧잎과 머리카락은- 미래를 알 수 없어 움켜쥐고 있던 걱정의 다른 모습들이 아니었을까?



좋은 일이 펼쳐질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고추나무는, 자연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을 덜어내면 위로(앞으로)

더 크고 싱싱하게 잘 자라날 수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말이다.


깨달음을 주려고 고추나무가 땅주의 모습으로 변장해 나타난 건 아닐까?!(웃음)




. 강작(@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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