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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Aug 14. 2022

멋진 왕따 주키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물 중 가장 자존감이 높은 건 주키니 호박일 것이다. 한참 모종을 심기 시작한 지난 4월. 농약사 삼촌에게 이것저것 심을 만한 것을 달라고 했더니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등을 주곤 마지막에 서비스로 작은 모종 하나를 떼어줬다. 바쁘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 하고만 가져와 그 정체모를 생명을 텃밭의 앞자리에 떡하니 심어두었다.


첫 파종을 한 며칠 뒤 텃밭에 가보았더니 개구리 발 같은 녀석이 태어나 있었다. 그때까지 녀석은 귀여울 뿐이었으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공룡발처럼 크게 존재감을 내뿜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노란 꽃이 피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녀석이 호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애호박인 줄 알았는데 땅주가 알려주길 중국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주키니 호박이라는 것이다.


주키니는 비록 혼자였지만 앞에 심어놓은 가지 무리와 뒤에 뿌려놓은 열무 대가족에게 밀리지 않고 잎을 사방으로 뻗으며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멋졌는지 박수를 치며 '주키니 왕 멋지다!'를 외쳐댔다.



내겐 혼자 아팠던 몇몇의 기억들이 있다. 학창 시절에 두 번의 왕따를 경험했고 사회에 나와 한 번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그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어울릴 사람이 없고 누군가 매일 나를 욕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왕따들은 다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가 있다.'라는 목소리를 스스로 견뎌내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땐  번도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첫째 날은 (권력)   명에게 밉보였고 둘째 날은  옆에 앉은 친구가 나를 싫어하다 며칠 뒤엔  학생들 모두가 '걔가 그러는데 네가 틀렸대.'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가 틀리고 누가 맞는지 모른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그대로 그냥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혼자인 사람은 판단력을 잃고 일명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스스로가 틀렸다고 판단해 버리기 쉬운 것이다. 왕따나 직장  괴롭힘은 무리를 상대로  사람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인데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유가 정당하기보다는 비겁한 데에 있다.


학교 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종종 본다. 그럼 아직도 이 세상에 정의보다 비겁을 선택하며 무리에 속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다.



텃밭에 나 홀로 자라나고 있는 주키니 호박은 그 어떤 가스라이팅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성장하는 멋진 왕따이다. 자신을 싫어하는 힘센 녀석과 쿨하게 대화를 시도해본 뒤 그래도 녀석이 자기 힘자랑에만 빠져있다면 '야. 이 비겁한 것들아. 너희가 다 틀리고 내가 맞다!'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팔뚝만 하게 크게 자란 주키니를 여러 개 수확해 왔다. 뚝뚝 잘라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세상만사 달콤한 '옳은' 맛이다.  



지금 혹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꼭 주키니 호박을 먹어보라 권하고 싶다.

당신 안의 주키니가 자라나

당당하고 옳은 열매를 게 할 수 있도록.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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