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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피하지 않습니다

by 강작


더러워서 피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이 있다. 나이가 많으니 어린 친구들을 무시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그만큼 내 삶을 나답게 살 용기가 생겼다. 뭐랄까, 나도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인데 내 인생 참견 말아줄래요?라고 죽음 인질극을 버릴 용기랄까(웃음)?


나는 원래 무례함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난 마음을 나에게 돌려 자책하고 언젠가 그런 놈들은 천벌을 받는다고 저주하고 그러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하면서 회유하고 마지막은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며 덮어두었다. 맞다. 상대하지 않는 것. 흙탕물이 잔뜩 든 물 잔을 들고 정수하려고 모래알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거르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깨끗한 물이 되어 내 인생이라는 물 잔 안에 들어 부여지는 것이 정수의 빠르고 현명한 길이다.


하지만 나의 상한 기분을 위해 요즘은 나도 무례함에 화를 낸다. 나조차 흙탕물이 되도록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물 잔은 흔들어 경고하고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스스로도 놀랍고 위대해 보인다.


많이 배웠다는 의사도 무례하면 경고를 당해야 한다. 의사의 일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검사하고 병명을 설명해 주고 치료한다. 어찌 보면 친절은 월급에 포함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이 '친절했으면 좋겠다'이지, '친절해야만 한다. 친절하지 않아서 기분 나쁘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친절하지 않아도 되지만 의사 일을 충분히 못 하거나, 되려 먼저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비인후과에서 귀 치료를 받다가 귀 안에서 피가 났다. 치료받다가 피가 나는 일은 흔한 일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얼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과다 출혈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경우를 대비해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전에 일종의 쿠션을 깔아 둔다. '귀 치료를 받다가 출혈이 많이 날 수 있습니다.', '수술은 해보는데 사망 위험이 있습니다. 사인하세요.' 그럼 환자는 의학 지식이 없기에 '정말 최선을 다한 거 맞아요?'하고 물어보지 못하고, 그들의 과학적 최선을 수술방 밖에서 굳게 믿어야 한다. 못 믿겨우면 네가 수술해라,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의 의사는 쿠션을 깔지 않고 그냥 치료를 시작했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다른 의사에게 가서 과다 출혈의 원인이 치료 부주의였냐고 물어봐도 별 소용은 없다. 이상하게도 의사는 의사 편인 경우가 많다. 의사는 피범벅이 된 내 오른쪽 귀를 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다른 환자를 진료했다. 잠시 뒤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고 사과도 없이 피를 닦고 보완하는 치료를 했다. 그들은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는 곧 과학적 최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인 걸까. 그래서 나는? 돈을 내지 않기로 했다. 진료와 치료를 받고 돈을 내지 않겠다니,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는 얼굴로 의료진을 나를 쳐다봤다. 나도 평소 얌전한 내가 홍당무처럼 빨갛게 상기돼서 '이런 상황에서 돈 못 내겠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내가 어색하긴 마찬가지였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대기실의 환자들도 무슨 상황이지? 하며 구경했고, 나를 회유하려는 간호사들에게 다시 나는 귀를 부여잡고 돈을 못 내겠다고 말했다. 그때 하필 실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왜 복귀를 안 하냐고 했다. 과학적 최선 뒤로 진료 부주의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의료진의 무례함에 대항해야 하는데, 실장님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거기까지만 시위를 하기로 하고 돈을 냈다. 그들은 다행이라는 듯 숙연해졌다.


사실 당연히 의료비를 지불해야 했다. 의료 부주의에 따른 치료비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지불하는 게 맞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치료는 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병원 입장에선 진상이었을 개인 시위를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결코 후회되지 않는다. 소송으로 치료비를 요구할 정도의 큰 일은 아니었고, 그들에게 과학적 최선을 권리처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는 하고 싶었으니까(찔리긴 했을 거다). 작지만 확실한 반항. 앞으로 환자들이 을의 입장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의료진은 과학적 최선을 양심적으로 행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한다.


더러워서 피하지 않았던 경우는 그 밖에도 더 있어서, 다음에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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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8

작지만 확실한 반항일지


글 강작 insta. @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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