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10년을 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무례한 학부모들이 남긴 상처는 크게 없다.
아예 없었다고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잊혀진 것으로 봤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만큼의 생채기였나보다.
그러나 주위 동료 교사들의 경험담이나 각종 언론, 커뮤니티에 나온 학부모들의 도를 넘는 행위들을 보며 나는 운이 좋아 10년을 했구나 싶다.
내 경험상 무례한 학부모들보다 그렇지 않은 학부모들이 훨씬 더 많다. 다만 나쁜 학부모 한 명의 파워가 상상초월인지라 나머지 좋으신 학부모님들의 선함과 호의들이 묻히고 마는 것이다. 그런 학부모의 자녀를 학급 학생으로 맡게 되었을 때 그 교사의 1년은 살얼음판 위에 올라간 것이라 봐야 한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를 준비할 무렵 교사들끼리 모여 편성된 학급 명단을 뽑는다. 흰 봉투에 넣어둔 학급 명렬표를 떨리는 손으로 뽑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교사들은 흰 봉투 안의 기운을 하나하나 느껴가며 제발 올해는 잘 뽑게해 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빈다. 정신 건강의 미래가 그 흰 봉투 안에 모조리 담겨 있다. 팽팽한 긴장감은 2월의 추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교사의 1년은 찰나의 선택에 갈린다.
옆에서 지켜본 무례한 학부모들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다. 학교고 교사고 뭐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생각만을 아주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도 저렇게 말을 하고 행동할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모욕적인 말들과 행동들. 쓰레기 봉투에 꾹꾹 눌러 버린 듯 납작해져버린 예의.
아이의 지능 발달에 좋다는 유명 전집은 이것저것 사다가 번듯하게 거실 책장에 꽂아놓을 줄은 알아도 정작 본인은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책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몽땅 털어 넣고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거쳐야 비로소 어렵사리 서가에 놓인다. 그러므로 책에는 인격이 있다. 책을 즐겨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지적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뿐만 아니라 인격의 깊이도 남다르다.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모두 무례하진 않다.
하지만 내가 본 무례한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똑똑해지는 느낌보다는 내가 더 부족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꾸 겸손해진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훨씬 똑똑하고 잘나고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겸손해지는 내 자신이 좋아 자꾸 글을 읽게 된다. 좋은 책은 독자를 성찰하게 하니까. 스스로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은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윽박지르거나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데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매번 옳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여유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자아는 점점 기이한 형태로 비대해져가고 결국에는 타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뉴스에 나오는 빌런 부모는 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가?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빌런은 자신이 빌런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저런 빌런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판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꾸준히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 속을 유영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전집을 사주기 전에, 부모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하나의 글은 한 명의 타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