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만큼 훌쩍 자라주렴
겨울이 오고 으레 그렇듯
감기가 왔다.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나름 모과차도 생강차도 열심히 끓여 먹고 했는데
그래도 어김없이 올 것은 늘 때를 잊지 않는다.
이번 감기는 새벽에 갑자기 확 오한이 들면서
근육통에 한숨을 못 잤다.
꼭 출산 후 통증으로 잠 못 이뤘을 때처럼
그만큼 아팠던 것 같다.
이를 악물고 참았고 다음날을 진통제로 버티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감기 걸린 두 아들과 함께
큰 아이와 나는 좀 심한 편이고 둘째는 가볍단다.
큰 아이는 기관지 폐렴이라며 열이 많이 날 것이고 기침도 심할 수 있으니
중간에라도 심해지면 바로 병원을 찾으라 했다.
그리고 셋 다 감기 증상이 다르니 서로 옮지 않게 조심하라는 당황스러운 주문을 하셨다.
가벼운 녀석을 할머니한테 떨어뜨려놓고 큰 아이와 내가 한 편이 되었다.
전 날 근육통으로 잠을 설친 데다 저녁 먹고 약기운에 너무 졸려 9시도 안돼서 뻗어버렸다.
살면서 엄마가 필요하다가 느끼는 순간이
이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플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엄마.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다.
무엇보다 이 나이에도 아프다고 투정 부릴 수고 있고,
아프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도
밥때가 되면 알아서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엄마 말고 또 있을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가장 아쉽고 간절한 순간,
엄마를 찾는다.
깜짝 놀랄 때도 '엄마야~'하지 '아빠야~'하고 놀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울 때도 대부분 엄마~~ 하고 엉엉 우는 게 자연스럽지
아빠나 다른 사람을 찾는다면 그건 좀 이상하다.
사회가 강요한 모성이든
위대한 엄마의 본성이든
어쨌든 '엄마'라는 단어는
내가 나약하고 초라할 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차마 아득해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감사하고 울컥한 여러 감정들은,
그러나 몸이 고통스러웠던
잠시 잠깐에 지나지 않는다는 슬픈 이야기.
다음 날 저녁,
상태가 썩 좋아지진 않았으나,
온몸을 두들겨 맞는 듯했던
근육통이 사라진 것만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날 밤부터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큰 아이
먹는 대로 다 토해내길 바빠 받아온 약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해열제도 듣질 않아 그냥 하루 밤을 생으로 끙끙 앓았다.
끙끙 앓는 아이 옆에서 밤새 나도 함께 앓았다.
열이 어지간히 높으니 아이가 깊게 잠들지 못하고 몇 십분 단위로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저도 자꾸 잠이 깨니까 안 그래도 예민한데 덥다고 짜증 냈다가 춥다고 이불 덮으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아서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목마르다, 우유 먹는다, 쉬 마렵다, 간지럽다,
한 시간에 두세 번씩 그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는데
그렇게라도 이겨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고 안쓰러워 얼마나 짠한지
열 때문에 내쉬는 숨도 뜨거운 아이를 토닥여 주는 것 밖에,
열 때문에 경련 일어나듯 간헐적으로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벽 다섯 시쯤에야 한 고비를 넘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고열이긴 하지만 뭔가 한풀 꺾인 듯한 게 한밤 활활 타오르던 그 뜨거운 느낌과는 확실히 달랐다.
밤새 뒤척이며 거칠었던 아이의 숨소리도 많이 좋아졌다.
정말 지독하게 긴 밤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이겨냈구나.
이 녀석. 정말 많이 자랐구나.
아프니까 와락 엄마 생각부터 났지만,
아이가 아프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에게 엄마여야만 했던
엄마를 부르고 싶은 나와
엄마를 부르는 아이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던,
그야말로 고난주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