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머릿 속에서 벌어지는 일
아들이 저녁 설거지를 도왔다.
이런 거 잘해야 나중에 아내한테 사랑받는다고
이제 너도 여섯 살이니 네 앞가림은 해야 한다고
살살 꼬드기며 권했더니
주방 싱크대 입장을 허락한다는 게 아이에겐 특권으로 여겨졌나 보다.
엄청 신나 한다.
키를 맞추기 위해 박스를 놓고 내가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고
아이에게 건네주면 아이는 물로 헹구고, 내가 다시 한번 헹구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내고 그릇을 닦으려는데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 순서를 들뜬 눈으로 기다리던 녀석이 묻는다.
ㅡ엄마, 왜 수건에 그걸 묻혀?
ㅡ응,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그릇을 닦아야지 그릇이 깨끗해지는 거야.
시윤이도 목욕할 때 비누칠할 때수건에다가 묻혀서 닦지?
얘네 그릇들도 이렇게 목욕하는 거야. 설거지하는 수건을 수세미라고 불러.
ㅡ엄마, 그런데 수세미가 엉망진창이라는 뜻이야?
으응?! 수세미와 엉망진창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나는 물었다.
ㅡ아니 그건 아닌데, 시윤이는 왜 수세미를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자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하기를,
ㅡ응,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면 내 머리보고 수세미라고 해서.
아하?! 설거지하던 세제 거품을 손에 묻힌 채로 나는 고개를 젖히며 깔깔 웃어버렸다.
어쩌면,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렇게도 무수히 많을까.
그러고보니 수세미라는 식물도 생각이 났고,
수세미의 잎이 거칠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거 같고
그래서 수세미가 되었나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수세미와 제 머리모양이 어떻게 닮았나
머리를 굴리며 고민했을 아이를 생각하며 한참 즐거웠다.
설거지를 함께 끝내고 의기양양 뿌듯한 얼굴의 너를 보는 것이,
네가 묻는 세상에 답하느라 기억조차 희미해진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봄처럼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