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세상을 담는 방식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골라온 책 중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브루노무나리의 '동물원'
도서관에서 알게 된 책.
거친 듯 보이지만 사물의 특성을 잘 살린 터치감이 돋보였고,
깔끔한 색감으로 명확하게 사물을 전달한다는 느낌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작가다.
본업이 그림책 작가는 아니고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분의 책은 중고로는 잘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가격도 높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샵을 직접 방문했을 때 뜻하지 않게 보게 되어 모셔왔다.
보통 새 책 한 권 값과 비슷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특별한 점도 없어 보이고, 내 눈에는 오히려 약간 심심하고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뭔가 이건 꼭 소장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이들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
취향이 같지 않은 두 녀석을 만족시키는 몇 권 안 되는 책중 하나다.
오늘 이 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아이와의 산책 중에 나온 코뿔소 퀴즈 때문이다.
아이는 스무고개 퀴즈를 하던 중
ㅡ이건 뿔이 있어, 그리고 이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
라고 질문을 했었다.
그땐 아이의 발상이 재미있고 신선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이 장에서 나는 잠깐 숨이 멎었다.
세상에, 수십 번을 함께 읽었던 책이었는데
나는 정말로 이 부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아이는 그림책의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보다 그림책을 더 좋아한다고 했던 고백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스펀지처럼 모든 걸 다 빨아들이듯 흡수하는 아이들
오늘도 녀석들에게 한 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