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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디렉터 김유경 Oct 11. 2019

뭉텅뭉텅 썰어낸 생고기 뭉티기부터 떡볶이의 도시 대구

안젤라의 오감을 깨우는 여행 Episode.32

‘사방에 좋은 산과 향기로운 능금나무가 어우러진 대구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1937년 7월 12일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복지 사업가인 헬렌켈러가 대구에 방문하여 강연을 하기 전에 한 이야기다. 또, 1954년에는 세기의 스타 마를린먼로가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주한 미군을 위문하기 위해 대구 동촌비행장을 찾아 팔공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대구는 국가의 위기 때마다 자발적으로 구국 정신을 실천하며 국채 보상운동, 2.28 학생 운동을 주도하며 근대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담쟁이 덩굴이 수북한 근대시대의 붉은건물부터 시간의 역사를 간직한 돌길들을 걷다보면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곳, 이 곳을 찾아 발견한 대구의 10가지 맛과 매력을 소개한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서른두번째 목적지는 대구다.  

 

근대路의 여행, 대구 골목 뚜벅이 여행 

대구는 한국 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아, 전시 전후의 생활상이 잘 유지가 되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한국 관광의 별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으로 선정된 대구 중구 근대路의 여행은 총 5가지 코스로 구성이 되어있다. 경상감영 달성길, 동산선교사 주택과 계산성당을 거쳐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을 거니는 근대 문화골목, 패션 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 100년 향수길이 있는데 정기투어, 수시투어 (15명 이상일 경우 해설사 무료지원)는 물론 ‘골목투어’ 앱을 이용하면 해설사 없이도 목적지마다 담겨있는 스토리를 이해하며 여행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해본 코스는 2코스인 근대 문화골목으로 동산 청라언덕을 올라 3.1 만세운동길, 계산 성당, 이상화.서상돈의 고택 등을 방문해 근대 문화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약 1.64km 로 2시간정도 소요되는 코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투어를 할 수 있다. 



떡볶이 성지 순례의 필수 코스, 대구

떡볶이는 참 특이한 음식이다. 커다란 철판 위에 넘실대고 있는 붉은 양념 사이로 기다랗고 하얀 떡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좁게 누워있다. 떡볶이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자 떡볶이 성지순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떡볶이를 사랑하는 떡볶이 덕후도 많다. 최근에는 차돌박이를 넣은 떡볶이나 떡볶이 부페가 있을 정도로 떡볶이의 모습이 변했지만, 추억의 떡볶이 원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은 대구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떡볶이 전문점의 신전 떡볶이의 본점은 대구에 있고, 전국 3대 떡볶이 할머니 중 한명인 윤옥연 할머니 또한 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대구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분식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전통 시장이나 골목마다 개성있는 떡볶이들을 만날 수 있다. 떡볶이의 격전지로 불리는 대구에는 3대 시장 떡볶이로 동성로의 중앙떡볶이, 신천시장 윤옥연 할매 떡볶이, 내당시장의 달고떡볶이가 있는데, 현지인의 추천으로 신천 궁전 떡볶이집을 찾았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들어가보니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매콤한 카레향이 코를 찔렀다. 그 와중에 ‘천천천’ 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떡볶이 1인분 가격이 천원, 튀김 오뎅이 천오백원원, 튀김만두가 천오백원이여서 떡볶이 + 튀김오뎅 + 튀김만두를 달라는 뜻이었다. (튀김오뎅과 튀김만두는 기존에 천원이였지만 500원이 오름). 그렇게 다 먹어도 가격은 4,000원. 만두 1인분에 10개의 튀김만두가 나오고, 오뎅 1인분에 7개의 튀김오뎅이 나오기 때문에 다 먹으려면 최소 2명이서 와야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00원이라는 가격이 웬말인가? 맛을 직접 보니 은은한 카레향이 느껴지는 매운 맛의 떡볶이였고, 튀김 오뎅과 튀김 만두를 찍어먹으니 바삭하고, 녹진한 매운맛이 혀를 자극시켰다.   


 

고기없이 가볍게 먹는 채식만두, 대구 명물 납작만두

납작만두는 이름 그대로 얇은 만두피를 납작하게 포개어서 먹는 만두다. 대구에 오기 전에 상상한 납작만두는 돼지고기, 부추, 야채 소가 안에 들어있되 납작하게 눌러서 구워먹는 만두라고 생각했는데, 만두소라고는 부추와 당면정도만 가볍게 들어있고, 프랑스의 크레페나 태국의 로띠처럼 평평한 만두였다. 밀가루와 카사바 분말을 넣어 쫀득하게 만든 만두피를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지진 뒤에 직접 만든 간장, 양파, 부추, 고추가루 양념장을 무심하게 뿌려준다. 먹을게 있나 싶었지만 양파와 특제 간장 양념과 함께 납작만두를 함께 씹으니 입 안에서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만두의 질감과 양파의 아삭함이 복합적인 맛을 자아내었고, 고추가루를 넣은 부추 양념장이 느끼하지 않도록 감칠맛을 잡아주었다. 만두피도 얇고, 실제로 고기가 1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만두였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산 밀가루가 국내에 대량으로 유입되고, 1960년부터 전국에 분식 붐이 들기 시작하면서 개발된 대구만의 음식이다.  

그리고 대구 여행을 하다보면 찐교스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된다. 찐교스가 대체 무슨말인고 하니 찐은 찐만두할 때의 찐이고, 교스는 만두를 뜻하는 교자라는 단어 중에 자 (子)를 중국어로 즈 또는 스라고 발음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자를 교스라고 발음하기 시작하면서 찐교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맛을 보니 엄청나게 특이한 맛은 아니지만 대구 사람들의 분식과 중화요리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뭉텅뭉텅 썰어낸 생고기, 대구 뭉티기

‘저녁에 뭉티기랑 소주 한잔 하러갑시다!’ 뭉티기? 멍청한 사람을 말하는건가? 아무 생각없이 뭉티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이다. 뭉티기는 생고기를 엄지손가락 사이즈로 뭉텅뭉텅 썰어내는 모습을 본 떠서 대구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고기의 다른말로, 뭉치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뭉티기의 특징은 가늘게 채썬 육회와 다르게 고기 자체에 양념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조선간장에 다진마늘 고춧가루, 그리고 참기름 등을 섞어서 만든 양념장 (다데기)에 콕 찍어 먹는다. 

생고기는 당일 도축한 가장 신선한 소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찰기가 살아있어 접시를 세워 들어도 고기가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대구에서 생고기로 쓰이는 부위는 일반 고깃집과는 달리 마블링이 적고, 지방이 거의 없는 부위를 선호하기 때문에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 살을 사용한다. 마치 비트처럼 자색빛이 영롱하고, 힘줄을 제대로 손질해서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가 좋다. 신선하고 쫀쫀한 육질의 뭉티기와 참소주를 함께 곁들이니 대구의 밤이 금새 저물어간다.   


 

이 맛 때문에 대구에 다시 오리다, 완벽한 그린푸드 고디이탕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먹깨비들과 함께 출장을 간지라 호텔 조식을 먹지 않고, 대구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아침 해장국을 먹으러가자 해서 따라가봤다. 대구 남구청쪽에 있는 한 식당이었는데 ‘고디이탕’이라고 써있다. 고디이? 고니를 말하는건가?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음식이었지만, 자리에 앉아 고디이탕과 고디이전을 주문했다. 세상에. 미역국보다 더 진한 초록색의 탕과 전이 나왔다. 고디이는 올갱이 또는 다슬기를 뜻하는 대구말로 사람의 간 색깔과 똑같아 실제로 간 해독에도 좋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디이탕안에는 부추 (정구지)가 듬뿍 들어가있고, 동글동글한 고디이가 수북하게 올려져있었다. 한 숟가락을 떠 먹으니 목구멍부터 뱃속까지 평안한 안식의 시간이 찾아왔고, 고디이의 쫄깃함과 부추의 아삭함이 함께 느껴져 씹는 재미도 있었다. 계속 먹다보면 속이 빠르게 해장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또 소주를 주문하게 되버리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으니 유의하면서 먹자. (고디이 영상: https://youtu.be/fsI49kZB0Hg)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 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전국일주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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