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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홀릭 Oct 05. 2021

마흔을 앞두고 또 이직이라니

나이 마흔 스타트업 적응기 1

나이 마흔이 되면 이 놈의 회사 안 다닐 줄 알았다. 이 구질 구질한 회사 생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들었고, 일요일 아침이면 벌써부터 출근할 월요일이 두렵고 짜증이 났었다. 삽십대의 나는, 회사 핑계로 내 자식도 잘 돌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회사 일을 똑부러지게 잘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였다. 


한창 일할 시기였던 삼십대 초반즈음 다니던 회사가 휘청하며 희망 퇴직을 권유받았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듯 육아 휴직을 썼던 쓰린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도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내가 '선택받은 그룹에 속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래도 나름 성실하게 일했고 누구보다 회사를 사랑했기에 더 상처가 컸다. 회사를 감정적으로 사랑한게 문제였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니'... 그 배신감이란. 

  

그 당시 사건은 나의 직장관을 바꾸어 놓았는데, 앞으로 이직할 회사는 무조건 망하지 않을 안정적인 회사, 대기업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결국 길고 험난한 채용 과정을 꾸역꾸역 통과해 한 유통 회사의 서비스 기획 직군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입사 당시에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기만 했고, 여성 임원을 꿈꾸며 50대 후반까지 승승장구하는 멋진 미래를 꿈꿨었다. 그 달콤했던 시간은 경력사원 교육이 끝나고 팀에 배치되자 마자 산산조각 부서졌다. 그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경직된 회사를 겪어보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팀장, 본부장, 대표용 보고서를 만드느라 실제 기획을 할 시간과 여력이 없었고, 전혀 겪어보지 않은 희한한 성격의 상사까지. 매일을 울면서 퇴근하다 심신이 지쳤던 나는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커리어 상 이렇게 짧은 경력이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당시에는 이것 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우울증 정도가 꽤 심각했던 것 같다.   


이 때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연봉, 회사의 규모보다도 같이 일할 사람, 그리고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름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조금씩 생겼다. 남들에게 좋아보이는 회사라고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큰 조직이라면 본인이 속할 팀과 특히 직속 상사가 누구인가가 너무나 중요하다. 회사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에 싫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 정신 건강에 치명적이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떠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내가 적극적으로 피하고, 팀을 옮기거나 이직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다음 번 회사는 규모는 작지만 지인이 상사로 있는 나름 알찬 회사였다. 내 나이는 이미 삼십대 중반이었고, 일에 대해서 크게 욕심은 많지 않았다.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스트레스가 적은 회사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램의 전부였기에 연봉 욕심도 없었다. 처음엔 기존에 하던 웹기획 업무를 하고, 유튜브 관련 비즈니스 등 디지털 업무를 맡아서 바쁘게 진행했다. 회사에서 내려준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다보니 시간이 뚝딱 뚝딱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회사에서 야심차게 진행했던 디지털 사업은 매출면에서 성과가 나지 않았고 내가 속해있던 사업부는 공중분해되어 여러 부서에 흡수되었다. 나 역시 마케팅 부서로 편입되었고 나는 '퇴출되지 않은 것만해도 어디인가' 감사한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마케팅 부서는 오프라인 행사가 많은 조직이라 빠른 실행력과 상황 판단력이 중요했다. 전시, 원데이클래스 등 각종 행사가 많았는데 각 분야의 대가를 직접 만나고 수준 높은 문화 생활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게 큰 혜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외근이 많다보니 몸이 힘들고 체력이 너무 달렸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라는 것이 계속 걸렸다. 오프라인 행사는 일의 특성상 다양한 분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실행하는 총 감독의 역할이지만, 한 편으로는 전문성을 살리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5년 후에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 가능성이 있을까? 공부방을 차리면 어떨까? 나도 스마트스토어를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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