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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슈퍼 Oct 28. 2023

클라이언트도 떨린다

프리랜서 초반, 일을 새로 할때마다 수많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특히 클라이언트에 대한 불안감이 심했다. 불안하니까 인터넷으로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경험담을 찾아봤다. 미리 알고 있으면 대비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였다. 디자이너들이 모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훑어보는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가장 핫 한 주제는 ’클라이언트의 갑질‘이었다. 디자이너마다 각양각색의 사연들이 넘쳐났다.


사연 1. 주말 저녁에 문자와서 어디까지 됐냐고 쪼는 건 무슨 매너?

사연 2. 수정 12번 해줬는데 결국 처음걸로 가자는 클라이언트. 이 직업에 현타가 옴.

사연 3. 화려한면서도 미니멀하게 해달라는데 어떻게 해줘야 함?

등등


이런 것들을 일 시작하기도전에 잔뜩 읽었더니 클라이언트가 꼭 내가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괜히 기싸움에서 이겨야만 할 것 같고, 까칠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았다. 넋놓고 있다간 내 코를 베어갈 것 같은 불안감..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해보면 다들 평범하고 상냥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동안 나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경계를 놓지 않았다. (일 해보기 전에는 모르잖아?)


실제로 일을 하면서 사연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설명을 하고, 휴일에 메시지를 보내 급하게 수정을 요구하고,  생각보다 일이 길게 늘어지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나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클라이언트의 갑질이구나, 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예민해졌다. 혹시 나를 무시하는건가? 그래서 조금만 선을 넘는다 싶으면 까칠하게 대응했다.


그 당시 나는 일을 하며 갑질을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소품을 만들어서 판매해본 적이 있었다. 기획과 디자인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제작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누군가에게 내 소중한 상품을 맡겨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안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반드시 좋은 전문가를 찾아야 해! 실력은 기본이고 내 상품을 잘 이해해줄 사람을 찾고 싶었다. 최고의 전문가를 찾기 위해 온갖 정보를 헤집고 다녔다. 관련 커뮤니티를 샅샅히 훑고, 네이버 카페를 뒤지면서 경험자들에게 쪽지를 보내 추천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전문가에게 당한 분노의 사연을 백 개 정도는 보았다.


사연 1. 미팅할땐 엄청난 전문가처럼 얘기하더니 다 사기였어요. 퀄리티 폭망..

사연 2. 오늘까지 꼭 받아야 하는데 연락이 안되서 미치겠습니다.

사연 3. 선금 입금했는데 잠수탔어요. 고소해야 하나요?

사연 4. 제껀 신경도 안 써주네요. 돈 많이 주는곳만 신경써주는 듯.

사연 5. 처음 설명이랑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왔네요. 팔지도 못할것 같은데 어떡하죠?

등등..


와.. 진짜 너무하네. 사기가 난무하는 무서운 세상이구나. 까딱했다간 돈만 날리겠는걸? 사연만 읽어도 화가 났다. 그리고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나는 나쁜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석같은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스무명 가까운 전문가들을 만난 후 한 전문가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나는...


말도 안되는 주문을 하고 (너무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말에도 여러번 연락했으며 (죄송해요! 그런데 너무 급한 일이라..징징)

컨셉도 여러번 바꿔서 잦은 수정을 하게 만들었다 (만들어 보니 그 느낌이 아니네요)

여러번 잘못된 정보를 담은 메일을 보내 일을 번거롭게 만들었다.


완전히 진상 클라이언트였다.


변명하자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일을 지지리도 못한 것이다. 일 못하는게 자랑도 아니지만, 분명한건 결코 전문가를 무시하거나 갑질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상품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어서 횡설수설한 설명을 했고, 상품을 잘 팔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어서 컨셉을 여러번 바꿨다. 제작이 처음이라 챙겨야할 과정을 빼먹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일정이 꼬여 주말에 연락을 해서 징징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도 많았다. 계획은 언제나 틀어지고 약속은 빈번하게 깨졌다. 나는 여러번 멘붕이 왔고 그 과정에서 나와 계약한 전문가도 내 멘붕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다행히 나의 전문가님은 노련하게 상황을 리드해주었다. 중간에 그만두지도 않고, 한번도 화를 안 내며 끝까지 함께해주었다. 그가 일을 더 해준만큼 추가 비용이 들어갔지만 내가 준 스트레스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일 것이다.


그와 일하면서 의뢰받는 입장에 있을때의 내 태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클라이언트에게 진짜 도움을 주었을까? 그들도 내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기댈수 있는 전문가였을까?


의뢰하는 입장인 클라이언트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서투를지언정 나를 괴롭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서로 원활하게 일을 마치기 위해서 서로가 동의하는 계약서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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