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 가슴 아픈 제주 4.3항쟁

그 아련함과 살아감 補遺, 4.3 항쟁 1/3

by Architect Y

1948년 3월 1일 유엔 임시위원단은 5월 10일 이전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단독선거를 치르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미국의 강요에 의한 민족분열의 징후가 명확해져 감에 따라 조선 민중의 투쟁은 보다 끈질기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농촌에서는 「야산대」라는 무장소조가 조직되어 지서 등 관내 행정기관 및 악질적인 반동분자들을 공략하는 투쟁을 활발하게 펼쳐 나갔다.

이러한 민중들의 무장투쟁은 제주 4.3민중항쟁을 통하여 직접적인 대규모 무장봉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제주는 외세와 봉건세력에 항거해 왔다. 또한 타 지역에 비해 해방 이후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의 귀환자들이 매우 많았다. 이들은 해외에서 겪었던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진보적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1945년 9월 15일 제주읍 인민위원회 조직을 시작으로 각 지역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9월 22일에는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와 함께 대중단체가 잇달아 조직되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민주사회를 목표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나갔다.


1945년 9월 28일 제주도를 점령한 미군은 제주도 인민위원회와 각 지역 인민위원회를 강제해체시키고 친일세력들을 기용하면서 민족반역자들을 중심으로 경찰등 각종 폭력기구를 창설하였다.

1946년 1월 15일, 미 군정은 그동안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제주 도민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해 오던 구일본인 재산을 강탈하여 미 군정의 재산으로 몰수하여 갔다.


이런 미 군정의 악질적행위를 지켜 보았던 미국인 Mark Gayn은 그의 저서 <Japan Diary 일본일기>에서


나는 번뇌와 부끄러움으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탄압하는데 있어서 단연 으뜸간다 할 수 있을 야만적인 경찰 국가가 우리 국가(미국)와 함께 탄생하고 있는 것을 보아 왔다

라고 토로하였다.

1945년 12월 12일 밤, 미군의 사주와 지원을 받는 친일 반역자들로 조직된 「한라단」이라는 조직이 미군의 해산명령을 거부하고 조직을 유지하고 있던 제주도 인민위원회 사무실을 급습하여 방화와 테러행위를 자행하였다.

이 사건으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자 제주시민들이 테러 배격을 외치며 도 군정청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미군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한라단은 또다시 인민위원회를 습격하여 폭력을 휘들렀다.

이에 격분한 인민위원회 자위조직인 보안대가 출동하여 한라단을 소탕하여 버렸다.

그러자 미군과 경찰은 인민위원회를 급습 포위하여 50여명의 애국적 시민들을 검거, 투옥하였다.


1947년 3월 1일 제주민중은 3.1 운동을 기념하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미 군정당국은 육지로부터 경찰 지원병력을 투입하는 등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대회를 폭력적인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인하여 어린소년이 죽고 많은사람이 부상당하였다.

이에 격분한 제주민중들은 3월 9일부터 일제히 총파업 투쟁에 궐기하였고, 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시장의 상인들은 단체철시로 민중들의 총궐기에 합류하였다.

뿐만 아니라 군정청 직원들을 포함하여 도내 각경찰지서원들과 재판소의 직원들까지도 발포경찰의 처단과 경찰책임자의 인책파면을 요구하며 민중들의 파업투쟁에 동참하였다.

이에 당황한 미 군정은 무장경찰관과 서북청년단(이하 서청), 대동청년단(이하 대청), 민족청년단(이하 족청), 독립촉성국민회(이하 국민회)등 악질적반민조직들을 투입하여 민중들을 살육하고 탄압하였다.

악질적조직인 서청, 대청, 족청, 국민회 등은

우리는 제2의 모스크바, 제주도를 공격하러 온 멸공대다


라고 큰소리치며 살인, 강간, 약탈 등 온갖 악행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미군과 경찰, 그리고 반민조직들의 살육과 약탈을 일삼는 살인적 탄압에 대항하여 제주민중들은 스스로를 무장하고 자위대를 조직하여 자위투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나갔다.

애국적인 제주민중들의 자위투쟁은 제주도 전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남한만의 단독선거 음모가 확실해 지던 1948년 초에는 보다 짜임새 있는 무력저항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핵심적인 유격대 조직이 행정의 말단지구까지 만들어지고, 민중의 저항자위투쟁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가 주도면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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