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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 김장과 수육

; 김장담그는 날, 소설에

by Architect Y

절기로 소설, 어제는 김장을 담궜습니다.

21세기 도시생활자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도 형제, 자매가 모여 벌써 15년 가까이 함께 김장을 합니다.

입동과 대설 사이에 위치치한 소설'은 24절기 중 하나로, 첫눈이 내릴 정도의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며, 이 무렵이 '김장'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로 여겨집니다.

겨울 동안 온 가족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소설 전후의 적당한 기온을 이용해 김치를 맛있게 만들고 오래 보관하기 위한 방식이죠.

30년 전만해도 정부에서 이 시기에 연말까지 김장 상황실을 가동했습니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배추가 아닌 김치를 살수 있으니 김장에 대한 무게감은 예전에 미치지 못합니다.

재밌는것은 어제(11월22일)은 김치산업의 진흥, 김치 문화를 계승·발전, 그리고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하여 제정되어 2020년부터 시행된 ‘김치의 날’입니다.

날짜가 11월22일은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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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소금에 절여 구동지(舊冬至)를 대비한다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 동국세시기


한반도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춥고 건조해 겨울에 나물, 채소가 거의 없어 나물은 말려주었다가(건나물, 묵나물) 불려서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 주었고 고대부터 발달해 온 저장기술인 항아리로 김치를 겨울 대비 식량 저장한 기후 기술의 결합의 결과로 만들어진 김장은 생활형 식문화입니다.

그래, 겨울의 말린 나물은 생나물과는 달리 꼬들꼬들하고 쫄깃한 식감을 가지며, 말리는 과정에서 특유의 깊은 풍미와 구수한 맛이 생겨나고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이 95% 이상 제거되면서 영양 성분이 응축되어 식이섬유, 무기질, 비타민 등의 함량이 높아지며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 기능을 강화하고 변비 예방에 도움을 주며, 비타민과 칼슘 성분은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입니다.

김장 김치의 경우에도 김장 후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새콤하고 깊은 맛이 더해지고 일반 김치보다 숙성 기간이 길고, 숙성 과정에서 깊고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젓갈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김치 속을 만들기도 하며 더 풍부한 재료와 충분한 숙성 과정으로 인해 유산균과 영양소가 더욱 풍부하고 깊은 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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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날에는 돼지고기 삶고, 수육에 김치 속을 얹어 먹는 풍습은 빠질 수 없죠.

김장날 수육은 너무 자연스러운데, 이는 조선 후기의 식문화, 가정경제, 노동 보상 문화가 얽혀 있습니다.

조선 후기 농민생활 기록인 동국세시기, 농가월령가, 승람류, 지방지등을 보면 김장철에 돼지를 잡거나(屠豕) 푸줏간에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국·삶은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확히 수육이라는 표현은 아니지만 푹 삶아 먹는 고기, 즉 현대의 수육과 같은 조리법을 지칭합니다.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소 잡고 돝(돼지) 잡으니 음식이 풍비(豊備)하다.

- 농가월령가, 정학유


…11월의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메밀국수를 무김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는다.

- 동국세시기, 홍석모

이어 일제강점기에는 식재료 공급망이 안정되면서 푸줏간 고기가 일상적으로 구해지며 집집마다 김장 끝나면 수육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고 1960~198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김장 노동이 매우 고된 시기였기 때문에 고생했으니 고기 삶자라는 가족 노동 보상 문화로 강하게 정착하며 이때 수육, 막김치, 생굴, 보쌈김치 조합이 전국적으로 상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온이 낮아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아 조선 시대 농촌은 초겨울(11~12월)은 돼지 잡는 계절로 겨울 준비(장, 김치 만들기)와 돼지 도살이 같은 시기였습니다.

당시 물에 삶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던것은 삼겹살을 구워먹는 문화(1980년대 후반)가 자리 잡기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삶는 수육이 보편화 되어 있었기에 이것이 굳어져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죠.

물론, 김장은 한 해의 식량 보관을 맡는 거의 ‘의례’에 가까운 작업이었고 끝내고 나면 새김치의 맛을 보는 것이 작은 의식인지라 이때 수육을 곁들이며 가족이 함께 먹는 행위가 풍년, 안전, 가정 화합을 기원하는 성격을 갖게되거나 예전 김장은 친척, 이웃, 여성들이 모여 협업하는 공동체 노동이었기에 일을 끝내고 함께 먹는 수육은 현대 기업 워크숍 뒤의 뒤풀이와 같은 공동체 강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장철에 자연스럽게 돼지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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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세계 유일하게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등 선조들의 생활지혜는 여전히 과학적인 조합과 선택으로 이루어진것에 감탄하듯 김장김치와 수육 조합도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미각, 발효, 지방, 아미노산의 상호작용이 극대화되어 지방, 산, 감칠맛, 향, 식감이 수학적 합이 아니라 증폭되는 조합으로, 과학적으로도 거의 최적의 페어링입니다.

수육(삶은 돼지고기)의 주요 맛 분자는 장시간 저온 삶기를 통해 근섬유가 풀리고 감칠맛 아미노산이 용해되며 특히 글루탐산과 IMP의 조합이 감칠맛 상승 시너지가 8~10배까지 증가하며 지방이 입안을 코팅하고 부드럽고 달큰한 풍미를 제공하는 부드러운 지방·감칠맛 아미노산의 덩어리인것입니다.

김치(막김치)는 젖산(lactic acid)의 산미와 아세트산(acetic acid)의 휘발성 산미에 씹을 때 톡톡 터지는 상큼함을 보이는 이산화탄소(CO₂)와 과일 같은 향이 느껴지는 다양한 에스테르(esters)가 더해지며 산미, 염도, 단맛, 향미가 가장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렇게 각개전투를 하던 두가지 음식은 알라닌, 글리신 같은 단맛 아미노산이 포함된 돼지고기와 발효 과정에서 생긴 산미, 미세 탄산감의 막김치가 합쳐지며 「달큰함vs산뜻함」 , 「기름짐vs아삭한 식감」 , 「온기(따뜻함)vs차가움(김치의 온도)」 이 모든 대비가 뇌의 보상 회로(맛 시냅스)를 최대로 자극합니다.

이를 미각신경학에서는 Contrast Enhancement(대비증강)라고 합니다.

여기에 소위 식감이라고 말하는 텍스쳐도 돼지고기의 gelatinized collagen(젤라틴화된 콜라겐)이 부드러움과 펙틴(pectin) 구조가 살아 있어 아삭함 제공하는 김치의 대비가 혀가 더 많은 정보를 받는 상태가 되어 맛을 더 강하게 인지하게 하는 신경학적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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