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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XXX 宗廟 종묘

; 몽니

by Architect Y

서울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앞 세운 4구역(종로구 예지동 85번지 일대) 재개발 사업의 건물 높이를 최고 71.9m에서 145m, 용적률은 최대 700%에서 1094%로 상향해 논란이 있었고 이에 2025년 12월1일 한호건설은 입장문을 내어 “당사가 보유한 세운 4구역 내 토지 3135.8㎡(950평)를 매각하기로 했으며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한호건설 보유 토지를 매수해줄 것을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호건설은 토지 매각을 결정한 까닭에 대해 “세운 4구역 개발이 추진돼도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계속 토지를 보유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야기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에스에이치에 토지 매각이 어려울 경우엔 일반에 매각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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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재밌죠.

한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도시의 시장, 그리고 정권의 배경으로 한 나라의 건축을 나락으로 빠뜨린 건축가가 만들어낸 흉물을 이제는 세계적 문화유산을 쓰레기통속으로 던져버리는 모습이란…


https://brunch.co.kr/@architect-y/17

→ 세운상가에 대해 올렸던 글


도심을 녹지로 연결하는'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수립해... 광화문광장 3배(13만 9000㎡) 크기의 녹지 공간 조성을 추진 중이다.


종묘 인근의 세운지구는 오랫동안 개발이 지연되고 노후화된 상가들로 인해 도심 슬럼화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낙후된 도심을 개발하고 대규모 녹지 공간을 확보하여 서울 도심의 경쟁력과 환경을 개선하고 세운상가를 포함한 노후 상가 7곳을 철거하고, 광화문광장의 약 3배에 달하는 개방형 녹지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로 개발 사업자에게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대폭 완화해주는 대신, 이 공공 녹지를 확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고층 재개발을 통해 이 지역을 활성화하고 도시 기능과 미관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높이 규제 완화와 용적률 상향(최대 700%에서 1094%로 상향)을 통해 얻는 개발 이익의 일부를 공공임대상가 조성 등 공공 시설로 환수하여 공익성을 높이며 기존에는 '낮고 뚱뚱한' 건물만 지을 수 있었던 계획을 '높고 날씬한' 건물로 바꿔 녹지 공간을 넓게 확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사업성도 높아져 사업 좌초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묘(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맞은편 세운 4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고층 빌딩 건축을 허가한것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이라는 도시 계획의 일환이라고 당위성을 주장하며 이를 규제 완화(용적률 및 높이 상향)를 통해 사업성을 높여주는 대신, 대규모의 공공 기여(녹지 및 공공 시설)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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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시야 가림이 크지 않다고 하지만, 종묘쪽 가까운 쪽의 경우 기존 15층 높이에서 2배가 되는 30층을 수용한다는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당연히 국가유산청 주장은 경관을 막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UNESCO World Heritage 우리의 종묘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중국의 太庙 태묘는 위에서 태묘를 바라볼 수 없도록 보호하고 있고 일본의 에도성 주변은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으며, 에도성 정문에서 정면 건물까지 거리가 800m인 반면, 종묘는 정문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부터 개발이 시작합니다.

일부에서 선정릉(테헤란로)이나 장릉(아파트) 사례와 비교하여 종묘 개발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지만 선정릉(성종의 능)의 경우 테헤란로 고층 건물이 능을 정면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며, 해당 개발 시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이전이었고 그 가치를 비교해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구태여 세운 4구역 개발 이익의 민간 집중 의혹(한호 건설이 저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시점, 용적률 상향에 따른 이익 구조, 한호 건설의 성장 배경, 토지주 협상 과정과 서울시 공무원 개입 의혹, 환수 장치 부재 등)이 아니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반대 이유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고유한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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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n’t minimalism… It is simple and strong. Jongmyo embodies the emotions and enthusiasm of the people who built it

이것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종묘는 그것을 지은 사람들의 감정과 열의를 담고 있다.

If I had to choose one similar building, it would be the Parthenon.

비슷한 건물 하나를 고르라면, 파르테논 신전을 꼽겠습니다.

- 건축가 Frank Gehry(프랭크 게리), 중앙일보


I still remember clearly the powerful impressions I had stepping up from the garden of Jongmyo Shrine.
종묘 정원의 계단을 올라섰을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또렷하다.

- 건축가 Frank Gehry(프랭크 게리), World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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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myo is the oldest and most authentic of the Confucian royal ancestral shrines, with a unique spatial layout that has been preserved in its entirety.
종묘는 유교 왕실의 조상 사당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진정성이 높은 사례로, 고유한 공간 배치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A rare combination of architectural monumentality (horizontal rhythm and repeated columns) and living ritual — Jongmyo couples built form with intangible ceremony.
건축적 장엄함(수평적 리듬과 반복되는 기둥)과 살아 있는 의례의 희귀한 결합 — 종묘는 물적 형식과 무형의 의식을 함께 아우른다.

- TimeOut / Korea Herald


If there is the Parthenon in the West, there is Jongmyo in the East.
서양에 파르테논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

- 일본 건축가 白井晟一 Siarai Seiih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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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단지 ‘옛 건물’이 아니라 조선 왕실 제례와 유교적 정치, 사회 질서를 지금까지 전승하는 복합적 세계유산(물적·무형 모두)이며, 그 공간적·시각적 완결성(경관·위계)이 훼손되면 제례의 진정성, 역사적 무결성, 교육적 가치가 함께 손상됩니다

종묘는 조선 건국 이후 왕실의 정통성과 국가 의례를 구현한 장소로, 도읍 체계(궁·종·사)의 핵심으로 왕조의 정치·종교적 기제를 보여주는 600년 이상의 연속된 역사 기록과 물증을 담고 있습니다.

유학적 제례는 ‘공간의 위계’와 ‘풍경의 절제’를 통해 권위와 경건함을 만드는데 종묘의 수평적 장엄함, 단정한 미학은 겸손과 절제라는 유학적 미덕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주변 고층화로 경관이 깨지면 그 철학적, 심미적 메시지가 손상됩니다.

종묘 정전은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중 규모가 매우 큰 사례(정전의 긴 수평적 구성, 19칸 구조 등)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건축유형으로 이런 물리적 특성은 복원, 관리로 유지되지만, 주변 경관(Viewshed, 완충구역)이 깨지면 건축적 의도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진정성(authenticity)’과 ‘무결성(integrity)’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개발 결정이 이런 기준을 훼손한다고 판단되면 국제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종묘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장소입니다.

건물의 형태, 재료뿐 아니라 그곳에서 반복되는 의례, 공간을 바라보는 시민의 기억, 그리고 도시 속에서 비어 있는 ‘고요한 틈’ 자체가 하나의 문화자원입니다.

따라서 개발정책은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문화자산 보존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하며, 그 판단은 뷰셰드(view-shed) 시뮬레이션, 일조와 그림자 분석, 진동과 지반 영향 조사 등을 의무화하고 공개검증, 유네스코 권고 수준에 맞춘 완충구역 지정과 고도 규제(혹은 디자인 가이드라인) 적용, 고층을 전면 배제할 수 없을 경우(공급·경제적 이유), 스카이라인 관리와 건물 마감과 조경을 통해 시각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디자인과 재료 기준을 수립, 역사, 건축, 문화·시민 대표, 유네스코 자문단 등이 참여하는 상시 협의기구 운영등 과학적 영향평가와 공개적 사회적 합의 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종묘는 겉보기에 ‘단정한 한 옥(韓屋)’ 같지만, 실제로는 유교 제례를 위해 극단적으로 절제된 건축,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수평적 장엄미(長壯美)를 구현한 특수한 공간입니다.

종묘 건축은 조선 왕조 전체의 정치, 철학, 기억이 응축된 공간으로 단순히 오래된 목조건축이 아니고 그 안에는 왕조의 정통성, 정치적 갈등, 증축의 역사, 철학적 절제, 제례의 무대

식민지·근대 도시화 위기의 흔적, 이 모두 켜켜이 쌓여 있기에 종묘 건축은 형태뿐 아니라 사건의 역사로 보존 가치가 더욱 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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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이 동네 5만 6천 평에 공사 시작하여 다음해 1차 완공.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고조부 목조, 증조부 익조, 조부 탁조, 부친 환) 위패(位牌-위패는 깊은 산속에서 자란 밤나무를 사용)를 모셨습니다.

전부 왕으로 추존(追尊: 왕위에 오르지 못한 할아버지들을 왕으로 모시는 것)한것이죠.


정문은 검박(儉朴 검소하고 소박)합니다.

여기부터 왕도 걸어 들어갑니다.

정문 들어가면 4각 연못위에 동그란 섬이 하나 떠 있습니다.

연못은 땅이고, 섬은 하늘이라 사각과 원으로 세상이 되고 망묘루(望廟樓: 왕이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는 정자)에서 잠시 대기합니다.


종묘제례가 시작됩니다.

왕이 몸소 제사를 올리는 친제(親祭)때는 왕이 맨 처음 헌작(獻爵 술잔을 올림)하는 초헌관이 되어 잔을 올리고, 왕세자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으로 두번째 잔을 올린 후, 영의정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는 종헌관이 됩니다.

제관인 왕과 왕세자는 어숙실에서 재계(齋戒 심신을 깨끗이 하고 금기를 범하지 않도록 샤워)한 후, 어숙실에서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난 어로를 따라 묘정에 들어와 각각 정해진 자리인 전하판위(殿下版位)와 세자판위(世子版位)에 이르러 제사를 올릴 예를 갖춥니다.

남문에서 정전까지 왜 까만 돌로 길을 낸건 신로는 오직 신만이 다니는 길로 왕은 동문으로 입장 합니다.


정전 길이는 앞의 1과 뒤의 1일 대칭이 돼야하므로 가로101m 세로 69m의 소우주가되고 2,300평의 정전공간은 신성하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공간이 됩니다.

구름이 둥둥 떠 있고, 손을 댈수록 더 망가진다는 생각에 투박한 자연미를 보여주는 다듬지 않고 아무렇게나 깔려 있는 박석(薄石 얇고 넓적한 돌)은 무한하게 펼쳐지고, 파도가 치는 것도 같고...

정전 앞은 좀 올려 월대를 만들며 정전은 달이 되고, 구름도 떠다니고, 하늘엔 해가 있습니다.

그저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지붕 얹었습니다.

왕이 바뀌거나 말거나 설계자가 죽거나 말거나 종묘 공사는 152년간 계속됩니다.

정전의 부족한 공간으로 서쪽에 영녕전(永寧殿: 길이길이 평안한 집)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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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에는 19실에 정전 좌측 1실부터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 철종, 고종, 제19실 순종과 왕후들 49위, 그리고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를 모십니다.

영녕전은 정전이 품지 못하는 정치적 기억의 왕족 혈통,역사의 그늘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이는 조선이 단순한 직계 중심이 아니라, 방계까지 포함하는 유연한 왕조였음을 보여줍니다.

1546년 완공. 정전은 국보 227호. 영녕전은 보물 제 8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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