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련함과 살아감 補遺, 가난한 이중섭(?)
서귀포시는 칠십리길에서 이어지는 관광 루트를 자연스레 연장하며
볼거리를 만들어줄 새로운 관광 아이템으로 이중섭을 선택했다.
이중섭 생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가난(?)해서 겨우겨우 그림을 이어 간 화가 이 중섭은 가난하지 않았다.
아프고 시린 역사는 감성을 자극하는 분명 관광상품으로 좋은 아이템이다.
더욱이 가난했던 하류계층민의 최고라는 자리로의 신분상승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이중섭의 그림은 좋아하지만 저런 감성팔이는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아래 「가슴 아픈 제주… 그 아련함과 살아감」이라는 제목으로 제주인문을 소개하는 글에는 이중섭관련된 곳-이중섭거주지, 거리, 미술관-의 글은 싣지 않았다.
왜곡된 그의 인생을 여과없이 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 補遺보유편에는 한번 짚어본다.
함흥의 공업 기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중섭은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스페인 투우를 연상시키는 소를 그렸다.
가난의 화신으로 그를 띄운 메스컴 역시 친일파의 후손들이었다.
가난의 화신이 된 이중섭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당시 진짜로 가난한 자는 일본의 탄광에서 일하였다.
당시 친일파들이 살아온 것 처럼 이중섭은 일본 사립대학교인 도쿄문화학원에 유학을 하였다.
일본 사립학교를 유학할 수 았었던 사람이 갈 곳은 결코 아니다.
1940년 2년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랑에 빠지고 5년뒤 결혼을 한다.
때에 따라서는 가문 좋은 집안이라고 말하고,
때에 따라서는 가난을 극복한 입지전적 인물로 자신을 포장한다.
일본이 패망하고 분단된 북한에서 공산당은 친일파들의 숙청을 시작한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1951년1월, 원산항을 통해 월남을 시도하게 된다.
제주 서귀포에서 머무른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전쟁 통에 원산에서 부산으로, 제주로, 다시 부산으로 옮겨 다니며 뼈 녹아내리는 나날을 보냈다고 하는데, 전쟁 당시 아닌 사람이 몇명이나 되었을까
더욱이 원산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든걸 버리고 나왔다.
우동과 간장으로 한 끼 먹던 날에도, 요행으로 두 끼 먹던 날에도 편지를 썼다고 하는데 이 조차 먹지 못하던 수 많은 사람에 비해 과연 그가 간난 했을까...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이 점이 부자라는 증거다.
당시 서민들은 은박지가 없는 담배를 사서 피웠고,
심지어 담배를 가꾸고,
이를 잘게 쓸어서 신문지에 말아서 피웠다.
일제치하에서 당시 가격을 보자면...
설렁탕 한 그릇에 10전.
담배 한 갑이 10전.
1945년 필터가 없는 막궐련 10개비에 30원.
시내버스 1구간 50전이니 6구간 값이다.
짚신을 짜고 나무를 해서 시장에 판 돈으로 물감을 살 수 있는가.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에 프랑스제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리다가 광복 후에 물감을 구하지 못하자 나는 가난하다고 탄식을 하고 또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편지를 실어본다.
여기 내용을 본다면 전시에 가난했던 사람들의 내용은 결코 찾아 볼 수 없다.
나의 귀여운 태현 군.
건강하지? 학교에 갈 때에는… 좀 춥지 않니?
요전엔 엄마와 태성 군과 태현 군 셋이서 이노카시라 공원에 놀러 간 것 같구나.
연못 안에는 커다란 잉어가 많이 살고 있지?
아빠가… 학교 다닐 때…이노카시라 공원 근처에 살았기에 매일 공원 연못가를 산책하면서
커다란 잉어가 헤엄치고 다니는 모습을…보고 즐거워했단다.
아빠 ㅈㅜㅇㅅㅓㅂ
위 : 아빠가 약을 마시고 건강해졌어요. / 약 / 아빠 감기 걸려서 누워 있었어요. / 그대들의 사진
왼쪽 : 엄마와 태현 군과 태성 군이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갑니다.
아래 :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 줄게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으므로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 어서 전람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 테니 … … …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이중섭이 가난하다고 이중섭평전을 쓴 사람은 시인 고은이다.
그의 성향은 친 극우쪽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가 가난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