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해지는 피맛골의 추억 여섯, 졸업식날의 추억 중국집
어린시절 졸업식이나 운동회 날이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찾았던 동네의 중국 음식점.
자장면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의 자장면 집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는다.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다.
재개발로 사라져 가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하다. 수십 년간 서민들의 눈과 입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던 노포들...
구도심의 재개발 노포들은 남아 새로운 건물로 입주해 영업을 해오는 곳(청진옥, 열차집, 미진등)이 있는가 하면 을지로, 명동, 북창동등 인근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
노포를 찾는건 개발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에서 찾을수 없는 향수다.
맛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게 될 안타까운 추억이 현재 진행형으로 스쳐가고 있다.
新昇館 신승관
신승관은 1964년 청진동에 터를 잡았다.
이 집 문을 연 것은 13년 전 별세한 華商화상(화교 상인) 장학맹님으로 그는 70여 년 전 중국 山東산둥성에서 한국에 들어왔다.
신승관은 빼어난 음식 솜씨로 금방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특히 해삼탕에 동파육을 얹어 낸 ‘해삼주스’와 시금치 즙을 짜서 만들어 초록빛이 도는 물만두는 수십 년간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신승관은 셋째 아들인 장경문님에 이어 손자가 물려받아 3대째 가업을 이었지만 재개발의 광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종로구 청진동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2008년 5월 중순 문을 닫았고 몇 개월을 준비해 최근 중구 북창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3대째 이곳에서 터를 잡고 장사했는데 이제와서 옮기려니 장사할 맛이 안난다
중국집 운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 2대 장경문 사장
老鋪노포(대대로 물려오는 점포)가 한국에 드문 것은 역사적·사회적 이유가 있다.
노포란 안정적 영업 환경에서 태동하는데 구한 말의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 정국, 한국전쟁, 산업화 등 하루가 다를 정도로 격변기를 거치면서 안정감없는 사회를 살아오며 장사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1990년대 경제호황기를 거치면서 식당 장사가 불이 붙듯 일어나면 우선 주방에서 일하던 주인이 카운터로 나와 앉고 그 다음에는 카운터도 아내나 직원에게 물려주고 고급차를 빼서 밖으로 떠돌다보니 40~50년을 한 자리에서 자신의 손으로 요리를 주무르는 노포의 기본조건이 성숙될 틈이 없었다.
거기에 개발붐으로 마지막 보루마져 잃었던 우리의 추억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
조리법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얘깃거리, 느낌이 담긴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