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종로 노포의 기억 하나, 곰탕집 河東館
요즘은 뼈가 중심이 되어 하얗고 탁한 국물이면 설렁탕,
뼈보다는 내장이나 살에서 우려내 맑은 국물이면 곰탕으로 구분한다.
곰탕의 어원과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몽골인들이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여 먹는 ‘공탕’이 전해져 ‘곰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1768년 이억성이 엮어 간행한 몽골말 학습서인 蒙語類解몽어유해에는 空湯공탕이 나온다.
공탕을 고기 삶은 물이란 해석과 몽골어로 ‘슈루’라고 적혀 있다.
1788년에 지어진 외국어 학습서인 方言集釋방언집석에는 공탕을 고기믈이라고 표기하고,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골에서는 슐루라고 부른다고 한다.
몽골이나 고구려와 같은 기마민족은 육식을 즐겨 했는데 살코기를 구워 먹고 남은 부위는 탕을 끓여 먹었다.
국과 밥이 기본이 되는 우리 민족의 탕반 식문화를 생각해 보면 꼭 공탕이 아니더라도 곰탕과 비슷한 고깃국물을 먹은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문헌 是議全書시의전서에는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떼기, 꼬리, 양, 곤자소니와 전복, 해삼을 큰 솥에 넣어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
며 이 음식을 ‘고음’이라 기록하였다.
고기를 ‘곤다’에서 ‘고음’이 되고 이것이 ‘곰탕’이 되었다는 말도 일리 있어 보인다.
閨閤叢書규합총서에는
살찐 쇠꼬리를 뿌리의 살째 무르게 삶아 잘게 찢어 쇠약가리와 부아 삶은 것과 함께 기름장, 후추, 깨소금에 주물러 끓이는 쇠꼬리곰을 만들어 먹었다
는 쇠꼬리곰탕에 관한 기록이 있다.
꼭 서민이 아니더라도 고기는 그 자체로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기로 국물을 낸 곰탕은 임금의 수랏상과 사대부 집안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1924년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서울에만 100개 정도 설렁탕집이 있었다고 한다.
설렁탕이 아닌 곰탕으로 승부한 곳 河東館하동관.
80년 가까이(77년) 가마솥의 곰탕은 끊이지 않고 3대를 넘어 4대째로 이어가고 있다.
하동관의 역사는 1939년 서울시 중구 청계천변 수하동(서울 중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청계천일대 도시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2007년 지금의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 류창희 할머니는 하동관 창업주(김용택)의 부인이자, 하동관 곰탕 맛을 탄생시킨 분으로 북촌마을의 반가집 딸로 태어나 북촌 양반집과 궁중음식에 해박하고,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
그 솜씨는 하동관 곰탕에 고스란히 녹아 오늘의 하동관 곰탕 맛을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그 뒤를 1964년부터 이으신 하동관을 이어받은 고 홍창록 할머니(장낙항씨) 또한 북촌 토박이로 맛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지닌 분이었다.
1968년, 홍창록 할머니는 곁에서 일손을 돕던 며느리에게 국솥을 넘겨주었다.
그 며느리가 지금 하동관 사장님인 김희영 할머니이고 그 다음 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하동관의 곰탕 국물은 마치 고깃국물의 기본처럼 느껴진다.
제대로 된 고기를 삶은 국물이라면 이런 맛이어야 온당하다.
예측 가능하면서도 참 당연한 맛인데 그 자체로 온당한 고깃국물의 본질이, 아무런 수도 쓰지 않은 그 국물이 감동이다.
본질보다 흉내가 앞서는, 상징으로서의 음식으로 가득 찬 요즘 세상에서 당연하다는 듯 오롯이 본질로만 찰랑거리는 한 그릇 앞에서 음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사골과 양지머리, 차돌박이와 양, 업치를 넣어 푹 끓인 국물에 소금으로만 간한 따뜻한 국물에서는 고기 내음이 느껴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박한 맛에 층을 이룬 고깃기름이 입안에 맴돌며 삼키고 나서도 고기 향이 흐릿하게 다시 넘어온다.
화려한 맛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정직한 맛이다.
따뜻하게 데운 놋그릇에 곰탕 국물로 토렴한 밥이 풀어져 나온다.
좋은 재료의 핵심은 단연 ‘한우’라 말할 수 있겠다.
80년 가까이 늘 한우 암소만을 사용해 왔고,
이 또한 60년 넘게 팔판동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꾸준히 공수해 오는 것이다.
매일 끓여대는 곰탕 솥에는 깨끗하게 손질된 양지, 곱창, 사골 등 소의 6가지 부위 200~300근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이렇게 엄선된 재료를 넣고 푹푹 고아내니 그 국물이 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통 곰탕집이라면 고기 잡내를 없애기 위해 파, 마늘 등을 함께 넣지만 이 역시 하동관 곰탕에는 없다.
그럼에도 잡내는 커녕 깨끗하게 손질된 내장의 깊은 맛이 우러나 구수하고 달큰해 그 깊이를 더한다.
반찬도 깍두기와 배추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없지만 깍두기 맛에 매료된 사람도 적지 않다.
깍두기 재료도 곰탕만큼이나 간단하다.
시원하고 달달한 제주산 무와 꽃소금, 고춧가루, 새우젓, 설탕이면 충분하다.
이 역시 모두 국산재료만을 사용한다.
우스갯소리로 하동관엔 일하는 중국이모 빼곤 다 국산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조리법, 똑같은 그릇에 내놓는 이 집의 곰탕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왔던 철부지 꼬마에서 이제는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 어린 손주의 손을 이끌고 찾아온다.
이른바 ‘대통령의 맛집’으로 불리며 박통의 점심 배달음식이었던 이곳엔 부인과도도 여러 차례 함께 찾았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국민MC 송해 등 각계 인사들의 오랜 단골집이기도 하다.
여의도점은 명동, 본점에서 빠져나와 따님이 운영하신다.
대치동 하동관은 본점과 벼도로 장낙항씨의 둘째 자제분이 운영하신다.
영업시간은 오후4~5시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