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해지는 피맛골의 추억 여섯, 메밀국수
술술 넘어가는 국수처럼 시집살이를 수월하게 넘기고 오래오래 함께 살자는 의미로 신행길에 오른 신부가 시댁에 도착하면 신랑은 신부를 부엌으로 데려가바가지에 국수를 담아 주걱으로 떠먹여 주는 풍습이 있었다.
국수는 장수를 의미하기도 하다.
그래 잔칫날 빼놓아서는 안될 의례음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국수.
지금 먹고 있는 잔치국수의 면은 밀가루로 만든것이다.
하지만 국수의 재료는 원래 메밀가루였다.
곡식으로서 메밀은 오곡의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메밀가루로 뽑은 국수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메밀을 국수 가운데 으뜸으로 쳤고 온면이나 냉면으로 말아곧잘 점심 수라상에 올랐다.
국수라면, 밀가루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으레 메밀국수를 지칭했다.
美進미진
광화문 미진이라는 옥호로 르메이에르종로타운에서 성업중인 메밀국수집은 1954년 현재 교보빌딩 광화문 사옥 자리에 문을 열고 현재 3대째 이어가는 집이다.
물론 이집의 메밀국수는 우리의 국수가 아니라 そばき(切)り소바기리라고 하는 일본음식이다.
메밀은 물론, 메밀가루로 국수를 내는 방법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갔으니 일본식 메밀국수는 우리가 역수입한 음식인셈이다.
메밀국수의 맛은 양념장에 달려 있다.
국수도 쫄깃쫄깃한 맛이 살아날 정도로 알맞게 삶아져야 하지만 국수에 찍어먹는 양념장이 맛을 좌우한다.
단골들이 말하는 미진의 감칠맛은 잘 삶아진 면발과 양념장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미다.
미진의 양념장은 환갑을 지나온 세월동안 미진공식에 따라 14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첫 단계는 무 다시마 쑥갓 파 등을넣고 삶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른바 미진공식에 따라 멸치 가다랭이 등다른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끓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한때 일본에 거주하면서 메밀이 건강식품이라는 점에 매료돼 조리법을 배웠다고하는 창업자 고 안평순(80년 60세로 타계)님이 지금의 교보빌딩 자리에 미진을 연 때는 54년.
영업이 어느 정도궤도에 오르자 종로의 대로변으로 옮겼다.
음식점은 물론이고 그 주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무척이나 인색하던 시절이었지만 서울에서 제일 맛 있은 음식을 내놓는다는 안씨의 자부심은 대단했다고 한다.
손님들 역시 최고의 명사라고 여겼다.
그런 마음가짐과 단아한 성품이 어우러져 미진은 자연스럽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미진의 고객은 대부분 단골이다.
개업 때부터 드나들던 단골이 무척 많다.
박정희 전대통령도 생전에 미진의 메밀국수를 즐겼다고 하고
무용가 김백봉여사는 미진의 찬미자였으며
말년을 청주에서 보냈던 고 김기창화백은 서울에 올라올 때 마다 미진을 먼저찾았다.
2대 사장 이영주씨는 지난 1978년 고 안평순님에게 가게를 물려받았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자 일식집을 운영하던 단골손님에게 가게를 넘겼고 두해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
자식이나 다름 없는 가게다.
너에게 줄 테니 늘 손님의 사랑을 받을 수있도록 잘 이끌어가라.
부디 미진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잘 지켜주면좋겠다.
그 시절, 광화문에 몰려있던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깔끔한 맛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는 성장세를 거듭했다.
가게를 물려받은 이 사장은 몰려드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평수를 늘려서 교보빌딩 뒷편(2008년 피맛골이 사라지기 전까지 영업했던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메밀국수는 겨울철에는 찾는 사람이 적었고 뒤이어 패스트푸드점이 속속 등장하면서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
위기타개책으로 이 사장은 가게 공간을 활용해서 밤에는 부가메뉴로 생맥주를 팔았다.
맥주(호프)집이 한창 붐을 탈 때였던 만큼 가게 매출은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창업주의 뜻을 되새기며 호프집 운영을 포기했고 본업으로 복귀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잇기 위해 다양한 메뉴개발에 나서 메밀전병을 비롯해 14가지 메뉴를 개발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공수해온 통메밀과 속메밀을 절반씩 섞어서 만드는 '메밀묵밥'은 3대 사장인 사위 이종헌님(46) 작품이다.
이제는 메밀전병이 메밀국수의 가장 인기 있는 사이드 메뉴가 되고 있다.
메밀반죽으로 만든 전병 속에 갖은 채소와 두부 등을 다져넣고 둥글게 말아 따뜻하게 내는 메밀전병은 자칫 부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국수메뉴와 어우러져 속을 든든하게 해준다.
겨울동안 떨어지는 메밀국수 매출을 보완하기 위해 보쌈을 적용했다.
고객들은 국수의 사이드 메뉴도 즐기고 겨울에는 술안주나 식사로 많이 찾는다.
이제 5월이 지나며 더워지는 날씨 속에 생각나는 메밀국수집 미진은
6,70년대 학창시절이었던 분들에게는 미진분식으로 기억되었고,
80년대는 미진호프나 미진낙지로,
90년대에는 메밀국수 미진으로,
21세기가 되면서는 광화문 미진으로 진화하며 3대를 이어오는 노포.
전분 함량이 너무 높다거나 면 색깔이 너무 진해 이상하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국형 메밀국수의 대표는 여전히 미진이다.
직계가 아니더라도, 무분별한 개발로 설 자리를 잃어도 이렇게 대를 이어가며 몇 백년을 함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