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련함과 살아감 아홉, 제주의 현대건축 이타미 준
제주의 현대건축하면 놓칠수 없는 곳이 있다. 물론 호불호는 갈리지만...그 배경부터 열어본다.
제주도 출신의 부모가 먹고살려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김홍수를 낳는다.
2세 김홍수는 26세에 고베에 신발가게를 차린다.
이게 대박이 나지만 굴뚝산업이라 곧 사양사업.
먹는장사로 전환 해 혼케 다마도야 도시락는 다시 뜨며 연 1조원씩 번다.
제주도로 넘어가 한라산 오지에 22만평을 사들인다.
비오토피아 Biot opia.
생태+천국의 합성어.
건축가는 일본에 단 한 명 이타미 준(1937-2011)이 참여한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후원자는 구엘이라는재벌이다.
하지만 구엘은 역사에서 흔적도 없다.
위대한 가우디만 끊임없이 명성을 강화해 나가며 신화가 된다.
그럼 돈 댄 구엘은 뭐냐.
김홍수는 이타미와 끊임없는 토론을 벌인다.
난 돈 대지만 그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당신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신화가 돼가고.
평당 공사비는 제한 없고 최고만 만들어 명품을 빚자.
500억을 쏟아부으며 오름으로 간다.
화산을 재현하며 오르고 또 오른다.
제주도 초가집을 몇 개 던진다.
초가와 초가가 만나면서 방이 만들어지고 로비가 만들어지고 캐스케이드가 생성된다.
안마당에선 유채꽃과 보리밭이 파도를 치고 초가집이 여러 개 만나면서 포도송이처럼 보여 호텔이름이 포도.
모든 방이 다른 풍광을 갖는다.
이 작품을 들고 이타미 준은 프랑스로 날아간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건축가로는 최초로 전시회를 열어 슈발리에가 된다.
슈발리에는 예술가에서 주어지는 프랑스 최고의 문화훈장.
1963년 김중업이 주한 프랑스대사관으로 이 훈장을 받은 이후로 40여 년만의 경사.
김홍수는 2,500억을 투자해 다시 225세대의 빌라건설에 착수한다. (평당 1,700만원)
구름 속에 천국을 조금씩 완성해 나간다.
미술관, 교회, 클럽하우스 죄다 설계는 이타미 준.
이타미선생은 당시에 71세.
상천리는 해발 380m의 고지대.
텅 비어 있다.
포도호텔 현관 들어서면 우측은 프론트 좌측은 레스토랑.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 직선의 복도를 지나가면 좌우측으로 계속 틀어진 틈이 만들어지면서 각종 도자기나 토기들이 하나씩 놓여 있다.
동선이 좌우측으로 찢어지면서 중앙 홀에는 원형의 투명한 갈대다.
유리상자안에 햇빛이 쏟아지면서 갈대가 흔들리고 전면으로는 냇가가 흘러 나가고 다시 새로운 중정이 만들어지면서 객실이 돌아간다.
객실 현황.
60평형 스위트룸 1박에 2백만 원.
40평형 로얄 룸 5개 1박에 1백만 원.
17평형 디럭스 룸 20개 1박에 60만원.
여기에 부가세 별도.
주말이나 휴일에는 20% 가산.
불과 26개의 초가집이 서로 만나면서 틀어진 틈새는 각기 자갈이 깔리거나 흙, 카펫이 깔리면서 돌이나 요강이 한 개씩 올라 앉기도 하고 비워져 있기도 한다.
벽 마감도 다 다르고 같은 틈이 하나도 없이 틀어진 각도도 다르고 보이는 풍광도 다 다르다.
지붕에서는 초가집 지붕이 파도를 치고 전면 안마당에서는 갈대가 춤을 춘다.
미술관 두손.
조금 걸어 내려가니 이번엔 철판으로 만든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갈 작정.
소녀의 얼굴 모양을 한 산방산(해발 395m)이 전방에 보인다.
산 이름이 산방山房.
해발 200m 지점에 자연석굴이 있어서 거기에 불상을 모셔서 산위에 있는 부처님의 방이다 뭐 그런 뜻.
현관 들어서니 철판이 전부 찢어져 있다.
전 세계에서 전혀 경험한적 없는 순교의 공간.
두손 벌려 산방산의 부처님을 향해 기도한다.
계단 내려가 빙돈다.
지하 1층의 전시공간.
이번엔 콘크리트가 규칙도 없 찢어지면서 틈새로 빛을 쏟아낸다.
전시물은 중앙의 제주 자연석을 중심으로 놓인 불상, 범종, 도자기 한 점이 전부다.
자연속에 또 자연이 만들어진 거다.
이곳은 확고한 흙상자다. -이타미
반짝이는 우주선 밖으로 돌아가니 이번에 코르텐강이되어 벌건 상자 밑으로는 냇가가 흐르고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 앞에 거대한 불상이 하나 앉아 있다.
입구에 이렇게 써 있다.
石미술관.
현관문을 여니 텅 비어 있고 코르틴철판을 교묘하게 쓸어내져 있었다.
빈 공간이 마치 터질 것 같이 찬란한 빛이 가득하다.
거대한 창밖으로는 돌부처가 앉아 있고 저 멀리서는 거대한 파도가 춤을 춘다.
風미술관
方舟 방주교회
큰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운다음 나무와 유리로 방주를 만든다.
2009년 완공.
기존의 폐쇄적인 교회들에 비해 이 방주교회는 완전 개방.
누구의 소유도 아닌 떠다니는 교회.
덧붙임)
이타미 준(1937- ). 재일동포 건축가.
한국 이름은 유동룡.
그의 선친은 일제강점기에 경남 거창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그를 6남 2녀의 장남으로 낳았다.
엄격한 부모의 영향으로 이들 남매는 모두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다.
학창 시절 '조센징'이라는 놀림도 받지만 꾿꾿하게 버틴다.
1970년대 이타미 준은 방배동에 ‘각인의 탑’을 설계하면서 이미 대한 민국에서 스타 건축가로 자리 매김한다.
몇 년 전에는 프랑스 국립 동양 기매 박물관에서 회고전을 가지면서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오른다.
대표작으로 부산국립해양박물관, 온양 민속박물관, 경기도 게스트하 우스 올드 뉴, 제주도의 핀크스 골프 클럽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 포도호텔 등이 있다.
딸 유이화가 각인의 탑에 사무실을 내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