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 II 잊히는 서민문화 12 평양냉면

; 실향민의 맛, 우래옥에서 을밀대까지 평양냉면

by Architect Y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회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대중뿐 아니라 외신들도 주목한 화제의 키워드는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회담 당일 평양 옥류관 냉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옥류관 전용 제면기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설치하고 갓 뽑아낸 냉면을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만찬장인 평화의 집 3층으로 바로 배달했고 옥류관 평양냉면육수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국내에서는 유명 평양냉면집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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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서울에는 많은 냉면집들이 성업 중이었다.

낙원동의 평양냉면집과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그리고 돈의동의 동양루 등이 모두 냉면 전문점으로 그 당시 이름을 떨쳤다.

당시 냉면집들은 간판 옆으로 긴 막 대기를 하늘 높이 꽂아 두고, 그 끝에는 길게 늘어뜨린 종 이다발이 흩날리도록해서 종이다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제면기의 구멍에서 막 빠져나오는 메밀국수 타래를 표현했던것 같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었던 당시의 종로, 전차에서 내려 북악산쪽을 올려다보기만 해도 이 종이다발이 금세 눈에 띄어 식객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 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36.7.23. 매일신보


평양냉면은 평안도 남부와 황해도 북부지역에서 해먹던 음식이다.

메밀가루를 익반죽하여 냉면틀에 눌러서 국수를 빼내(압출면) 바로 삶아 먹는다.

간은 양념을 적게하여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다소 밍밍한 맛이다.

가수 백지영씨가 평양 공연 때 먹어 본 평양냉면 맛에 대해 “기품이 있다”고 감탄했다는데... 1938년 백석시인은 그의 국수란시를 통해 냉면을 표현한것을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그 차이가 어디서난것일까

북한에서 출판한 요리책에서 여러 가지 냉면 조리법은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었다.

‘맛내기 조금’이 꼭 들어간다는 사실.

맛내기는 MSG, 즉 우리의 미원에 해당하는 북한말이다.

평양의 냉면도 현지에서 들려오는 말을 옮기자면 옥류관은 대외용이고, 인민은 다른 집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판국에 평양냉면에 식초와 겨자는 치지 말라는 둥, 붉은 양념을 넣는건 바보짓이라는둥 하는 다툼은 허망한 공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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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만 먹을 수 있었던 냉면은 근대적인 제빙 기술로인해 1920년대가 되면 사람들은 냉면을 여름음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1875년에 독일인 린데와 미국인 보일이 암모니아 압축식 냉동기를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된 제빙기술은 1910년 부산에 이어 제물포와 원산·군산 등지에도 제빙공장이 문을 열게 하였다.

제빙공장은 생선에 얼음을 채워서 오랫동안 유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설이었지만 한여름에 얼음을 보자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얼음으로까지 생각이 미쳐 냉면과 만나면서 여름냉면의 탄생을 가져왔던것이다.

냉면속에 든 얼음은 더위를 이기게 만들어주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주로 겨울에 마련하였던 동치미나 백김치, 혹은 나박김치를 여름에 담아야 육수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특유의 맛을 내는 비결의 하나는 동치미 국물이다.

배추보다는 무를 많이 넣고, 고추는 적게 넣는다.

12시간 이상 사골뼈를 푹 끓여 만든 담백한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반반씩 섞어서 간을 맞춘다.

그래 <동국세시기>에서는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 꼽고, 서북지방의 것이 최고라 하였다.


이 작은 틈새를 일본인이 그대로 넘길리 만무하다.

1910년대 말에 서울에 대리점을 개설했던 조미료회사 味の素아지모도는 1927년에 평양 대동문 근처에 냉면집을 직접 열었다. 본래 평양냉면의 육수는 동치미를 익히면서 삶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덩어리를 그 속에 넣어서 만들어냈다.

당연히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맛이 동치미 국물에 녹아드니 그 맛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맛을 아지노모도의 글루탐산이 대신하게 되었다.


가을 메밀이 냉면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자, 아예 메밀가루를 넣지 않고 다른 전분으로 질긴 국수를 만든 다음에 메밀국수 처럼 색만 들이는 냉면도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서 지금 까지도 서울 사람들은 메밀국수가 고무줄처럼 질겨야 진짜 냉면이라고 착각을 한다.


어찌되었든 평양고보 출신인 소설가 김남천님의 말처럼 실향민들은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의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끊는 향수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우선 냉면이었을것이다.


한국전쟁을 지나며 그 많던 서울시내의 냉면집들은 사라지고 냉면시장이 재편된것은 실향민들에의해서다.

중구 주교동 우래옥은 고 장원일씨가 1946년 평양에서 월남해 한옥 한 채로 시작한 것이 다섯 채로 늘었고, 88년 현재의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했다.

한국전쟁 전에 문을 열었다가 전쟁 통에 문을 닫았다 곧 다시 개업을 하면서 원래 이름 ‘서북관’을 ‘우래옥’으로 바꿨다.

가게 이름 又來屋우래옥도 다시 돌아 왔다는 뜻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교사의 길을 접고 아버지의 길을 이은 아들 진건씨는 미국에도 분점을 5개나 열었다.

그의 아들 근한(64)씨는 서울 대치동 분점을 운영하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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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에 들어서면 코끝으로 먼저 진한 고기향이 느껴지고 냉면국물을 마셔보면 진하고 깊은 맛의 고기 육향이 올라오는 듯하다.

보통 평양냉면이 맛보여주는 밋밋하고 심심한 맛이 아닌 진한 풍미를 가진 육수 맛이라 할 수 있다.

진한 듯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까지 그릇속에 담겨진 육수는 누구나 먹으면 반할 수 밖에 없는 맛을 만들어 내놓은 결정체인 것 같다.

한우의 신선한 정육을 매일 들여다가 큰 솥에 늘 삶아 단물이 다 우러나면 차게 식혀 기름을 말끔하게 건져내고 다시 간을 해 냉장해 두었다가 진국 그대로 국수를 말아낸다는 우래옥의 전통육수는 그야말로 물냉면을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겐 아주 안성맞춤입니다.

오리지날 옥류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월남식 즉 서울 물냉면으로 약간은 개조된 그런 맛이다.

면은 구수한 메밀향이 느껴진다.

서울지역에 생겨난 다수의 냉면집은 대부분 우래옥 냉면을 경쟁으로 삼아 면을 만들어냈다.

메밀로만 만든 순면을 시키거나, 고기를 빼고 그 돈값만큼 면을 더 얹어내는 ‘민자’도 좋다.

힘들이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데 입속으로 넘김에 있어 부드럽다.

입안가득 퍼지는 진한 육향이 느껴지는 육수와, 면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메밀의 향이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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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값이 비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인기는 꾸준하다.

을지로 통의 우래옥이 본점이고 음식 맛은 분점과 다르다.


이외에도 화두로 올릴만한 몇집을 소개 하자면 평양냉면의 전범이자, 첫번째로 떠올리는 우래옥보다 2년 앞서 1944년 북한 출신 3형제가 서울 종로에서 음식점 문을 연 지금의 인천 경인면옥의 전신인 종로평양냉면옥지점이 있지만 본점은 없어지고 세째가 이어가는 인천에서 그 명맥은 이어가고 있고 의정부 평양면옥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월남한 고 홍영남씨가 70년 경기 연천군 전곡읍에서 살림집에다 탁자 몇개 놓고 냉면집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87년 의정부의 현 위치로 가게를 옮긴 뒤 아들 진권씨가 가업을 물려받았고, 홍씨의 두 여동생도 서울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마포구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도 해방 직후 평양 부근 안주에서 월남한 김인주씨가 대구 등지의 냉면집에서 일하며 비법을 연구한 뒤 71년 문을 연 냉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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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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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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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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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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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지금도 온 나라에 냉면집 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꽁꽁 얼은 김칫독을 뚫고 살얼음이 뜬 진장 김칫국에다 한 箸저 두 저 풀어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별건곤 제24호)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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