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흥에는 없는 함흥냉면
흔히들 우리나라의 3대 냉면하면 평양, 함흥, 진주를 꼽는다.
이북음식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구분짓는 일반적인 구별법은 평양냉면은 물냉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 정도인데 크게 틀린말은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원래는 평양냉면도 비벼서 먹고 함흥냉면에도 물냉면이 있다
사실 메밀면과 육수의 조화, 그리고 고명에 중심을 두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을 같은 범주에 붙이고 함흥냉면은 별도로 봐주어야 한다.
오히려 메밀면을 사용하고 김치국물에 말아먹는 막국수를 그 둘에 같이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함흥냉면은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하는 음식이다.
물론 이북 출신 원로들과 새터민 쉼터의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함흥냉면이라는 음식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1985년 북한에서 간행된 사회주의 생활문화백과가 꼽은 이름난 조선 음식에도 평양랭면은 있지만 함흥냉면은 없다.
함경도의 특산음식으로 감자농마국수와 함흥국수가 메밀가루와 감자농마(녹말)를 5대1 비율로 반죽한다고 나올 뿐이다.
함흥국수는 양념으로 들깨가루를 치고 들기름을 졸여서 두는 것이 특징이라는 내용으로 볼 때 함흥냉면과는 다른 음식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함흥냉면과 비슷한 음식으로는 회국수가 수록되어 있다.
함흥냉면은 함경도 실향민들이 명성 높은 평양냉면과 비교하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음식에 붙인 이름일것이라고 추정된다.
냉면은 애초 한국전쟁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끼리 고향의 향토음식을 맛보면서 향수를 달래고 유대를 강화하는 먹을거리로서의 의미가 더욱 컸다.
평양냉면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서울 장안 4대 면옥이라 불리는 우래옥, 을지면옥, 평양면옥, 필동면옥이 그랬고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의 흥남집, 오장동 함흥냉면, 신창면옥, 그리고 종로4가 시계방 골목의 곰보냉면, 부산의 원산면옥, 대구의 대동면옥, 강산면옥, 대전의 사리원면옥 등 인척 관계로 맺어지며 계보를 쌓아가는 함흥냉면 패밀리의 뿌리가 형성되고 또 이들 식당에서 실력을 닦은 조리 장인들이 전국 각지로 퍼져 1960~70년대 잇따라 가게를 열면서 냉면은 전국화로 이어졌다.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820년대.
하지만 1890년대 이후 들어서야 강원도와 함경도·평안도 등의 산간지로 재배 면적을 넓혀나갔다.
한반도의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병해충도 적어)로 이 감자에 주목한 일제는 감자재배(남부는 고구마)에 적극적이었다.
감자의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국수 만들기는 쉽지 않다.
면을 뽑으려면 전분을 따로 추출하여야 하는데, 감자를 물에 넣어 삭히고 이를 갈아 비지(감자의 섬유질)를 분리한 뒤, 물속의 전분을 내려 굳히고 이를 말려 분쇄한 후 이 전분으로 반죽을 하고 국수틀에 눌러야 하는 번잡한 일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중국당면 외에는 어디에서도 감자전분 국수를 잘 볼 수 없는 이유다.
요즘 감자 하면 강원도를 떠올리지만, 분단 이전만 하더라도 함경도가 주요 산지였다.
1920년대 들면서 일제는 감자전분 생산기지로 함경도, 특히 개마고원 지역을 선정했다.
1937년에 나무를 날으기 위해 개통된 혜산선은 함흥과 원산, 북으로는 청진을 이으며 감자전분도 운송을 하게 된다.
1930년대에 함흥에는 기계화된 국수틀이 고안되어 농마국수가 본격적으로 먹거리로 등장한다.
농마국수는 면발이 희고 가늘며 질기다.
감자녹말에 백반물과 뜨거운 물을 적당하게 넣은 다음 익반죽해 국수를 만들어 놓는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삶은 다음 고기는 얇게 썰어 양념에 무치고, 국물은 기름기를 걷어내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서 육수를 만든다.
다진 파와 마늘에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간장을 육수와 섞어서 걸쭉하게 국수 양념장을 만든다.
물기를 뺀 가늘고 흰 감자전분국수 면발에 양념을 넣어서 버무려 담은 다음, 무김치(또는 배추김치)와 고기, 오이를 얹어서 모양을 내고 실고추와 달걀지단으로 고명을 한다.
그리고 육수는 따로 그릇에 담아낸다.
흰 감자전분면발에 식초로 삭힌 고명은 함경도 근해에서 많이 잡혔던 홍어, 가자미, 명태 등을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으로 비빔을 한 후 가자미회를 얹은 것이 회국수다.
이 농마국수와 회국수를 들고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이 모인곳은 크게 서울중부시장 주변 오장동과 속초.
그래 자연스레 서울식으로 변한 오장동 함흥냉면은 국물도 사라지고 달달해지고 면발도 부드러워졌다.
함흥냉면 쫄깃하고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 면발에 매운 양념(다대기)과 회(꾸미)를 얹어 비벼먹는다.
온몸에 진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올 정도로 혀가 얼얼한 양념에 참기름 설탕 식초 겨자도 살짝 곁들인다.
회는 회는 거의 가오리나 간재미를 쓰는데(국내산 홍어는 타산이 안 맞고 수입은 냉면과 어울리지 않는 맛이라) 오도독오도독 씹혀야 제 맛이다.
속초 등에선 동해안에서 잡힌 명태나 가재미를 꾸미로 올리기도 한다.
식초, 겨자를 넣고 설탕 반스푼, 참기름까지 첨가시켜 먹으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서울중구 오장동 냉면집들.
냉면집들은 70, 80대의 노인들끼리도 삼삼오오 찾아오고, 어린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가 같이 식사를 하는 풍경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오장동 함흥냉면
55년 이래 쫄깃쫄깃한 면발과 독특한 육수 맛으로 함흥냉면의 원조란평가를 받았았다.
월남한 것은 1.4후퇴 직전인 50년 12월.
경남 거제에서 잠시 피난 생활을 하다 54년에 상경, 복개되기 전의 청계천 평화시장 부근에서 천막을 치고 그동안 고향에서 가정용 식단의 하나로 만들어 오던 냉면을 상업용으로 개발, 시중에 판매한 것이 지금의 오장동 함흥냉면의 시작이 됐다.
이듬해 중구 오장동의 현 위치로 장소를 옮겨 성업.
냉면 맛이 산뜻하고 깔끔하다.
수십 년 동안 맛의 변화가 없을뿐더러 카운터를 딸이 이어받은 것 이외에는 주방과 홀 담당들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체인점은 물론 분점낼 생각도 안 한다.
가느다란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고무줄처럼 질기다.
맛은 여성스럽고 양이 좀 적다.
간재미 회를 쓰는 회냉면이 달콤하면서 매운 맛이 일품이다.
흥남집
오장동에 현존하는 함흥냉면집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1953년(속초가 2년더 빠르다)
면발이 덜 세련된 느낌으로 투박하면서 거칠어 남성스럽다.
냉면은 참기름이 많이 들어가 고소한 맛이 특징이고 메뉴중에 회와 고기가 다 들어간 섞임냉면이 특색 있다.
신림동 분점에 이어 최근 잠실점을 오픈했지만 냉면의 특성상 본점과 맛이 똑같지는 않다.
여담으로 흥남 출신인 창업자의 손녀딸인 현재 주인에 얽힌 모자상 화폐일화가 있다.
모자상 화폐는 1962년 5월 16일 발행되었으나 화폐개혁으로 단 25일간 유통된 최단명 화폐인데 역사적 인물이 아닌 그야말로 보통사람인 한복 입은 여인과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그 여인은 당시 조폐공사에 다니다 결혼으로 퇴직한 뒤 조폐공사 도안실장이 덕수궁으로 나오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화폐도안으로 이어졌다.
이 모자가 바로 흥남집 여사장과 그 아들이다.
신창면옥
오장동 함흥냉면에서 냉면 기술을 익힌 1세대 주방장이 1980년 신창면옥을 열면서 지금의 오장동냉면 거리가 되었다.
신창면옥의 육수는 고기 육수의 탁한 색을 띤다.
양념맛이 좋으나 면발 반죽에 전분 외의 첨가물이 많아 특유의 식감과는 거리가 좀 있다.
허영만 <식객>에 함흥냉면 편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
평택 장안동으로 이전했다.
명동함흥면옥
명동은 함흥냉면의 메카인 오장동에 비하면변방취급을 받지만 이 집은 수준급 냉면을 낸다.
오장동의 양대산맥인 오장동함흥냉면 흥남집과 함께 3대 함흥냉면으로 꼽힌다.
냉면은 오장동함흥냉면 식의 산뜻한 맛이다.
서비스도 그만.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육수를 따라준다.
맵지 않고 깔끔하다
명동함흥면옥의 함흥냉면은 매콤한 양념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먼저 향긋하게 퍼졌다. 고명으로 올라온 간재미회도 푸짐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 덕분일까
처음에 밝혔듯 이곳 냉면은 맵지 않고 깔끔하면서 고명과 조화가 잘 어우러진다. 질기지 않으면서 적당한 굵기를 갖춘 면도 괜찮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무난하다’는 거다. 분명 맛있는데 다른 가게 냉면에 비해 특별히 기억 남는 게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명동함흥면옥은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누구나 거부감 없이 먹을 만한 함흥냉면을 내놓는 집이다. 함흥냉면은 먹고 싶은데, 지나치게 맵고 자극적인 양념 때문에 속이 걱정된다면 부담 없이 명동함흥면옥을 찾아보자. 깔끔한 함흥냉면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종로의 곰보냉면
이 집은 창업주였던 실향민 한태은 씨가 25년, 현재의 배정지 대표가 이어받아 25년을 운영, 지금의 50년 역사에 이른다.
창업자가 얼굴에 곰보(천연두로 남는 흉터)가 있어서 붙여진 상호부터 독특한데 처음 문을 연 곳은 지금의 세운상가 옆 유서깊은 예지동 ‘시계골목’ 깊숙한 곳이었다.
이집도 높이 평가되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양념이 지나치게 달다 생각한다.
이집에 가면 오히려 만두에 마음이 더 가게된다
평양·함흥 냉면으로 일컫는 냉면의 원형인 밀국수에 대한 첫 언급은 張維장유선생의 谿谷集계곡집의 紫漿冷麵자장냉면이라는 시 한수로 이북식 냉면이야기를 마무리한다.
紫漿霞色映 자장하색영
玉紛雪花勻 옥분설화균
入箸香生齒 입저향생치
添衣冷徹身 첨의냉철신
客愁從此破 객수종차파
노을빛 영롱한 자줏빛 육수
옥 가루 눈꽃이 골고루 내려 배었어라
입 속에서 우러나는 향긋한 미각
몸이 갑자기 서늘해져 옷을 끼어 입었도다
나그네 시름은 이제 사라지노라
#함흥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