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닮은 계절의 맛, 용금옥의 鰍湯추탕
秋추 8월 그믐께 서늘 바람 나고 더위 물너간 바로 끗치요.
녀름 내 휴업했다가 이 가을철이 잡어 들어오자 다시 개업한 바로 첫날이엇슴니다.
가을 오면 아마 이 추탕을 퍽이나 그리워하는 모양 갓슴니다.
-1927년 10월 1일자 별건곤
여름의 기운이 가시고 찬 바람이 불기시작하면 생각나는 음식중 하나가 추어탕이다.
글자 그대로 鰍魚추어의 미꾸라지 추(鰍=鰌)자는 가을 추秋자 앞에 고기 어魚가 붙어 가을을 대표하는 고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요맘때쯤 우리 조상들은 지천에 흔한 미꾸라지를 푹 고아 몸을 보했다.
쉽게 구할수 있는 식재료였던 미꾸라지로 끓인 추탕은 서민들에게 단백질과 칼슘을 손쉽게 보충해주는 고마운 보양식이었다.
너무도 서민적인 음식이었기때문에 오래전부터 먹어왔음에도 고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미꾸라지와 두부 몇 모를 같이 넣고 끓이면 미꾸라지는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기어드는데, 이것을 썰어 지진 뒤에 끓인 탕이라한다.
이 탕을 서울 성균관 근처에 살던, 소를 도살하거나 쇠고기를 파는 泮人반인들이 즐겼다.
단지 1850년대(추정)에 五洲오주 李圭景이규경이 엮은 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19세기 60권 60책에 총 1417 항목의 백과사전 형식의 책)의 人事篇인사편 服食類복식류에 鰍豆腐湯추두부탕이 등장하는데 이 방법은 중국의 貂蟬湯圓초선탕원이란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에 비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고 있는 조리방식은 방식은 남도방식의 내용이다
미꾸라지를 갈아서 넣는 남도식 중에서 경상도식은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어 솎음배추, 토란대, 고사리, 싸리버섯 등을 넣어 끓이고, 전라도식은 경상도식처럼 끓이면서 된장·시래기·들깨즙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뒤 고추를 갈아 넣어 매운맛을 낸다.
미꾸라지를 주재료로 한 것은 같지만 지방마다 다른 조리법을 사용했는데 크게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느냐, 삶아서 갈아서 넣느서울식 추어탕이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사골과 내장을 끓인 고기 국물에 끓여 내고, 이름도 鰍湯추탕이라 다르게 불러왔다.
朝鮮無雙新式料 理製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그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밋구리를 물을 치고 소금을 조금 치면 대단히 요동을 할 것이니 2분 동안만 두었다가 맹물을 두어 번 부어 해감을 다 토하도록 한 연후에 맹물에 업진이나 사태를 녹도록 끓인 후에 고기는 꺼내고 식혀서 양밀가루를 걸쭉하게 풀고 두부를 갸름하고 납작하게 썰고 생강을 껍질을 벗겨 대강 다지고 고추씨를 빼고 다지고 파도 다지고 고비나 표고나 송이버섯을 굵게 찢어 넣고 곱창이나 양도 삶아 썰어 넣고 밀가루 푼데 모두 넣어 휘저어가며 눋지 않게 끓거든 밋구리를 급히 쏟아 넣고 뚜껑을 얼른 닫았다 가 다시 열라.
튀어나오며 죽는 것이 좋지 않느니라.
부드 럽게 저어가며 밋구리가 다 익거든 계란을 몇 개든지 개여 풀고 떠내어 먹을 때 후춧가루와 계피가루를 치고 국수를 말아 먹으면 좋으니라
생소하지만 갈지 않은 통추어를 사용하는 서울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곳은 3곳정도로 압축해 왔었다.
1926년 문을 연 형제추어탕
1932년 문을 연 용금옥
1933년 문을 연 곰보추탕
형제추탕은 선산 김씨 다섯 형제들이 동대문 밖 신설동 경마장 옆에 문을 연 집이었다.
처음에는 이름 없이 막걸리와 추탕을 팔았는데 주위에서 형제추탕집이라고 부르자 1930년대 유명추탕 형제주점이라는 간판을 달게 됐다고 한다.
형제추탕은 196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가 형제 중 막내가 사라져가는 추탕을 계승하기 위해 1980년대 말 문을 다시 열었고 지금은 평창동으로 이전해 형제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곰보추탕은 형제추탕에서 일하던 정부봉씨가 1930년대 초 독립해서 낸 가게인데 역시 처음에는 간판 없이 추탕을 팔았다.
주인의 얼굴 때문에 손님들이 곰보추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집은 안암교 근처에서 80년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최근 문을 닫았다.
오늘 소개할 집은 종로통의 용금옥이다.
서울시청 신청사 뒤 중구 다동 먹자골목에서 85년을 이어가다며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식추어탕 전문점.
셋째며느리 한정자 씨가 운영하는 원조용금옥은 종로구 통인동에 있다.
지금도 50년 넘는 단골들이 수두룩하다.
창업자 고 홍기녀 씨의 큰손자며느리 오지현 씨는 이야기한다.
남도식은 뼈를 갈아 넣기 때문에 육수가 거무스레하고, 서울식은 통 미꾸라지를 쓰므로 불그스레하고 맛이 담백하다.
우리 집은 쇠고기와 곱창국물을 밤새 우려내 쓴다.
여기에 미꾸라지 으깬 살과 두부, 유부, 목이버섯, 느타리버섯, 대파, 양파, 호박(봄여름), 동이(가을겨울), 청양고추 등을 넣는다.
미꾸라지는 전북 부안에서 양식된 것을 쓴다.
옛날엔 끓는 물에 두부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넣기도 했지만, 요즘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요동을 쳐서 두부가 산산조각나기 때문이다
1973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제3차 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단의 박성철 부주석이 남한대표단에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
라고 물은 에피소드로 유명한집이다.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도 해방 후 서울을 찾아 용금옥에서 항일투쟁 동료였다는 남한의 이용상을 만나 추탕에 술을 마시며 엉엉 울었다고도 한다.
수주 변영로, 월탄 박종화, 공초 오상순, 팔봉 김기진, 정지용, 구상 선생 등이 단골이었다.
1991년에는 용금옥시대(고 이용상)란 단행본까지 발간될 정도로 정치인, 기자들도 무수히 드나들었다.
대선후보였던 유석 조병옥 박사는 용금옥에서 추탕을 먹고 수술 차 미국으로 갔다가 현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유석의 시신이 돌아오던 날, 홍기녀 씨는 용금옥의 문을 닫아걸고
(미국으로 수술하러 가기 전)추탕을 두 그릇이나 드시던 분이 그렇게 돌아가신 건 야로’가 있다
며 통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남북 화해시기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이틀 연속 용금옥에서 추탕을 먹은 일화도 회자된다.
다행히 서울시는 ‘2017 노포 등 관광콘텐츠 제작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울소재 40년 이상 된 가게가 발굴 대상으로 25개 자치구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노포 발굴작업을 진행했다.
곰보추탕이 사라져 아쉬움이 남지만 사라져가는 우리 서민문화를 이제라도 돌아본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름내내 자라 살이 통통오른 가을추어의 맛을 남도식 추어탕이 아닌 서울식 추탕의 老鋪노포를 찾아보는것도 이 가을을 기분 좋게 즐기는 모습이될것같다.
용금옥은 2017 미슐렝 서울가이드에도 올라있다.
미원 깡통에 보관된 외상 전표를 모두 태워버리라
- 창업주 고 신석승님의 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