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에서 이갈비로 막걸리주점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1939년 南蠻書店남만서점에서 간행한 김광균시인의 瓦斯燈와사등(석탄 가스를 도관에 흐르게 하여 불을 켜는 가스등)
20년이 지나 종로 피맛골 한켠에 같은 이름의 막걸리 주점이 자리를 잡았다.
오랜전 단골들이라면 별칭이 전봇대집이라는것을 알고 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원래 가게안에 나무전봇대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이다.
사람들 손때가 켜켜히 쌓여 기름기 찐한 전봇대는 화재 위험에 뽑아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집이 알려진건 이외에도 영화에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묻어났기 때문이다.
오! 수정(문성근과 이은주가 술 먹는 장면을 촬영), 북촌방향등 막걸리 주점이 등장하는 곳에 이곳 있었다.
항상 손님들로 들끓는 집이지만 사실 이집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꼬불꼬불한 골목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왓던 손님들이 다른 분 손을 잡고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처음 오시는 분들도 가게 간판이 없는 것, 주문을 따로 받지 않는 것, 다 알고들 찾아오니 자리 앉으면 막걸리 양푼 한 사발과 이갈비(임연수구이)를 자연스레 내온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이라 이름이 중요한 집이 아니다.
벽에 그려진 낙서만 읽어도 며칠은 걸린다.
와사등을 찾는 이들은 기념으로 낙서 하나씩 한다.
추억을 만들고 확인하는 집이기도 하다.
낙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증거물이다.
요즘의 낙서는 사랑이란 말이 많이 들어갔다.
오래된 낙서엔 어김없이 민주와 자유, 독재타도, 살인마 전두환 등의 구호가 적혀있다.
오래전 와사등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가끔씩 중년의 손님들이 그때를 추억하며 모임을 갖곤 한다.
80년대 열개의 테이블은 이제 40개로 늘어 났다.
사라지는 피맛골의 모습속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서민들의 갈증해소 공간으로 오래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