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처음이 아니었다. 네 명의 아이들을 출산하면서 응급실을 거쳐갔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6년 전인가? 잠시 이석증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날 위해 응급실을 가게 되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오래 걸리는 응급실 시스템에 무료 의료 혜택의 부작용인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는 이들에겐 무료인 의료진료가 이리 비싼거였다. 응급실에 앉아 호명을 기다리면서 보이는 내용을 따라 눈으로 읽어 본다. 보험이 있던 없던 모든 응급 의료 진료는 제공될 것이나 그 보험에 따라 내야 하는 돈의 액수가 참 다르다고 적혀있다.
단기 여행을 와서 아프게 되면, 잠시 응급실을 들리는 것만으로도 $1160불의 진료비를 내야 하고, 검사가 필요할 시, 입원 시, 응급차를 이용할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얼마인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을 뿐이다.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오전 9시 응급실 도착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 대기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곳에 도착해, Check- in을 했다.
병원 팔찌를 팔에 매고 내 이름이 호명되자 check-in을 했던 booth에서 다시 간단한 문진이 이뤄진다.
혈압과 심박수 그리고 체온을 재고 응급실 방문 이유를 설명한다. 이후 다시 대기.
자리가 없어서 서서 기다리는 나의 다리가 점점 힘들어질 때쯤 간호사가 와서 내 이름과 다른 환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안쪽으로 인도한다.
복도에 있는 칸막이가 설치된 대기 의자에 앉아 또 끝을 알 수 없는 대기를 한다.
오전 10시 44분
2차 대기 공간에서 피를 뽑아감
오전 10시 50분
3차 대기 장소 병실로 옮겨서 소변 검사를 위한 소변 채취 시행 코로나 검사를 한다며 코 swap을 해 감
오후 12시 25분
응급실 담당 의사를 만나 문진을 함
침대에 누워 아픈 배 쪽 부분을 검사함
CT를 찍어 확인하자는 의사 소견을 받고 간호사의 인도하에 4차 대기 장소로 이동
오후 1시 16분
응급실 담당 간호사가 와서 팔에 IV를 꽂아줌
이 날은 응급실이 바쁘지 않아 CT 촬영까지 2시간 정도 대기하면 될 거 같다는 답을 받음
IV 는 CT scan 검사를 위해 필요한 절차었다 오후 3시 30분
CT를 찍음. 다시 대기
오후 4시 30분
응급실 담당 의사를 만남.
맹장염을 진단받고 24시간 안으로 수술을 해야 해서 수술실 의사를 arrange 할 거라는 설명을 듣고 다시 대기
오후 5시 10분
수술팀이라며 의과대 학생들과 다시 문진
하루 종일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를 반복하는 중
(캐나다의 응급실 진료 기록은 종이에 적는다. 그리고 오는 사람마다 새로운 종이를 들고와서 같은 내용은 물어본다. 몇 명의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런 계속 반복해야 한다)
아픈 배를 눌러보고 직접 확인함
수술 담당 의사랑 계획을 짜서 알려준다며 다시 대기
오후 6시 25분
수술을 담당할 의사를 만남
맹장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 계획 설명을 들음
수술 동의서에 싸인함
수술실 준비되면 다시 연락하겠다며 다시 대기
오후 7시
응급실 간호사가 와서 팔에 있는 IV에 항생제를 연결해 줌. 두 가지의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고 함.
수술 전 항생제 투여 시작 오후 7시 25분
30분 안에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며, 환자복으로 갈아입음
환복 후, 침대에 누워 pre-operation room으로 이동
Pre-operation room
코로나 검사를 받음- 오후에 일찍 시행한 코로나 검사 결과가 오래 걸려서 빨리 나오는 검사를 다시 시행함
마취과 의사를 만나서 마취에 관련된 설명을 듣고 튜브를 설치하기 때문에 수술 후, 목이 아플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음
수술 담당 의사를 만나 다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들음
수술 후 배우자에게 수술 담당의사가 전화를 하기 위한 서류를 확인함
코로나 음성 결과 확인 후,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수술실로 들어감
Recovery Room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겨우 떴는데 옆으로 보이는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가 넘어있었다.
내 소리를 듣고 온 간호사가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겨우 대답을 했다. 솔직히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아.... 물을 줄까? 물어봐서 yes 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오전 9시부터 물도 한 모금 못 마셨던지라 빨대를 따라 올라왔던 그 물이 정말이지 생명수 같은 기분까지 들었던 거 같다.
"여기가 recovery room이야?"라고 물어봤더니, 수술 후 내가 1시간을 잤단다.
눈을 뜬 시간이 10시가 넘었으니 수술은 9시가 조금 넘어 끝났나 보다.
병실에 공간이 확보되면 위로 올라간다고 했는데, 병실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1시 30분.. 그리고 응급실에 맡겨두었던 내 물건들(옷, 가방, 핸드폰)을 새벽 1시가 넘어서 받았다.
핸드폰 배터리가 12%로 밖에 남지 않아 신랑이랑 간단히 메시지만 주고받고 약기운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가 기계소리와 간호사들의 방문에 2시간마다 깼다.
이 날은 밤이 너무 길었다. 복강경 수술을 받은 덕에 뱃속은 가스로 가득 차 있는 기분, 배는 아픈데 가스는 나올 듯하고 힘은 못 주겠고 정말이지 대략 난감한 기분에 간호사들이 갖다 주는 진통제만 열심히 삼켜댔다.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수술 후
수술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수술 담당 의사를 만나고, 수술팀들을 다시 만난 후 큰 문제가 없으면 오늘 퇴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술 후, 아프지만 혼자 화장실도 잘 가는 중이었다.
오전 11시경 담당 간호사들이 와서 퇴원 수속을 도와주었다. 수술 부위 드레싱을 다시 갈아주고,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설명해 주고, 수술 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음식은 어떻게 먹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왔을 때, 병원을 다시 와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다량의 문서를 봉투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수술 담당 의사랑은 4주 뒤에 약속을 잡으라며, 사무실 연락처 정보도 넣어주었다.
그렇게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사무실에 전화해서 약속을 미리 잡고, 진통제를 먹으며 달콤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이쁜 우리 아이들과 만났다.
화요일 오후 설사가 시작되었다. 먹은 거라고는 Oat meal과 맑은 된장국 그리고 미역국 정도였다.
침대에 똑바로 눕기가 쉽지 않고, 누웠다 일어나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뒤로 젖혀지는 소파에서 쪽잠을 잤다.
화장실을 자주 가기 시작했고, 갈 때마다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날은 나름 조금씩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퇴원하는 날만 해도 나는 내일이면 더 몸이 좋아질 거라 당연히 기대했다. 설사는 그냥 쉬이 겪는 증상 중 하나라 믿으며.. 크게 힘주지 않아도 화장실을 갈 수 있음에 오히려 난 감사했었다.
월요일 하루 겪어 본 캐나다의 응급실 진료 대기 시간은 정말 대단했다. 나의 증상이 급성 맹장염으로 그 사이에 터졌다면 나는 과연 이곳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들은 여유 있었다.
다행히 터지지 않은 나의 상태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국의 시스템이랑도 너무 비교되는 이 대기 시간은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제공되는 무료 의료 시스템의 부작용인 것일까?
응급실에 들어가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고 그리고 퇴원을 하고 나왔던 그 모든 진료를 무료로 받아서 돈을 내지 않았다.
퇴원할 때 돈을 내지 않고 나올 수 있는 이 가벼움의 대가가 오랜 기다림이었던 걸까 싶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