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의외의 발견을 할 때, 책의 겉모습만 보고 제멋대로 한 추측이 빗나갈 때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즐거움을 맘껏 만끽하곤 한다. 책을 아껴 읽으며 자주 사색하고,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짧은 호흡을 뱉어낸다. 그렇게 읽은 책은 책장을 덮었을 때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는데, 이미 책을 읽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즐거움을 안겨준 책은 <눈으로 하는 작별>이었다. 제목과 겉표지만 보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뻔한 소설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웬걸. 이 책은 에세이였고,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는 몇몇 에피소드가 이질감을 던져 주었지만 상당히 흡족한 책이었다.
저자는 중화권에서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양한 이력을 가진 지식인이었고, 그런 내면은 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가 가진 지식을 고리타분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닌 일상과 맞물려 그려 냈기에 지식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알찬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시작과 말미에 부모님에 관한 글이 실려 있어 하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아버지에 관한 추억이 가득한 책의 끝부분은 저자의 절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부모님에 관한 추억과 죽음 앞에서 조금은 숙연해지고,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자의 경험이 구석구석이 녹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부분도 많았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 있는 에세이임에도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저자가 펼쳐놓은 삶의 면모가 낱낱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누가 더 많이 살았느냐, 어떠한 무게를 갖고 있느냐보다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동감을 얻어낼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 작가가 바로 룽잉타이였고, 나의 인생보다 앞서나간 것 같은 많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내게 맞는 이야기들도 넘쳐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 시들을 많이 인용하며 잔상들을 남겼는데, 고전 시가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해석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어떤 외로움은 곁에 얘기를 나눌 누군가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개 한 마리가 덜어줄 수도 있다.', '사랑이란 속절없이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반딧불이 밤하늘에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이유를 생각하면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조차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란 문장 앞에서 어떻게 나와 다르다고 떨쳐 버릴 수 있겠는가.
저자가 명쾌한 문장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글의 다양함 속에서 독자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시 구절도 문학적인 가치만 언급한다면 지루할 것이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자신의 경우만 얘기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적절히 섞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집어넣고, 생활 속의 자잘한 에피소드까지도 기꺼이 드러냈다. 어느 날은 문학과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써내다가도, 계란 하나 삶는 것에도 가정부에게 타박을 들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아들과의 대화나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되었다. 세대가 다르다는 차이를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 앞에서 버릇없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다가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앞에서는 괜히 찡해지기도 했다.
3부로 이야기가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소재의 글을 만나서인지 나름대로 정리한다는 것이 벅차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꼼꼼히 읽었음에도 평소와는 달리 느린 독서여서 그런지 많은 이야기가 뒤엉킨 기분까지 든다.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 일상의 자잘함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그 안에는 분명 나와 다른 것에 생경함을 느끼기도 했다. 저자가 살고 있는 타이베이의 풍경, 타이완의 문화,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도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걸러내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런 생경함 때문에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문화의 다름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일 뿐, 그것이 타인과 나를 연결해 주는 데 방해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중략)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라고 말했다. 저자가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더 다양한 단상들을 엮어볼 수 있을 것이다. 삶, 관계, 사랑, 이별, 죽음 등 그런 식으로 바라보다 보면 자신의 현재 위치는 물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보일지도 모른다. 꼭 이렇게 거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갇힌 시선에서 타인의 드러낸 시선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놓쳐 버리고 잊어 버렸던 기억들, 스치고 무시해 버렸던 추억들이 저자를 통해 생생히 되살아 날 것이다. 그로인해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존재감이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