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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Oct 12. 2020

‘지적 평민’으로 남아 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이은혜 <읽는 직업>


최근 일 년 동안 독서에 변화가 있었다. 읽은 책의 양이 늘어나면서 소소하게 남기던 리뷰가 현저히 줄었고, 늘 갈망했던 인문 책이 독서 목록에 꽤 많이 채워졌다. 나의 독서는 해외문학에 치우쳐져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면에는 인문학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아쉬움을 채우고자 나름대로 책장에 읽고 싶은 인문학 책을 꽤 꾸려놓았는데(저자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어떻게 이런 책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두었을까.’하는 감탄할 일이 잦은 요즘이다.), 만날 계기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나처럼 책을 좋아하면서 인문 책도 즐겨 읽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읽고 얘기하는 시간이 잦아질수록 인문 책의 매력을 통해 나름대로 독서의 균형이 맞춰졌다. 


그러니 사회과학에도 더 많은 역사학과 문학이 침투해 전문 분야(전공)가 지닌 편향성을 보충해주고, 문학도에게는 더 많은 역사와 철학, 사회학 등이 읽을거리로 주어져 먼 훗날 사람들이 자기 탓을 하며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이 역시 개인이 스스로 깨닫고 균형추를 맞춰야 할 몫이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183쪽


코로나 바이러스가 절정에 달해 모든 게 정지되고 아이들과 집에만 있었던 지난 3월에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건 독서였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깊은 밤 칼 세이건의『코스모스』를 한 챕터씩 읽었고, 이 책을 함께 읽던 이들과 마스크를 끼고 만나 얘기를 나눴던 시간들이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주었다. ‘편집자의 이력서’에서 저자는 밀란 쿤데라와 헤르만 브로흐의 말을 빌려 소설은 ‘자신만의 도덕’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20대의 대부분을 문학 위주로 읽어 온 나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네가 책 읽는 거 외에 한 게 뭐가 있느냐’라는 말까지 들어본 터라 소설이 주는 내 나름대로의 ‘도덕’ 관념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울컥할 뻔 했다. 편집자의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문, 사회, 과학서, 문학’을 두루두루 읽으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 평범한 독자로서 ‘편집자’에 ‘독자’를 대입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 동일할 것이다.


보통의 독자들은 책을 읽으려면 삶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고, 스스로 책 읽는 훈련을 해야 하며, 돈까지 지불해야 한다. 물론 책의 가격은 책이 담고 있는 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여타의 욕구는 언제나 지적 욕구를 쉽게 이긴다. 30쪽


한 온라인 서점에서는 매년 도서 구매 이력 통계를 내준다. 매년 책값으로 100만원~130만원을 지출하고 있는 나는 가격보다 그 책들이 나에게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더 생각해본다. 때론 보여주기 독서, 욕심이 앞선 소장에 집중할지라도 기꺼이 ‘삶의 일부를 잘라내’고, ‘책 읽는 훈련을’ 하며 ‘돈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그저 좋다. 그런 의미에서 15년 간 ‘독자, 저자, 편집자의 삶’을 살아온 저자가 풀어내는 시선과 사유는 다양한 의미에서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편집자라는 직업이 주는 생경한 세계, 독자로서의 고민, 저자로 한 발짝 내디딘 과정이 얽히고설켜 독자에게 벽을 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가온다. 변변찮은 내 삶의 궤적을 그 동안 읽어 온 책들로 되짚어 보고, 팍팍한 현실을 만나고 싶은 책과 앞으로 만날 책들로 채우며 조금의 기대를 덧입혀본다. 


독자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점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 그리하여 한 때 정신의 귀족이라 불렸던 작가들조차 독자로서는 ‘지적 평민’으로 남아 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즉 아무리 천재적인 독자일지라도 드넓은 책의 바다에서 지적 평민이란 꼬리표가 언제든 자신한테도 붙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76쪽


독서를 하면서 나는 꽤 일찍 ‘무지’를 인정할 시점을 만났다. ‘천재적인 독자’인 적이 없었기에 ‘지적 평민’이란 단어도 과분할 정도로 선인들이 남겨 놓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다. 그럼에도 궁금하면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언급된 책을 검색하고, 검색하던 책이 내 책장에 있는 것을 보며 기뻐하느라 나름 분주했다. 이제 그 분주함을 독서로 전환하려 한다. 발터 벤야민의『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를 구비해 두었고,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 조르주 페렉『인생사용법』,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늦여름』을 책장에서 꺼냈다. 이제 ‘책의 바다’를 기꺼이 유영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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