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은 아주 짧았다.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I Think I can." 미국의 유명한 동화 <꼬마 기차>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Yes, I can.' 보다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 말을 구분해서 가르치는 것이 미국적 사고방식의 근간인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처럼 "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한탄하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표면으로 드러내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첫 날 나선 산책에서 얻은 것은 그 단순하고도 뼈 있는 진리였다.
이처럼 저자의 수필을 읽다보면 간결한 문장 하나에 힘을 얻기도 하고, 유치한 개그에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며, 일상 속에 묻혀있는 자잘함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글의 소재로 삼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기 쉬운 참된 의미까지 발견해 주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 짧은 글귀로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타인의 이야기, 자신의 경험담으로 글을 진솔하게 만들어갔다. 어떠한 요소가 들어 있던지 간에 인간의 삶이 저변에 깔려 있어 생동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낯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공감대, 글로 남겨진 향연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저자의 에세이와 <영미시 산책> 시리즈를 이미 만나서 구성은 낯익었을지 모르나, 고인이 된 저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더 의의가 깊었다. 마치 오래전에 알고 지낸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움이 앞섰고, 편안한 분위기에 몸도 마음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공원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고, 타인이 날 봤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했을지라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책 내용에 따라 희로애락을 느꼈다. 한 줄의 시에 마음을 놔버리고 아파하기도 하고, 저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나의 좌우명을 삼아도 되겠다 싶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합쳐져 한 권의 책을 읽어냈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한 권의 책으로 결부시킬 수 없는 더 귀중한 것들이었다.
저자의 <영미시 산책>에 삽화를 그려주었던 화백 김점선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분명 이 책의 삽화도 그 분이 그려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글과 잘 어우러진 삽화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저자와 같은 해에 돌아가신 김전선 화백이 떠올랐고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중략)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라던 저자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글 속에서 만나는 삶에 대한 애착과 불안감, 감사를 마주하면서 저자를 기억하는 수많은 친구들과 독자들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정판의 혜택으로 저자의 육성과 창작 추모곡이 있는 CD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저자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이 갖기도 했다. 저자가 읊어준 에밀리 E. 디킨슨의 <만약 내가······>란 시는 내 곁에서 직접 낭송해주고 있는 것 같아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더 이상 다른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는 저자의 일생을 보면서 저렇게 치열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뜨겁게 간직한 모습을 통해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나의 현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앞으로 같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얼마든지 저자가 흩뿌려 놓은 글로 다시 만날 수 있고, 그녀가 남긴 참 된 의미를 깨달아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봄날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자연 속에서 독서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나의 힘든 마음을 위로하여 준 것 같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어디에 있든지 늘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분명 고인은 더 좋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