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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Aug 04. 2024

발차기의 설렘과 좌절

학생 같았던 강습 첫 날!

 드디어 수영장에 가는 날이다! 9시 30분 강습이라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그야말로 집을 버리고 뛰쳐나와야 겨우 강습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준비물도 준비물이지만 수영복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겨드랑이 제모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왁싱은 좀 귀찮아서 집에서 대충 처리하기로 했다. 남편의 면도기를 쓸까 하다가 써 본 적도 없고, 좀 무서워서 눈썹 정리 칼로 정리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어제 미리 챙겨둔 준비물을 다시 한 번 챙겼다.      


입구: 회원카드

샤워장: 스포츠 타월, 수건, 바디 워시, 바디 타월, 샴푸, 헤어 에센스, 폼 클렌징

수영장: 수영복, 수모, 수경

나올 때 탈의실: 스킨케어 및 화장품, 헤어 드라이기     


  아침에 여유 없이 강습 시간에 빠듯하게 맞춰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 지인 A와 나는 강습 전에 미리 수영장에 가서 등록카드도 만들고, 탈의실 위치와 어떻게 수영장에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을 들었다. 회원카드 바코드를 안내 장소에서 찍으면 매일 다른 사물함 번호표가 나온다. 그럼 신발을 신고 들어가서 쪼글쪼글한 줄이 달린 열쇠를 뽑아 그 번호에 맞는 사물함을 열어 옷을 보관하면 된다. 그리고 수영용품을 들고 들어가 샤워를 한 다음 수영복으로 탈의를 한 뒤 문을 통과하면 수영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들어갔는데 200개가 넘는 사물함과 헐벗은 몸으로 배회하고 많은 사람들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티를 내지는 않았다. 설명을 듣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오는데 엄청 거대한 공간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 도시에 사는 동안 수영장에 한 번도 안 와봤고, 나름 깔끔하고 커다란 크기에 놀랐다. 이 공간에 내가 속해 수영을 배운다는 게 신기하면서 들떴다. 그랬으니 수영장에 가는 날 아침은 뭔가 오랜만에 만나보는 활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미리 챙겨놓은 준비물을 챙기니 가방이 두 개가 되었다. 가방 두 개를 쫄래쫄래 들고 같은 아파트 A가 사는 동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그렇게 만나서 수영장으로 출발하면서 뭔가 신나서 의식의 흐름대로 막 떠들면서 갔다. 하지만 수영장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당황하다 겨우겨우 또 다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A와 나는 서로의 알몸을 본 적이 없어서 부끄러웠지만 내가 A를 안심 시켰다.     


A: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해서 부끄러운데요?

나: 저도 마찬가지이긴한데, 걱정마세요.

A: 왜요?

나: 저 안경 벗으면 심봉사나 다름없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샤워장이나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A: 그럼 일단 오늘은 내외하고, 수영복 입고 만나요!

나: 네! 수영장 안에서 만나요!     


  A와 나의 사물함 번호가 멀어서 같은 공간에서 민망하게 옷을 벗고 마주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습기가 가득한 샤워장 안을 안경을 쓰고 갈 수가 없어서 안경을 벗으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더듬더듬 샤워장으로 들어갔는데 맙소사! 바로 샤워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기다려야 했다. 강습을 하기 위해 샤워하는 사람과 강습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 사람들이 겹쳐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뭔가 부끄러워서 수영가방을 끌어안고 샤워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분이 나오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알려주셨다. 샤워장 선반에 가방을 올려놓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놓고 샤워를 하는데 안경이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그렇다고 도수가 있는 수경을 쓰고 샤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어설프게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장의 최대 난이도는 수영복 입기였다. 미리 수영을 다닌 B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보긴 했지만 수영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물어보질 않았다. 옆에 사람들이 어떻게 입는지 볼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집에서도 미리 수영복을 입어봤지만 물기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쑥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습기와 물기가 가득한 샤워장 안이었고, 젖은 몸에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데 수영복이 젖은 상태에서 입어야 하는지, 마른 상태에서 입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아기 바디슈트 같은 마른 수영복에 내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런데도 수영복이 도무지 올라오지 않았다. 이러다 수영복 끈이 끊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기를 부리며 입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요령이 없는 상태라 한참을 실랑이를 한 뒤에 겨우 수영복을 입고, 수영모를 쓰고 수영가방을 들고 나왔을 땐 이미 기력이 쇠진한 상태였다. 수영복 입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오늘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첫 날이라 심한 걸 시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껴둔 에너지를 벌써 소진해 버린 것 같았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서 수경을 미리 끼고 수영장으로 갔더니 A가 미리 나와 있었다. 탈의실에서 내외하긴 했지만 수영복도 민망하긴 마찬가지라 여기저기 서 있는 사람들 틈 중에서 구석으로 가서 서 있었다. 수영복을 입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자 A도 그랬다면서 내 수영모 방향이 틀렸다며 방향을 바꿔주고, 엉킨 수영복 끈도 정리해 주었다. INFP 성향을 가진 나는 A가 없었다면 수영에 당첨되었다고 해도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돈독한 돌봄을 거친 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준비운동을 했다. 수영장 바깥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던 이유가 준비운동 때문이었다. 도무지 강사님의 동작이 보이지 않아 수경을 쓰고 준비운동을 했다. 국민체조랑 거의 비슷해서 따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준비운동이 끝난 뒤 초급반 팻말이 적힌 레인에 서 있으니 남자 강사님이 오셔서 출석을 불렀다. 강사님의 아슬아슬한 수영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출석을 부른 뒤에 긴 수트를 다시 입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강습자가 총 30명이었는데 첫 날이라 그런지 출석률이 높았다. 여자분들이 훨씬 많았고, 연령대는 다양했다. 출석을 다 부른 뒤에는 발차기를 할 거라 수영장 바깥쪽 바닥에 나란히 앉으라고 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성인들이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란히 앉아 발에 물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신입생 마냥 뭘 할 줄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 하며, 강사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학생이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발차기가 시작되었는데, 발목을 쭉 편 채로 허벅지 힘으로 차야했다. 처음에는 깔깔거리며 발차기를 시작했지만 1분도 안 되어서 엄청 힘든 동작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강사님이 “그만”이라는 말을 외칠 때가 얼마나 행복하던지! 강습 첫 날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발차기 하느라 여념이 없어 우리 등 뒤로 생존 수영을 배우러 온 초등학생 수십 명이 지나가는데도 부끄러워할 틈이 없었다. 괜한 자격지심으로 ‘저 초등학생들이 발차기 하고 있는 어른들을 보며 웃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하다가도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발차기를 했다. 그렇게 몇 차례 발차기를 하자 다리가 뻐근해졌는데 이번에는 엎드려서 발차기를 했다. 그래서 바닥에 상반신을 걸친 채 똑같이 발목을 편 채로 발차기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물소리가 찰랑찰랑 나더니 점점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이 빠져 있으면 아직 1분이 안 지났다는 강사님 말에 힘을 쥐어짜서 발차기를 했다.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고, 이상하게 숨도 찼다. 그리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 ‘음파’라는 숨쉬기 동작을 배웠다. 물속에 들어가 코로 ‘음’을 하며 숨을 쉬고, 바깥으로 올라왔을 때 ‘파’하고 숨을 뱉는 동작인데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좀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가는 것까지 배웠는데, 물에 뜬다는 신기함도 잠시 다리가 너무 아파서 중간에 여러 번 쉬어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마치 발차기를 하는듯 숨이 가빠 오고, 다리가 아파 글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진다.      


  그렇게 첫날의 설렘을 가진 첫 수영 강습을 마쳤다. 샤워실에서 또 줄을 서서 어찌저찌 힘겹게 옷을 벗고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릴 때부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차장으로 가는 계단이 어찌나 높게 느껴지던지 오랜만에 다리 통증을 온전히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4회 수영, 자유 수영 2회로 이뤄지는 이 과정에서 몇 번이나 수영을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수영을 시작했다는 그 안도감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강습 첫 날, A가 쓰고 있던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이 내가 사고 싶었던 것들이라 빌려 써보았다. 그리고 나름 색이 괜찮아서 온라인으로 부랴부랴 구입한 화장품. 항상 썬크림과 BB크림만 발랐는데 파운데이션은 정말 처음 구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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