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중고거래!
수영강습을 위해 당연히 준비물이 필요했다. 일단 수영복, 수경이 급했다. 안경을 벗으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나에게 도수 있는 수경은 필수였다. 먼저 안경점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도수 수경을 주문하고, 수영복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려 했지만 도무지 사이즈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수영을 같이 하게 된 지인 A와 직접 입어보고 수영복을 구입하기로 하고 날을 잡았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보내고 집을 던져둔 채 스포츠 매장이 있는 번화가로 갔다. 하지만 매장 문을 채 닫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다. 들어가자마자 “실내 수영복이 있나요?” 라고 물었지만 바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몇 군데 돌아다니고, 쇼핑몰에 전화까지 걸어 보았지만 실내 수영복을 판매하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멘탈이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인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해서 수영복을 구경도 못했으니 밥이나 함께 먹자고. 집을 던져두고 바로 외출한 터라 나와 A는 배가 몹시 고팠다. 그렇게 통화로 대충 메뉴를 정하고 집 근처로 돌아가는 중에 B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동생네로 가자고. 동생에게 수영복이 많으니 일단 거기서 사이즈를 재본 뒤에 안 되면 온라인으로 주문하라고. 그런 다음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와 A는 배가 고팠지만 수영복에 대한 특별한 대안이 없는 터라 민망하긴 하지만 일단 B의 동생네로 갔다. 그리고 신세계를 발견했다.
B와 B의 동생은 나와 A보다 훨씬 먼저 수영을 시작했다. 그래서 수영복을 비롯한 여러 준비물이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나와 A를 왜 불렀을까? B의 동생이 꺼내온 수영복과 수모, 각종 액세서리를 보고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B의 동생은 무언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향이라고 했는데, 한때 수영에 꽂혀서 다양한(?) 수영복과 수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영을 하는데 액세서리가 뭐가 필요할까 싶지만 나만의 수경 만들기처럼 수경의 고무줄 끈을 다른 끈으로 교체한 뒤 각종 액세서리를 끼우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나와 A는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른 채, 한참을 화려함을 뽐내는 수영과 관련된 각종 물건을 구경했다. 그리고 겨우 B의 동생이 권해준 수영복을 손에 쥐게 되었는데,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색깔의 수영복이었다. 아마 나와 A가 예정대로 스포츠 매장에 가서 수영복을 구입했다면 블랙, 그레이, 네이비를 골랐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우리 손에 쥐어진 수영복은 그린, 화이트, 고양이가 그려진 블랙, 영유아들이 입을 법한 총천연색을 뽐내는 색이었다. 망설이는 우리를 향해 사이즈를 먼저 보는 거니 일단 입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민망함을 뒤로한 채, 거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낑낑대며 수영복을 입어보았다. 어찌저찌 수영복을 입어 보았지만 과연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사이즈에 놀랐다. 입어본 적도 없는 바디슈트가 이런 느낌인가 싶어서 서둘러 벗고 나와서 몸은 들어가지만 어깨가 너무 조인다, 아이들 바디슈트 같다고 느낌을 늘어놓자 그 사이즈가 맞다고 했다. 수영복은 그렇게 꽉 조여야 한다고. 물속에 들어갔을 때 물이 수영복 안에 들어오지 않으려면 평상시 사이즈보다 한 치수 작은 걸 입어야 한다고 했다. 반신반의 하고 있는 나와 A에게 B와 B의 동생은 한참을 수영복 사이즈와 색깔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지만 당연히 수영장에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영복 사이즈를 참고하고 가려고 하는데, B의 동생이 새 수모와 액세서리까지 챙겨주면서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A는 말도 안 된다고, 오늘 수영복을 못 사고 와서 당장 다음주에 있을 강습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 상황이었는데 수영복 사이즈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 우리에게 B와 B의 동생은 수영복이 너무 많다고, 새것도 아니고 중고니까 사이즈 맞으면 가져가라고 우리를 설득했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다 중고 거래를 하자고 했다.
“가격 책정을 해주세요!”
“음, 그럼 만 원이요!”
“말도 안돼요!”
나와 A의 손에는 수영복 두 벌, 새 수모 2개, 수경 끈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만원이라니! 마침 A의 지갑에 오만 원이 있어서 B의 동생에게 그 돈을 쥐어 주자 B의 동생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또 실랑이가 시작됐다. 마침 OO 브랜드 수영복을 검색해 봤는데, 새 수영복이 12만원이 넘었다(나와 A의 손에는 모두 OO브랜드 수영복이 쥐어져 있었다), 우린 뭘 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다 해결하지 않았느냐, 5만원도 너무 말도 안되는 금액이니 제발 받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렇게 극적으로 가격 합의가 끝났고 나는 현금이 없어서 송금을 했다. 그렇게 준비물 준비를 마치니 너무 홀가분했다. 수영 초보자에게 수영복 사이즈며, 색깔이며, 신상 수모는 너무 낯설었는데 그 어려운 걸 한꺼번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거래(?)를 마치고, 나와 A, B는 밥을 먹으러 갔다(B의 동생은 선약이 있었다!). 맛있는 육쌈냉면을 먹고 달달한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수영강습이 실감이 났고 살짝 설렜다. 수영복을 입는 민망함을 뒤로 할만 한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괜히 건강해질 것 같고, 살이 빠질 것 같고, 일상에 활력이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 수영을 배우는 것이 꼭 그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모든 걸 해결하고 그날 먹은 맛있는 디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