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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바람 Oct 25. 2023

오! 나의 줄리엣!

나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글쓰기강좌 6th과제- 디카에세이>

" 바람 엄청 부는데 괜찮겠지? 우린 괜찮은데 애들이 추울까싶기도해서말야."


내가 먼저 제안했던 도시캠핑날 아침이었다. 난 도서관 강의를 들은 후 이동 중이었고 은영 언니에게 온 카톡을 통해 취소했으면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른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내가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해서 바깥 날씨를 몰라. 많이 추워?"


  차를 끌고 건물밖으로 나와보니 황소바람이 불어 이 날씨에 테라스에서 캠핑 기분 낸다고 고기 구워 먹다간 애들뿐 아니라 나도 아플 것 같았다. 심지어 체해서 이틀간을 고생했던 나였다.


"언니! 당장 취소할게. 환불 안된다고 하면 그냥 버리지 뭐."


난 그렇게 매장에 전화를 걸었고 날씨 탓인지 예약이 없었던 탓인지 흔쾌히 환불해 주시겠다는 답을 얻었다.


" 환불은 일주일 내로는 꼭 오셔야 해요!!"

"네. 그럼요."


얼마 되지는 않는 금액이긴 했지만 환불해 준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갈 수 있었으니까.  


" 애들 데리고 우리 집에서 밥 먹자."


우리는 그렇게 야외에서 캠핑기분을 내는 대신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웠다.


  '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환불은 천천히 가서 받지 뭐.'


  마음 저편으로 그 일을 미뤄두고 메모도 해두지 않은 탓에 까맣게 잊고 있던 일요일 늦은 오후,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이러다 일주일을 넘길라. 빨리 가야겠다. 혼자 가면 좋으련만 남편의 출근으로 독박육아 중이었다.


" 우리 마트 갈래?"

"응! 나 레고 구경할래."

" 거긴 레고는 없어. 대신 넌 오늘 아무것도 안 사는 거다. 오늘 할 일 아직 다 안 했으니까 과자도 안 사줄 거야. "


그렇게 다짐을 받고 로컬푸드로 향했다. 난 영수증을 제출하고 환불을 받았고 저녁거리로 목살을 집어 들었다. 그때, 아들이 화분을 보더니


" 엄마, 우리 꽃 하나 사자!"

  

  이 녀석은 꽃만 보면 꼭 사려고 한다. 우리 집에 화분이 많은 편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주변에서 식집사로 인정받는 외할아버지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식물을 사랑하는 나의 영향인 걸까? 그냥 인간의 본능?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런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아들 덕에 내 눈에도 꽃이 들어왔고 차라리 화분보다는 꽃을 사고 싶었던 나는 꽃을 한 다발 사자고 아들을 꼬셨더니 금세 넘어왔다. 나는 노란 국화가 맘에 들었는데 아들은 연보랏빛이 도는 폼폼국화를 골랐다. 폼폼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폭신폭신해 보이는 귀여운 국화였다. 그것도 예뻤지만 나는 자꾸만 노란색 국화에 눈길이 갔다. 노란 국화는 아들이 고른 국화에 비해 송이도 크고 색도 진해 식탁 위에 꽂아두면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길 것 같았다. 둘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은 내가 양보해서 아들이 고른 연보랏빛 국화로 결정했다. 아들은 신이 나서 꽃을 받아 들고는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도 내내 안고 있었다. 집에까지 국화꽃을 들고 온 아들은 나에게 꽃을 내밀며,


 " 오, 나의 줄리엣! 나의 사랑을 받아주오. "


이러는 게 아닌가. 여자에게 사랑고백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며 나에게 꽃을 들이밀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너 줄리엣이 누군지 알아?"

" 응, 나 카카오프렌즈 책에서 봤어."

" 너 그럼 로미오도 알아?"

" 알지."


  이 녀석 줄리엣을 알고 있다니... 신통방통했다. 그런데 자세히 물어보니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순 엉터리 뒤죽박죽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둘의 사랑이 이뤄졌냐 하니까 이뤄졌다고 한다. 자기는 책에서 봤다며 아주 자신만만이었다.


  그건 내버려 두더라도 올해 학교 들어간 녀석이 여자에게 꽃 줄 때는 저런 자세와 표정으로 준다는 것은 어디서 배운 걸까.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꽃 사 올 때마다 저런 자세로 나에게 꽃을 전달했는데 오늘은 '줄리엣'이라는 단어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아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자라고 있었다. 꼬맹이 취급했는데 언젠가는 자기 여자를 찾아서 저렇게 떠나겠지. 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다. 잘 키워서 다른 여자한테 보내줘야 되는 거네. 자식은 내가 잠시 맡아 기르다 보내줘야 하는 손님 같은 존재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이러는데 성인이 되면 오죽할까. 저 꽃은 내가 아니라 애인한테 갖다 바치겠지. 서운함도 올라오려 했다.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또 입술을 들이민다. 으윽, 이 녀석 대체 뽀뽀는 어디서 배운 걸까. 그건 책에서 알려주지는 않았을 텐데.


난 남편에게 말했다.

  " 아들이 자기보다 나은 거 같아. 아주 연애 잘하겠어."


오늘 나에겐 새로운 남자친구, 로미오가 생겼다. 로미오가 새로운 줄리엣을 찾아 떠날 때까지 그날까지라도 줄리엣의 자리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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